[Review] 도슨트북과 나의 명화 - 도서 '그림들'

글 입력 2022.08.1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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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마(MoMa)는 뉴욕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의 약칭으로, 사람들에게 주로 불리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 이름에 걸맞게 모마는 20만 점 이상의 근현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곳의 대표 컬렉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무슨 그림인지를 바로 떠올릴 수 있다. 예컨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등등.

 

이러한 모마에서 며칠간 머물며, 대중이 어떻게 하면 ‘난해한’ 현대 미술을 즐겁게 접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작품을 선정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쉽게 풀이해 준 모마 미술관 도슨트북이 있다. 미국 현지에서 미술관 도슨트로 일하고 있는 SUN 도슨트가 집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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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해설을 듣는 것처럼


  

미술사 전공 서적이 아니라 ‘도슨트북’인 만큼 <그림들>은 직접 도슨트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구성된 책이다. 모마의 수많은 소장품 중에서 저자가 고르고 고른 16점의 대표작들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해당 작품 외에도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작품들도 함께 실었기에 더 많은 작품을 알아갈 수 있음은 덤이다. <그림들>은 소장배경을 포함하여 작품 관련 비화를 현장감 있게 전해준다.

 

한편 미술 전시가 하나의 전시실이 아니라 다수의 전시실과 그곳에 걸린 그림들로 이뤄진 만큼 도슨트의 해설은 이 방, 저 방으로 이동하는 동시에 어떠한 흐름을 만들어내는데, 이 책 또한 그런 도슨트의 흐름을 내포하고 있다. <그림들>의 경우 16점의 그림에 대해 찬찬히 읽다 보면 근현대미술사의 간략한 흐름에 대해 알 수 있다.

  


 

그 앞에 오래 서 있던 그림들


  

직접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다고 생각하며 독서를 하다 보니  본 리뷰의 소제목도 진짜 전시를 보는 것처럼 달아보았다. 내 경우 전시를 볼 때 마음에 드는 그림, 인상 깊은 그림은 눈에 붓 터치 하나, 색상 하나라도 더 담고 싶어 그 그림 앞에 오래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유독 인상 깊게 다가왔던 그림들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과 마크 로스코의 <넘버 5 / 넘버 22>였다.


 

모네의 작품은 가까이서 볼 때와 조금 떨어져서 볼 때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가까이서 보면 윤곽이 선명하지 앉고 채색도 뿌옇게 보여 왠지 대충 그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몇 발짝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면 전체적으로 완성된 모습에 전율이 느껴진다. 그러다 점차 마음이 차분해진다. (p. 60)

 


모네의 <수련>을 설명하는 이 문단에 매우 공감했다. 모마는 아니지만 다른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을 보았을 때 걸음을 앞뒤로 옮기다가 어느 순간 연꽃과 물결과 연못에 비친 풍경이 완벽하고 황홀하게 보인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이다. 이 문단을 읽는 순간 <수련>을 보았을 때의 감각이 잠시나마 떠올라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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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그런가 하면 마크 로스코의 <넘버 5 / 넘버 22>는 그것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 그림 앞에 오래 있었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마크 로스코는 ‘복잡한 사고의 단순한 표현’이라는 말로도 유명하다.

 

그는 생전에 자기 작품을 볼 때 45cm의 간격을 두고 감상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SUN 도슨트에 따르면 45cm는 그림과 정말 가까운 거리다. 그 정도로 가까이 가면 색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색을 오래 보고 있으면 색이 일렁이기 시작하며 감상자 내면의 어딘가도 일렁이게 된다. 감정이 동요되는 것이다.

 

로스코의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런 감정의 동요를 느끼고 싶어 책에 수록된 도판이나마 로스코의 <넘버 5 / 넘버 22>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가 전달하는 감정의 일렁거림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졌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 가졌다는 ‘신성한 종교적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졌다. 종교적 도상 하나 없이, 하물며 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미지 하나 없이 종교적 치유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그림은 도대체 어떤 그림일까.


 


새로 알게 된 지식들


  

전시를 관람하면 그림과 소통하는 시간도 좋지만 그림 옆에 붙은 설명 패널이나 도슨트의 해설을 통해 쌓아가는 지식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림들>에서도 새로 알게 된 지식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그려진 커다란 나무가 사이프러스 나무이며, 사이프러스 나무가 묘지의 방풍림으로 자주 심어졌기에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 등이다. 그리고 반 고흐가 요절한 건 알았지만 숨을 거둔 정확한 나이는 몰랐는데 불과 37년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짧은 생에서 그림을 그린 시간은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하니 그 수많은 그림(무려 2,100여 점)을 남겼다는 사실이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아마 이것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모마에 이중섭의 은지화 세 점이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모마에서 최초로 그림이 전시된 한국 화가이다. 프리다 칼로가 자기 인생에 두 번의 큰 사고(치명적인 교통사고,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가 있었는데 그중에 디에고가 최악이라고 말한 적 있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이처럼 아예 처음 알게 된 것, 배경은 알고 있었으나 직접적인 발언은 처음 알게 된 것 등 선정된 컬렉션에 대해 새롭게 축적된 지식이 많다. 도슨트가 이야기하듯 집필한 책이기 때문에 이런 지식들이 머리에 더 쏙쏙 들어오는 듯하다.


 


이야기의 흐름, 미술사의 흐름


  

도슨트의 해설에는 흐름이 있다. 사실 그것은 전시 전체가 감상자들에게 체감시키고자 하는 흐름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SUN 도슨트의 <그림들> 도슨트에는 어떤 흐름이 있을까? 나는 저자가 선정한 16점의 그림과 밑줄 친 부분을 다시 훑어보며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느꼈다.

 

반 고흐의 자기표현, 모네와 인상주의, 피카소와 입체주의, 마티스와 야수주의, 마그리트와 초현실주의, 몬드리안과 신조형주의, 그리고 잭슨 폴록을 다룬 장에서부터 보이는, 미국이 세계 예술의 중심지가 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반복되는 역사가 보였다. 이를테면 새로운 미술사조가 등장할 때 처음에 폄하와 조롱을 당한 것, 지금은 익숙하고 고상하게 들리는 미술사조의 이름들이 더러는 그것을 비하하는 평론 등에서 유래한 것 등이 반복되었다.

  

SUN 도슨트의 설명에 천착하니 그런 미술사의 흐름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유럽을 제치고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았다.(p. 236) 그러나 하나 유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던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문화예술이었다.

 

미국은 문화 콤플렉스에 사로잡히게 되고, 자국의 예술을 진흥시키기 위해 예술가 후원 정책을 폭넓게 펼친다.(p. 236) ‘미국적인’ 미술을 만들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여기서 미국적인 미술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특징을 답할 수 있겠다. 자유주의 국가인 미국은 ‘미국의 미술’로 ‘자유’란 주제가 들어가기를 선호했다. 또 미국의 풍광처럼 커다란 작품을 원했다. 유럽 고전 미술에서 볼 수 없던 기법이나 시도에 목말라 했으며, 다 만들어진 작품을 감상하는 것 외에 ‘그리기 시작하는 것부터’가 예술의 시작이라는 개념을 실험했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해석을 관람자 개개인에게 맡길 수 있는 미술을 바랐다. 책에 따르면 그 시점에 대중에 눈에 들어온 작가가 바로 잭슨 폴록이었다.

 

이후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가 부상했고, 팝아트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한 것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것들도 예술의 주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p. 288)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으며 실제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키스 해링 역시 미국 팝아트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워홀, 해링과 깊은 친분이 있는 장 미셸 바스키아의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들에까지 이르면 현대 미술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 간 시기의 화랑 분위기가 눈에 보일 듯하다.

 

 

 

도슨트북과 나의 명화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이미 교육을 통해 ‘명화’의 목록을 꿰고 있다. 미술사의 흐름을 잘 모르는 감상자가 으레 쉽게 할 수 있는 말인, ‘이건 나도 그릴 수 있겠다’는 반응조차 나오기도 전에 피카소의 이름을 보면 그것이 ‘명화’라고 인지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많은 사람들이 명화의 주관적인 기준을 자기 안팎에서 쌓아 볼 경험을 하기도 전에 사회적인 기준, 교과서적인 기준을 먼저 내면화한 셈이다.

 

(물론 피카소의 작품은 훌륭하지만) 우리는 예술 작품과의 진솔하고 내밀한 소통을 경험하기 전에 무엇이 훌륭하다는 선입견부터 가져버린 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감상해야 작품, 그리고 그 작품을 보는 나 자신과 내면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확실히 미술사를 속속들이 알면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작품이 주는 울림을 느끼고 포착하기 위해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작품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작품과 소통하는 지름길이자 정도가 되어 줄 것이다.

 

무언가에 크게 관심이나 애정이 없다면 -사실 이 책 리뷰를 궁금해 한 것만으로 예술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미 애정이 가득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누군가가 품고 있는 커다란 애정은 그 사람이 애정을 쏟는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애정에 매몰되지 않고 절제심을 갖고 설명을 해준다면? 더욱 금상첨화다.

 

그러니 큰맘 먹고 현대 미술 전시를 보러 갔지만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몰라서 충족감보다 허탈감이나 피로감을 느끼고 온 적이 있다면, 혹은 그 감정을 느끼고도 다음 전시는 더 의미 있게 보기를 바라고 있다면, 현대 미술의 대표작이자 모마 대표 소장작 16점을 다룬 <그림들>을 펼쳐보면 어떨까. 미술을 사랑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친절한 설명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SUN 도슨트의 이야기가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 또한 당신에게 울림을 주는 그림을 만나길 바라며 이 글을 맺는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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