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름밤의 포도와 같은 음악 - 유사과학

유쾌한 농담 같은 음악
글 입력 2022.08.0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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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우동과 돈카츠를 든든히 먹고, 시원한 라떼를 마셨다. 여름의 저녁은 언제쯤 시원해질까를 생각하며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 안 옹기종기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잔잔히 흐르는 맑은 냇가처럼 조금씩 설레 보이기도 했다. 곧 시작될 ‘신박서클’이라는 밴드의 이름은 각 부원의 이름 한 글자씩 따 와 지었다고 한다. 새롭고 놀랍다는 뜻의 ‘신박하다’라는 단어와 밴드의 음악적 성격이 맞물리는 듯했다.


또 <유사과학>이라는 공연 제목과도 같게 그들은 하얀 과학자의 옷을 입고 신박하게 등장했다. '유사과학(Pseudoscience)'은 “과학으로서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지만 많은 이들이 믿고 있는 학설 또는 믿음”을 뜻한다고 한다.

 

그들의 음악은 제목인 점성술(Astrology), 혈액형(Blood Type), 지구평면설(Flat Earth)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과 미신의 경계에 있는 요소들을 주제로 한다.


“믿음과 진실에 대한 혼돈으로 가득한 시대에,

기분 좋은 환기가 되어줄 유쾌한 농담 같은 음악이다.”

- 신박서클 리더 신현필 -


신박서클은 신현필, 박경소, 서영도, 크리스티안 모란, 총 4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국악, 재즈 등을 다채롭게 연주해나간다. 밴드의 색소폰과 가야금, 베이스, 드럼의 동양과 서양 악기의 조합은 마치 현대에서 조선 시대로 넘어간 드라마 설정처럼 신선한 느낌을 준다.

 

청명한 가야금의 소리는 처마에 떨어지는 빗방울 같지만, 다른 악기와 어울리면서는 재즈 바에서 듣는 소나기 소리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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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곡 중 <밀실의 선풍기>는 밀실에서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을 수도 있다는 가설에 의해 제작되었다. 촘촘한 짜임새의 연주 속에는 의심과 불안함, 긴박감과 서늘함이 교차 되면서 관객의 귀를 사로잡는다. 연주의 중심에 있는 주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들이 많다.


빨간색으로는 이름을 적으면 안 된다, 라거나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된다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이들은 ‘미신’으로 익숙하다. 미신의 정의는 “마음이 무엇에 끌려서 잘못 믿거나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것을 맹신(盲信)하는 일”이다.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지만, 일부 사람들은 빨간색으로 이름을 적으려다 멈칫한 경우도, 손톱을 아침에 깎은 적도 종종 있을 것이다. 도깨비나 잡귀 등이 미신의 배경에 주로 등장하며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더라도 어쩐지 지키지 않으면 싱숭생숭한 마음이 드는 것이 실천의 동기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미신을 믿는 이유는 단연 ‘죽음’,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이다. ‘에이~ 설마 누가 믿어.’에 있는 ‘설마’에 내가 속할 것 같은 불안감, 그 정서에서부터 시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p.387) 라고. 우리는 매일 삶을 살아가지만 죽음에 가까워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신은 삶 속에서도 죽음이라는 요소를 자각할 수 있게 해 주는, 어떻게 보면 다소 긍정적인 역할을 갖고 있다.

 

또 가와무라 미나토가 쓴 위 책에 대한 작품 해설 속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삶’이라는 단순한 하나의 직선을 더듬어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를, 가령 죽음이라면 죽음이라는 어떤 역방향의 요소에 의해서 지탱되어진 것”(p.424)이라고 이야기했다. 즉 미신 역시 작은 요소이지만, 이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삶의 의미를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신박서클의 음악을 들으면 어릴 적 손톱은 아침에 깎겠다며 깜깜한 밤을 바라보던 것. 굳이 사람의 이름은 파란 볼펜으로 썼던 것, ‘4층에서는 놀지 말자’와 같은 어릴 적 기억과 소박한 약속이 떠오른다. 가족의 무릎을 베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제철 과일들을 먹던 늦저녁의 풍경이 김처럼 피어오르는 것이다. 동시에 삶의 나날에 얼마나 찰나의 죽음이 스쳐 갔는지도, 어린 날의 생생하던 순간들도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더 특별히 기억되었다.

 

이는 습한 밤 시원하게 먹던 포도처럼 신박서클의 음악이 선명히 그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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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및 참고 자료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문학사상, 2010, p.387, p.424

- 네이버 지식백과, ‘미신’

 

 

[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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