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목싸목 S의 골목길] 들어가며

글 입력 2022.06.2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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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걸으며 호기심과 애정을 입혔던 골목에 대한 글을 연작으로 쓰고 싶어서, 그 글들을 한데 묶을 적당한 제목을 짓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여러 후보를 적어두었는데 가장 마지막에 떠오른 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싸목싸목 골목길.’

 

싸목싸목이란 말은 ‘천천히’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네이버 사전에서 더 긴 뜻을 참고하자면 ‘동작이나 태도가 급하지 아니하고 느리게’라고 한다.

 

이 말을 인상 깊게 들었던 것은 내가 한창 미대 입시를 하던 때였다. 학원에서 온종일 서서 그림을 그리던 것으로 모자라 선생님의 화실에까지 가서 그림을 추가로 더 그리던 어느 날이었다. 학원과 다른 블록에 있던 화실은 내게 새로운 가게들과 골목들을 추가로 소개해주었는데, 나는 선생님께 내가 들렀던 가게와 음식점, 새로 걸어본 골목 어딘가에 대해 얘기했던 것 같다.

 

그다지 활동적이지 않아 보이던 학생이 여기저기 돌아다닌 걸 듣고 선생님은 약간 신기했던지, ‘은근히 싸목싸목 잘 돌아다니네’라고 하셨다. 싸목싸목의 정확한 뜻은 몰랐지만 나는 왠지 그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작은 햄스터가 자기보다 훨씬 큰 공간을 호기심 있게 디뎌보고 탐색하며 돌아다니는 움직임이, 그러나 지나치게 바쁘고 부산스럽지는 않은 그런 움직임이 떠올랐다. 어감이 좀 귀엽고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내 부모님은 각각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셨다. 그래서 어릴 적 나는 두 가지 사투리와 서울말을 섞어 쓰며 자랐고, 어린 나는 그걸 꽤 흥미로운 자기만의 특징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한동안 나를 소개할 때 여러 가지 지역의 말을 섞어 쓴다는 얘기를 빼놓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리고 그 언어습관은 초등학교에 가서 표준어 위주의 교육을 받으며 사라졌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재수 시절의 날 더러 ‘싸목싸목 돌아다닌다’고 하셨을 때 그 단어에 대해 물어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내가 새로 지은 글 시리즈의 제목이라며 싸목싸목이란 단어를 꺼냈을 때 바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본 친구와 달리 말이다. 친구의 카톡에 나는 아마 내가 그 단어를 들은 그 순간 기억은 못 했지만 그 대화 전에 이 말을 듣거나 써 본 적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경하지 않고 어딘지 귀엽고 정답다고 느낀 것을 돌이켜보면 그럴 가능성은 더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제목이 ‘싸목싸목 골목길’이 아니라 왜 ‘싸목싸목 S의 골목길’이 된 것인가. S는 누구인가. 이 글의 화자인 S는 나이면서 내가 아닐 예정이다. 앞으로 쓰일 글에는 나의 실제 경험에 약간의 허구를 가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세이와 소설 사이의 팩션 스토리로 골목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

 

S의 추억의 골목들을 되짚다가 문득 절친한 사람들의 추억 어린 골목 이야기가 궁금해진다면 그들을 화자로 삼아 글을 써보고 싶기도 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지인의 초상화나 의미 있는 것을 그려 선물로 주듯 나도 글 한 편을 그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것이다.


과연 이 시리즈는 완결할 즈음 어떤 글이 되어 있을까. 에세이만으로 보이는 글로 끝나면 어쩌나. 아니면 글을 쓰는 동안 S에게 새로운 이야기와 감정선이 달착지근하게 달라붙으려나. 싸목싸목 골목길 시리즈를 이어가는 동안 나는 나와의 줄다리기를 해야할듯 싶다. 그래도 이 시리즈는 본래의 기획의도대로 써 보기로 했다. 요새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 가사처럼, ‘묘한 너와 나, 두고 보면 알겠지’(맞다, 아이브의 'Love Dive'다)라고 생각하며.


혼자 있기를 좋아하면서 이따금 외로움을 호소하는 나는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는 재미로 덜 외로울 수 있었다. 앞으로 올릴 골목에 대한 글들이 혹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독자에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흥미로, 추억으로, 풍요로운 고독으로 바꿔 인식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추억을 돌이키고 곱씹으며 글을 쓸 것이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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