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화비축기지 파빌리온에서 - 최인 기타 리사이틀

글 입력 2022.06.2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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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것만 같은 날씨였다. 주말 아르바이트를 일찍 퇴근하고 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 나의 손엔 기다란 장우산이 들려 있었다.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도착한 월드컵 경기장역, 3번 출구로 나가는 길엔 고개를 뒤로 바짝 꺾어야만 끝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높다란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나는 마치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엄청난 경사와 높이에 심장이 두근거렸고, 두근거림은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긴장은 곧 설렘으로 바뀌었다.

 

지상에 도착하여 처음 본 것은 광활한 숲에 가까운 거대한 나무 군집과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그다음으론 아담한 크기의 빨간 이층 카페였다. 오손도손 얘기하며 걸어가는 사람들과 초록 수풀을 지나 문화비축기지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앉아서야 마음이 왜 이리 들뜨는지 알 것 같았다. 하늘이 흐린 날에는 평소보다 감각이 생생해진다. 배경이 어두워질수록 목엽의 초록은 더욱 짙어 보이고, 습하게 가라앉은 공기가 발가락에 닿아 스치는 느낌은 선명해지며, 소리는 귓가에 차분히 내려앉는다.

 

창가 자리에 앉아 창문 너머 아파트 단지에 즐비한 거대한 나무를 스쳐 지나며 나는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꼈다. 영화 <백만 엔 걸 스즈코>에서 산속으로 향하는 ‘스즈코’가 된 것 같기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속의 ‘와타나베’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완벽한 초여름 날 필요한 건 단연 생생한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날 난 최인 기타리스트의 공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최인 기타 리사이틀_ 파빌리온_ 사진 1.jpg

 

 

비밀의 화원을 연상케 하는 문화비축기지의 ‘T1 파빌리온’은 투명한 유리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입구에서 가장 안쪽 중앙에 자리 잡은 무대를 중심으로 객석은 반원형의 형태로 둘러싸고 있었다. 어느 곳에 앉아도 공연자로부터 멀지 않은 공간이었다.

 

객석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장 역시 유리로 되어 있어 날이 좋은 날이면 햇볕이 따사롭게 쏟아질게 분명했다. 객석이 향하는 방향의 유리 벽 너머론 산의 일부가 보였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팸플릿을 부채 삼아 휘젓기도 잠시, 공연장 좌/우측에 있던 창문 사이로 풀냄새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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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셔츠와 검은 바지 그리고 검은색 구두까지, 검게 맞춰 입은 옷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다음으로는 갈색의 기타, 그리고 목소리. 관객을 향해 인사를 한 최인 기타리스트가 철제 의자 위로 앉았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 그는 당시 공연장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언급했다. 그런 다음 연주하게 될 첫 곡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

 

書 서. ‘글을 쓴다는 건 몸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 부드러운 목소리가 공연장에 낮게 울렸지만 중간에 앉았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은 점이 조금 아쉬웠다. 애정이 담긴 곡 설명이 끝나자 최인 기타리스트는 발 앞쪽 철제 발판에 왼발을 올리며 기타를 몸 가까이 들었고, 곧 그의 연주가 시작됐다. 꺾어지는 음과 길게 때로는 짧게 이어지는 소리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한 서예의 자연스러운 연결과 동양의 느낌이 느껴졌다. 그가 기타 줄을 튕길 때는 마치 가야금을 뜯는 것 같았고, 기타 바디를 두드리는 소리는 꼭 북을 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기타만이 아닌 더 다채로운 악기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듯했다.

 

바람과 나. 바다와의 대화를 표현한 곡인 <산/바다>와 건축가 유동룡의 작품 석풍수에서 영감을 받은 곡인 <석풍수>가 끝나고 <바람과 나>라는 곡의 연주가 시작됐다. 이 곡 역시 공연 시작 전 곡을 작곡하게 된 계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해당 곡은 바다 위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쓰게 된 곡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방향을 바꿔가며 지혜롭게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표현한 이 곡엔 따라서 당연하게도 강한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구간이 있었다. 특별한 점은 그가 그려낸 거센 바람에선 무서움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위험한 바람 속에서 묘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 최인 기타리스트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매 연주가 끝나고 나면 그는 기타에서 손을 조금 떨어뜨리곤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곤 연주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부끄럽다는 듯 살포시 미소 지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세 곡, < Blue Hour >, <섬>, <숲>,에서 느낄 수 있었던 건 그가 항상 누군가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좋은 시간, 좋은 곳에서 누구를 떠올리겠는가. 단연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향한 애정과 따스함이 그가 만든 모든 음악 속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

 

기억이 맞는다면 이번 공연이 나의 인생 첫 음악 공연이었다. 흐린 날씨도,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도, 아늑했던 공연장도 기타 연주까지도 모든 게 완벽했다. 의자를 움직일 때마다 나는 철제 특유의 소음은 마치 연주의 일부처럼 느껴졌으며, <숲>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들리던 숲속의 새소리와 뻐꾸기 소리는 공연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주었다. 좋은 기회가 다시 온다면 이번과 같은 공간에서 다시 한번 최인 기타리스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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