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봐도 봐도 좋은 '니얼굴' [영화]

글 입력 2022.07.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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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본 니얼굴, 정은혜 작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낯이 익은 은혜씨를 알아봤다.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오며 가며 몇 장면을 봐왔던 입장에서 그녀의 다큐멘터리가 개봉한다는 소식은 매우 반가웠다.

 

배우인 줄 알았던 은혜씨가 알고 보니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는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놀랐고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참이었기 때문에 선뜻 영화를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또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에무시네마에서 GV를 진행한다는 소식에 망설일 것 없이 예매 버튼을 눌렀다.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라고 부르고 싶은 영화 <니얼굴>은 소개에 따르면 예쁜 얼굴도 안 예쁘게 그려주는 문호리 리버마켓의 캐리커처 작가 정은혜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려 4천명에 가까운 얼굴들을 만나고 그리면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녀의 그림을 받아 든 사람들을 보며 은혜씨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리버마켓의 샐럽 작가이자 발달장애를 가진 그녀의 삶 속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숨길 수 없는 긍정의 에너지



영화는 내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힘들고 짜증나는 순간도, 기쁘고 웃긴 순간들도 있다. 모두의 삶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발달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의 가족의 삶을 무겁고 저 멀리 있는 것으로 간주할 필요 없다.

 

사실 특별히 다를 게 없다며 영화는 관객을 따뜻하게 맞이해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의 낯설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그러한 장면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몇 장면을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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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씨는 문호리 리버마켓에서만 약 2천여명의 얼굴을 그렸다. 평소 알고 있던 캐리커처 부스의 운영 방식과 달리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독특하다. 인물의 형태를 스케치하는 단계를 과감히 버리고 머리부터 몸체로 내려오는 순서로 그려 나간다. 때문에 비율이 어긋나고 조금 찌그러지기도 하지만 그게 이 작가의 화풍이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은 그가 음영을 선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어두운 부분을 여러 개의 선으로 칠하는 식이라며 그녀의 어머니이자 그림을 가르쳐준 스승인 장차현실 작가가 말한다.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때문에 손님들은 앉아서 기다리는 대신 은혜씨가 사진을 찍고 그것을 보고 그림을 그려주는 식으로 부스는 운영된다. 그때마다 손님들은 말한다. “예쁘게 그려주세요!” “원래 예쁜데,” 세상에 예쁘지 않은 얼굴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녀의 작품은 어딘가 엉성해 보이지만 손님의 바람대로 아릅답게 보이기도 한다. 특유의 따뜻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그 특유의 애정이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은혜씨가 작업하는 매 순간이 따뜻하고 훈훈하지만은 않다. 문호리 리버마켓은 강변에 위치한 탓에 바람도 많이 불고 추워 몸이 약한 은혜씨가 감기에 걸리기도 쉽다. 감독이자 아버지인 서동일씨는 이를 우려해 반대했지만 장차현실 작가는 은혜씨가 사회로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림을 사랑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 아닐까.

 

결과가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인기 샐러 작가가 되었고 지금은 여러 기관과 작업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렇게 그녀가 예술의 언어로 다가와 줌에 감사하고 그녀의 수많은 작품을 볼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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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독특한 화풍으로 인해 애를 먹기도 한다. 그와 그의 어머니가 스승과 제자로서 티격태격하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가령 두 인물화를 그리는데 한 명의 머리가 비상식적으로 커지면 장 작가는 가차없이 그림을 지워버린다. “아…….” 은혜씨는 탄식하며 성질을 부린다. 부모로서, 스승으로서, 마켓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겪을 어려움과 그럼에도 끈끈하게 쌓여 있는 유대 관계 또한 인상 깊게 남은 부분이다.


관찰자의 입장으로 은혜씨의 일상을 담는 아버지와 곁에서 함께 작업하는 어머니. 모두가 또 다른 장애인을 만날 때 가질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궁금해하고, 다가가 소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적 소통의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의 입장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이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한다.

 

작가 은혜씨 말고 인간 정은혜씨를 만날 수 있는 장면도 있다. 침대에 걸터앉아 누군가에게 자꾸만 화내는 은혜씨가 있다. 상대에게 뭔가를 가르치듯이 설명하기도 하고, 대답하기도 하고 또 다시 화를 낸다. 후에 GV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상이 그를 알아보기 전, 그녀는 혼잣말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림 그리면서도 행복하고,

동료들과 같이 돈 버는 것이 행복하죠.”

 

 

외롭지 않은 것. 발자취를 남기는 것. 내가 아닌 ‘니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그가 말하는 행복이 아닐까? 외로움이 만들어낸 친구들보다는 이제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는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그래, 그녀의 밝은 에너지를 감당하기엔 방이 너무 좁았던 탓이다.

 

다운증후근을 가진 화가들은 전세계에도 적지 않게 있다. 그럼에도 그녀가 대단한 것은 아무래도 거대한 작업량과 단 한 장도 같지 않은 작품들 때문일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한번도 그림 그리는 것이 싫다고 한 적이 없다. 넘치는 작업 주문에도 힘들어 하기는 했지만 한번도 멈춘 적 없다. 우리는 어떤 것을 의심없이, 끊임없이 사랑했던 적이 있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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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광란의 댄스(서동일 감독의 표현을 빌렸다)를 즐긴다는 은혜씨가 춤을 추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양평 폐공장에서의 ‘니얼굴(2000)’ 전시에서 기념 퍼포먼스 무용팀을 따라 춤을 추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팔을 천천히 들어 흔드는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예술이라는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며 소통하는 작가 정은혜. 영락 없는 아티스트다. 우리의 소통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작은 상영관, 큰 세계, 사랑스러운 사람들


 

“좋아요. 신나요. 아싸!” GV의 시작은 은혜씨의 발랄한 소감으로 문을 열었다. 유의미한 대화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남기고 싶은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먼저 춤추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기분이 어땠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어딘가 붕뜬 대답을 한다. "저 혼자 전시한 게 아니라 같이 준비하고 사람들과 함께 한 것이라 (기분이) 좋았어요. 재밌었죠."

 

서동일 감독은 은혜씨는 늘 원초적 욕구가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고 제대로 무용을 동료 작가들에게 배운 뒤로는 더 자주 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은 그런 자연스러운 장면을 그가 포착한 것이다.

 

이는 그가 동료들을 사랑하고 그들과의 유대가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료들에게 배운 것,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기에 더 재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가 소속감을 느낀다는 것은 외롭지 않은 것이고 그녀에 의하면 그것은 행복이다. 앞으로 그리고 싶은 것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도 그리고 싶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고양이도 그려보고 싶죠.

채색도 하고 싶어요.”

 

그런 그의 말에 서 감독은 유쾌하게 말한다.

“그래. 그게 돈이 돼.”

 

 

그림을 그리면서 시선에 대한 강박증도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그려 왔으면서도 더 그리고 싶은 게 남아 있다니 대단하다. GV 내내 이 두 부녀의 틱틱거리는 대화가 계속되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여전히 장애인을 대함에 있어 어떤 배려(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편해졌고 벅찬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서 감독이 말하는 자연스러운 소통이 이런건가, 희미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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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무시네마

 

 

은혜씨를 포함한 장애인들에게는 비언어적 소통의 주파수가 있다. 소통을 어렵고 노력을 요한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그 주파수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낯설다는 생각은 앞으로 안들 것이라는 점이 오늘의 한 발자국이다. 연습하고 익숙해지려는 노력,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은혜씨가 보여준 소통의 가능성, 더 이상 혼잣말이 아닌 ‘대화’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경계에 놓인 모두가 마음 편하게, 자연스럽게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있는 힘껏 반겨, 동료가 되자.

 

세상에 존재하는 경계선들은 어쩌면 모래밭에 그어진 깊은 선일지 모른다. 너머로 있는 것을 두려워 하기 보다는 모래를 걷어 차자. 곧 그 발길질이 파도가 되면 흔적도 없이 경계는 허물 수 있지 않을까? 눈을 감고 흐르는 몸짓을 하던 은혜씨가 떠오른다. 파도가 꼭 그녀와 같은 모습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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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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