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종교지만 나는 절이 좋아 ep1 [여행]

절에서 잠시 머무른다는 것 - 템플 스테이(낙산사 편)
글 입력 2023.11.1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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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푹 빠진 새로운 취미 생활이 있다. 그건 바로 절에서 일정 기간을 머무는 템플 스테이를 떠나는 것인데, 배낭 하나 매고 일상을 살던 도심을 떠나 자연 속 사찰로 들어가는 길에서 잠시 현실 속 ‘나’를 잊고 오직 자연 안에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곳에서는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무언가조차 마음을 울리고, 위안이 되며 사소한 행복을 준다.

 

가령 바람에 자신을 내 맡긴 채 온 몸으로 흔들리며 청아한 소리를 내는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스님들이 염불을 외고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자연이 내는 소리에 섞여 드는 것을 들으며 사찰을 산책하는 것,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먹을 만큼만 음식을 덜고 그 한 그릇을 비워내는 것, 하다 못해 절을 올라가며 본 돌탑들과 그 사이 한 구석에 자리하며 햇빛을 받고 있는 불상 조각을 마주한 것까지 무엇 하나 번잡했던 마음을 달래주지 않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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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랜 기간 동안 나는 템플 스테이를 그저 로망으로만 남겨두었다. 나는 아직 자차가 없으니까 절까지 접근하기가 어려울지도 몰라, 절에서는 지켜야 할 것이 많아 보이는데 오히려 가서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 새벽에 일어나서 등산을 한다던지 내 체력에 맞지 않는 활동을 꼭 해야 하면 어쩌지 등등 수많은 걱정과 편견들을 앞세워 ‘나중에 언젠가’라는 두루뭉실한 기간을 말미로 미뤄왔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떠나는 것은 정말로 이전의 걱정들이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별 거 아니었다. 그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어났고, 여느 날과 다름없는 일상들이 이어질 날이었다. 무너짐의 시작은 친구의 카톡 한 통이었다. 그 내용 마저도 사실 별 일이 아니었다. 급하게 중요한 일정이 잡혀서 약속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그 카톡이 마치 위태롭게 쌓아 놓은 짚단 더미 끝에 조그마한 불을 놓은 것처럼 도화선이 되어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아, 다들 바쁘구나 다들 저마다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구나, 그들 사이에서 나만 망망대해 위에서 풍랑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돛단배처럼 길을 잃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와 걷잡을 수 없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내 부정적인 생각들은 검은 그림자처럼 내내 나를 따라다녔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나는 충동적으로 템플스테이를 예약했다. 후기도 찾아보지 않았고, 대중교통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검색창에 ‘템플스테이’를 치고 연관검색어로 뜨는 낙산사 예약 페이지로 넘어가 가능한 날짜에 1박을 예약했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해결될 것을 뭘 그리 미뤄왔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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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는 바다와 산이 한 눈에 보이는 절경을 지닌 곳이었다. 사찰에서 가장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하는 해수관음상이 있는 공간으로 올라가면 오른쪽으로는 끝없는 물결을 만들어내며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를, 왼쪽으로는 안개가 자욱이 깔려 마치 신선이 사는 듯한 고산을 만나볼 수 있다.


어제의 해가 저물어가는 일몰과 오늘의 해가 떠오르는 일출을 이 곳 벤치에서 바라보며 마법처럼 갖은 상념을 정리할 수 있었다. 늘 똑같이 지고 뜨는 해인데, 그것이 이토록 아름답고 행복한 감동을 주는 것을 일상에서의 나는 왜 몰랐을까? 어쩌면 가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신기루 같이 반짝이는 행복에 눈이 멀어 내 주변의 물결이 주는 행복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금쯤 내가 몸 담은 이 작은 돛단배 자체를 사랑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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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에는 끝없이 밀려나갔다가 되돌아오는 물결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절벽 위에 ‘홍련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는데, 이곳과 대웅전의 저녁 예불 중 선택하여 참여할 수 있었다. 절벽 위에 우뚝 솟아나 있는 암자의 자태와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매료되었던 나는 홍련암에서 예불을 하기로 선택했고, 인공적인 빛이 부재하여 해가 지고 난 다음에는 온통 어두운 사찰 길을 더듬어 가며 겨우 예불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그곳에서 만나 뵌 신자 분들은 아직도 내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다. 홍련암 예불의 열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사찰 소개를 시켜주던 직원 분을 통해 들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개인 경전을 가지고 있었고, 스님이 진행하는 예불 순서를 훤히 알고 계셨다. 허둥 지둥 공용 경전을 뒤적이며 헤매는 템플스테이 사람들에게 그들은 무심히 맞는 페이지를 찾아주고 어떤 타이밍에 절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거칠게 암자를 뒤흔드는 바람과 파도 소리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절과 경전을 외는 그들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30분 가량이면 끝이 나는 대웅전 예불과 달리 홍련암의 예불은 길게 이어지면 두시간도 거뜬하다고 한다. 결국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한 나를 비롯한 몇몇 템플스테이 생들은 중도 하차를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무언가에 그토록 열정과 믿음을 쏟는 사람의 힘을 나는 그때 처음 지척에서 보았다. 어떤 신자 분은 절을 하던 도중 엎드린 자세로 울음을 참아내지 못해 한참을 그러고 계셨다. 나는 비록 무종교인이지만 하나의 교리에 그토록 열중하고 함께 마음을 모으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그렇게 가끔 버겁고 힘든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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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는 해보다 내일 뜨는 해를 조금 더 기대해볼 수 있는 희망을 얻는 방법,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어쩌면 생각보다 간단하며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것이 이번 템플 스테이를 통해 내가 얻은 깨달음이었다. 나는 낙산사가 보여준 황홀경의 풍경,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는 절간의 소리, 귀여운 고양이들, 그리고 보기 좋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조금쯤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내려 놓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템플 스테이가 내가 앞으로 일상의 힘을 얻어가는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여유여 될 때 마다 여러 지역의 절을 들려 템플 스테이 도장 깨기를 해 볼 생각이다. 그 첫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 하고, 나는 이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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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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