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느 날 선물처럼 찾아온 - 어린이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7.0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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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책이 내 앞으로 배송이 왔다. 제목은 <어린이의 마음으로>. 알고보니 출판사에서 실수로 보냈다고 한다. 내가 직접 고르지는 않을 것 같은 책인데 이것도 인연이다. 책을 훑어보니 내가 아는 분들의 이름도 섞여있어 한 번 읽어보기로 했다.


어린이. 평소에 잘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이다. 아이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내 애정은 누군가의 아이를 구경하고 한나절 정도 놀아주는 것에 그칠 것이다. 일상에서 자질구레한 필요들을 챙겨주고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는 과정이 버거울뿐더러 아이들에게는 내가 거의 세상의 전부라고 할만큼 큰 영향을 받는다는게 부담스럽다.


어린이와 마주칠 일도 많지는 않다. 내가 어린이일 때는 내 주변에도 당연히 어린이들이 가득했지만 이미 그럴 나이는 지났고. 내가 아이를 기르기 시작하면 또 많은 아이들을 만나겠지만 아직 그럴 시기까지는 시간이 남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꽤나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어린이에 관한 책이라니! 오랜만에 낯선 생각들을 할 수 있어 재미있다. 선물같은 책이다.


하지만 어린이야말로 그런 존재가 아닌가? 선물처럼 우리에게 찾아오는 아이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요즘은 어린이라는 말보다 ‘잼민이’라는 말을 더 흔히 사용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인터넷방송과 커뮤니티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지금은 일상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인데, 인터넷방송과 게임 등을 이용하는 어린층을 지칭하는 애칭이기도 하지만 혐오표현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표현 방식이 자유롭고 소통이 위주가 되는 인터넷방송에서는 도를 넘지 않도록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아무래도 아직 어리고 미성숙한 아이들이 실수를 하는 경우들이 많다. 아이들이니까 지켜주고 배려해줘야 한다는 것도 맞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아이들이 꽤나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아서 아이들을 잼민이라고 부르며 싫어하는 사람들을(물론 애칭처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쉽게 뭐라고 할수만은 없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맞는걸까. 예술가들이 하는 일,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독자인 우리들이 하는 것은 작품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도 책을 통해서 함께 고민해보려고 한다.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내놓은 어린이에 대한 사색과 시선을 나누다보면 조금은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책을 편다.



함께한다는 것을 자주 생각해보는 시절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서로를 돕고 다양한 존재를 헤아리며 살아가는 일에서 종종 우리는 삶의 기쁨도 슬픔도 느낄 수 있는 듯합니다. 얼마 전엔 어린이날 100주년을 기념하여, 전국 각지에서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100년이 지나도 어린이가 지금보다 안전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길 바라는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으로>는 시인들의 시와 산문을 통해 어린이의 존재를 문학적으로 환기하고 사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린이가 살아갈 아름다운 세상과 건강한 삶을 응원하고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어린이의마음으로_앞표지.jpg



아버지와 나와 내 아이를 생각해보면 이상하게도 극에서 극으로 유전하는 무언가가 있다. 내 어린 시절의 과부족은 아이에게 이르러 지나치게 넘치는 것이 되고, 특정 시기에 제대로 치러내지 못한 분리의식은 그 나이가 된 내 아이를 껴안고 떠나보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대 내가 꼭 껴안고 떠나보내지 않은 것은 내 아이가 아니었다. 고향과 부모의 품으로부터 폭력적으로 분리되느라 잔뜩 상처를 입고 어른이 된 그때까지도 여전히 내 안에 웅크리고 살고 있던 열네 살의 나였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아이에게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눈밭을 선물하고 싶다”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눈밭에도 자식에게 물려준 눈밭에도 없었더라면 좋았을 발자국이 너무 많았다.

 


요즘 내 주변에는 아이와 어린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학교 밖을 나오다보니 나보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과 일할 기회가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연락을 하다보면 메신저 프로필에 올라와있는 해맑은 아이들이 그렇게 예뻐보이고 좋아보일수가 없다.


그럼에도 나 역시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눈밭”을 가져본적이 없어 무섭다. 그동안 쌓인 편견과 아집으로 가득한 세계를 저 해맑은 어린이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것이 싫다. 내 아이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주어야 할 텐데, 아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고, 정서적으로도 불안정한 하기만 한 내가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고 더 나은 세계를 꿈꾸해 해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무리 해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이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눈밭”이라면 어떤 모양의 눈밭을 나는 줄 수 있을까 고민이다.

 


시: 이 이야기가 너로 인해 이어지기를 바란 적도 있었지.


 

잊었던 용기 – 남지은


늦었네 들어가자

그런 말이 당신을 덜 다치게 하고 

어딘지 모를 집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좋은 그림이란 뭘까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 거지 


당신이 살고 싶은 집 

당신이 바라온 가정

당신이 지켜낼 가족


어딘지 슬픈 구석이 있는 


...후략


 

돌처럼 속삭이기 – 서윤후


너는 나에게 책을 읽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누꺼풀을 이기며 왔는지 

이야기의 길을 따라가자 

너는 주저앉은 채 돌을 줍고 있다 


(내게선 금방 떠나가지만 너에게 오래 머무는 것들: 강아지풀, 잠깐 흥얼거린 노래, 비눗방울, 비온 뒤 웅덩이, 껌 종이에 그린 얼굴, 제일 짧아진 검정 크레파스, 놀이터에 떨어진 단추, 실로폰 소리, 회전하는 프로펠러)


...후략

 


시인들을 따라 읽다보니 내 어린시절도 생각이 나는것만 같다. 날씨 좋은 날 아파트 광장에 나가 공을 던지고 자전거를 타며 놀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 해야할 일은 많지만 하고싶은 일도 재미있는 일도 없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취미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곤 한다.


내 어린 시절을 스쳐간 재미있는 일들이 떠오른다. 저녁이면 한둘씩 모여 시간 가는줄 모르고 떨던 수다, 야구와 공던지기 놀이, 쉬는시간마다 뛰어가서 했던 농구, 점심시간 교실 한 구석에서 치던 기타, 매일매일 같은 자리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노을까지.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어린시절이었는데, 그럭저럭 즐거운 일도 많았다.



산문: 

어린이에게는 안 될 줄 알면서도 하는 마음이,

안 될 것 같은데도 다시 하는 마음이 있다.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어린이는 자란다. 

 


아직까지 아이는 한 번도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어린이집이 너무 좋다고, 진자 재밌다고, 친구들하고 이런 놀이를 했다고 신이 나서 종알종알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본인이 판단하기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소식을 종종 전해주긴 한다). 그래도 첫 한두 주 동안은 돌아오는 길에 오늘 어린이집 재밌었냐고 물으면 “응, 재미있었어” 친구들이랑도 재밌게 놀았냐고 물으면 “응, 재밌게 놀았어.” 선생님이랑 노래도 재밌게 불렀냐고 물으면 “응, 재밌게 불렀어.” 대답이라도 해줬는데.

 

이젠 오늘은 어땠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다 재미있었어.” 마치 더는 묻지 말라는 듯이.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던 것 같긴 하다. 자꾸 묻는 게 귀찮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건 엄마, 아빠와는 별개인 ‘나의’ 일이기도 했고. 그래, 그런데 그게 벌서부터 그런다고?

 

아무래도 일기를 그만 써야 할 시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적어도 지금 같은 형식은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이제까지 내가 쓴 일기는 이를테면 셜록 홈즈의 이야기 같은 것이었다. 주인공은 홈즈인데, 쓰는 사람은 왓슨이라는 식으로. 하지만 이제 곧 아이가 글을 배우고 그림일기를 쓰고 그리기 시작하겠지. 아직은 먼일 같지만 분명 금방일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이가 자주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아닌 그런 일기를 쓸 것이다. 그러면서 어린이가 언제 청소년이 되는지 궁금해하겠지. 알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생각하면 모두 놀라운 일이다. - p.85

 


여기에도 하나의 답이 있는 것 같다. 어린이도 하나의 인격체이자 주체로써 대해야 한다는 것. 너무 당연하게 공감하는 말이겠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혐오표현과 어린아이에 대한 폭력, 학대 범죄가 만연하고 있고 어린이들을 성숙하게 대하지 못하는 모습도 많다. 처음 어린이날이 제정되던 그 시대를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숙제가 많이 남아있다.


어린이는 언제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될까? ‘아이-어린이-청소년-어른’의 구분은 포켓몬이 진화하는것처럼 명확히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스펙트럼 선상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나눠서 생각하기가 참 어렵다. 그치만 우리도 어린이였던 적이 있으니까. 지금도 어린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고, 어린이들 길러내기도 해야하니까. 어린이에 대한 문제는 우리 모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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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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