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오지윤의 문장이 나를 치유한다면 '기어이' 읽겠어요 - 작고 기특한 불행

221p <나의 인생은 ‘기어이’가 많아질수록 풍성해질 거라 믿는다>
글 입력 2022.07.17 19:4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작고.jpg

 

 

제아무리 감정 기복이 없는 사람일지언정 그 감정이 365일 내내 평온하게 유지되진 않을 것이다. 꽤 잘 흘러간다고 생각했던 한 칸의 일상이 높은 곳에서 중심을 잃기 전까지 잘 위치 되었어도, 예상도 하지 못한 자극으로 휘청거리며 넘어진다. 매우 순식간에 말이다.

 

누군가 그 한 칸에 위치 되어있던 나를 다시 주워 제 자리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외쳐보고 싶지만, 마음 안에서만 쩌렁쩌렁 울리는 바보 같은 목소리는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는다. 특히나 극도로 생각이 많고 내향적인 사람은 매사에 조용한 침묵을 유지하는 것만이 정답인 마냥 가만히 그 감정에 빨려 들어간다.

   

나만 불행에 찌든 것 같다는 착각이 일렁일 때면 에세이를 주섬주섬 펼친다. 도서의 다양한 카테고리 중에 에세이가 가장 사실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이며 여러 짧은 단편들이 묶여 있으므로 간접적으로나마 함께 공감하며 위로가 되는 주제들이 우리를 감싸주기 때문이다. 또한 사실을 기반으로 쓴 글이라도 사적인 일기장이 아닌 이상 조금은 더 정갈하고 맛깔스럽게 가공된 문장이 구석구석 있을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에세이의 매력이다.

 

독자를 단숨에 집중시키는 문장으로 주목을 끈 작가 오지윤의 에세이를 골랐다. 통통 튀지만 그 안에 묵직이 진정성 있는 문장들은 충분히 유혹적인 흡입력이 있었다.

 


"염세주의자들이 알고 보면 삶에 가장 열정적이고 애정이 많아. 세상의 바닥까지 이해했으니까 다시 치고 올라오는 거지."
 

 

대략 3년 전에 염세주의자라는 의미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이 있었다. 선배가 우연히 자신은 염세주의자라고 당당하게 소개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난 이 단어의 뜻을 몰랐기에 앞에서 “아~ 그러시구나” 하며 예의상 고개만 끄덕인 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초록 검색창에 염세주의를 검색했다.

 

 

 

염세주의

: 세계나 인생을 불행하고 비참한 것으로 보며, 개혁이나 진보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경향이나 태도

 

 

 

뜻을 살펴보고 잠깐 생각했다.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나는데 벌써부터 너무 어두침침하게 사는 거 아닌가’

 

그로부터 딱 3년 후, 시간이 널찍했던 나는 알바라는 작은 세계를 경험하며 정말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과 대면했다.

 

카운터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와중에 말을 끊어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어른, 돈을 낸 액수만큼 어떻게든 대접받으려고 하는 어른, 자기 말만 하고 상대에겐 별다른 의중을 묻지 않는 어른, 말끝마다 비속어를 붙이지 않으면 감정 표현에 서툰 어른, 하루 반나절을 함께 일하는 사이지만 인사조차 생략하는 어른 등 열거하기도 오래 걸릴 만큼 내 속을 따끔거리게 만드는 민중을 경험했다.

 

병원에서 주사 넣기 전에 ‘살짝 아플 거예요~ 근데 금방 끝나요.’라는 언질이라도 주면 마음의 준비라도 할 시간이 있을 텐데, 말과 행동은 순간의 침투적인 영역이라 방심하는 사이 KO되기 쉬웠다.

 

점차 타인에게 모든 기대가 사라졌다. 하루 보고 말 사이인 사람들의 행실인데도 불구하고 감정의 빨간불이 화르르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무채색에서 아예 투명함으로 보이지 않는 감정을 눈치챘을 때 비로소 내 위험 신호를 직감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원망스럽거나, 화나거나, 울화통이 터져야 인간이 느끼는 감정선이 오히려 건강한 신호라고 볼 수 있는데 아예 무감정으로 지배되다 보니 세상이 재미 없어졌고 심각하게 무기력해졌다.

 

아무런 힘 안 들이고 나를 염세주의자로 만들어 버린 사회의 구조에 비벼보지 못하고 의욕을 잃었다. 자칫하면 이 투명함이 영원함이 될까 답답한 심경 속에 탈피할 구멍을 찾았다. 평일 알바를 그만두겠다고 말했고, 어제는 1년 4개월을 주말 알바로 일했던 매니저님께 이번 달까지만 일하겠다고 말했다. 속이 후련하거나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아무런 감응도 맛볼 수 없었다.

 

회피하겠다고 찾은 원인을 끊어도 평화롭지 않던 나는 세상의 바닥까지 이해했으니까 다시 치고 올라올 수 있다는 문장 하나로 곧 투명함에서 해방되겠다는 의지를 얻었다.

 

특별히 이 작가의 기술적이고 연륜에서 축적된 심금을 울리는 문장이 아니었다. 그저 작가가 학창 시절에 국어 선생님께 들었던 기억의 조각을 되새기며 쓴 에피소드로 인해 누군가의 감정을 다시 3D로 바꿔 놓을 수 있는 담백한 필력에 대한 영향력에 감탄했다.

 

매일 쓰는 기록의 힘은 이렇게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삶에 연결점을 잇고, 더 이상 흔들 거리지 않도록 지탱시켜 주는 힘까지 가진다.

 

작가 오지윤의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성향이 반반 섞여 잘 어우러진 쫄깃한 문장들은 맛있는 면을 끊지 않고 입안에 우걱우걱 씹어 그 맛을 목구멍으로 넘기기 전까지 느끼고 싶은 것과 비슷한 중독성이 있다.

 

보이진 않지만 몸 안쪽에 나만 아는 적신호가 올 때 꼭 밖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기분을 한껏 높이 치켜 올려 보겠다고 발악하지 않아도 된다. 서서히 산책할 겸 동네 서점에 들러 <작고 기특한 불행>을 찾은 후 침대에 두 다리 쭉 뻗고 그녀의 문장을 반갑게 구경하면 된다.

 

 


조우정-BM.jpg

 

 

[조우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