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실천이란 무엇일까 [문화 전반]

나의 첫 정기 후원
글 입력 2022.06.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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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오롯이 내 힘으로 번 돈을 모아서, 언젠가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싶다는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 달부터 그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정기 후원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바라온 것 치고는 생각보다 모든 과정이 간단했다. 마침 나에게 조금이라도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어쩌다 금요일에 코엑스 근처에서 일찍 퇴근을 한 김에 서울국제도서전에 들렀다가, 우연히 활동금이 필요하다는 환경 단체 부스를 발견해서 후원 신청서를 작성한 것. 그게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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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기 후원을 하기로 마음먹은 곳은 ‘서울환경연합’이라는 곳이다. 애초에 서울국제도서전은 갖가지 출판물과 관련된 부스들과 디자인을 눈여겨보기 위해 방문했던 곳이기에, 이날 환경 단체에 정기 후원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박람회는 역시 사람도 너무 많고, 봐야 할 부스도 너무 많았다. 당연히 다 볼 체력은 안 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시각적으로 눈길을 끄는 곳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서울환경연합의 부스로 발길을 돌리게 된 경위도 ‘플라스틱 방앗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플라스틱 방앗간은 원래부터 디자이너 SUPERSALADSTUFF의 작업을 통해 알고 있던 프로젝트다. 재활용이 안 되는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분쇄해 업사이클링 제품의 새로운 제품의 원료로 사용하고, 이를 곡물을 가공해 식재료로 만드는 방앗간에 빗대어 브랜딩으로 풀어냈다.

 

사실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서울환경연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이 없었다. 환경 단체에 대해서는 막연히 어딘가에 있겠거니, 하고 생각해왔다. 부스를 담당하던 활동가님께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바로는, 서울환경연합은 정부지원금 없이 오로지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회원들의 의사결정이 운영에 반영되며 시민참여 활동을 기반으로 캠페인을 펼치는 NGO라고 한다.

 

그동안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단체들은 윗선에서의 제한이나 예산상의 문제로 시각적인 측면에서 소홀한 경우를 많이 봐 왔는데, 서울환경연합은 특정 기관의 산하가 아닌 협력 구조를 갖추어 자율성을 확보해냈고, 접근성을 특히 신경 썼는지 기꺼이 디자인과 브랜딩의 영역을 중시하며 공을 들였다는 점이 전공자로서 인상 깊었던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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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의 활동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 전후로 활동가님과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점점 다가오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해서, 분리배출 시 민간인 선에서 소재를 일일이 고려하기 어려운 생산 구조에 대해서, 그리고 이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하는 피로함에 대해서. 대화는 다소 상투적이고 기본적인 정보들부터 실천의 방법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관심을 두기 어렵고 여러 번 꺼내도 피곤한 주제를, 그것도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면 지칠 법도 한데, 활동가님께서는 이야기하는 내내 진심 어린 표정을 짓고 계셨다. 부스를 담당하는 사람이니 어쩌면 혹자는 이러한 태도를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나는 그게 무척 대단해 보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조차 나는 ‘혹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길게 늘여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기소침해 있는데, 이런 고민을 하는 나와는 사뭇 다른 에너지였다.

 

나는 반골 기질이라도 있는 것인지, 여태까지 세상과 사회를 탓하는 생각들을 많이 해왔다. 집 안에 머물러 공부를 하고, 작업을 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이것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느껴졌다. 저항심이 충만하다 해도 결국 나는 말뿐이지 않나, 내가 과연 ‘실천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게 맞나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열띠게 이야기하는 그의 앞에서 어쩐지 민망한 마음이 들어,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 머쓱하게 그 앞에서 “저는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이라는 문장으로 운을 떼고는 그동안 공부하며 알게 된 애꿎은 단어들만 줄줄 읊어대기 시작했다.

 

내 딴에는 민망한 스스로를 어떻게든 무마하려고 반사적으로 나온 리액션이었는데, 관련된 단어를 하나하나 나열할 때마다 활동가님의 표정에는 화색이 도는 듯했다. 엄청 많이 알고 계신다며, 그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이 중요한 거라는 말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줄곧 나의 시선에서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키워와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나를 띄워주는 그 한마디에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실천은 ‘이러면 안 돼’가 아니라 ‘잘하고 있어’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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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MYUNG SUNG/ALLURE website

 

 

이야기가 끝난 후, 나는 정기 후원 신청서를 내밀고 후원자의 자격으로 부스에서 플라스틱 방앗간에서 제작한 굿즈들을 선물받았다. 어떻게 보면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내가 있던 곳은 박람회였고, 나는 눈이 돌아가도록 화려한 상품들이 그득한 부스 사이를 지나며 충동적인 구매를 몇 번이고 거듭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활비를 생각하면 사실상 내 코가 석 자였다.

 

하지만 후원은 내게 잊고 있던 연결의 감각을 되새겨 주었다. 우리를 덮쳐 오는 문제들의 분야는 날이 갈수록 점점 넓어져만 가는데,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야는 점점 좁아져 간다. 한 개인이 앞으로 얼마나 더 실천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까? 나는 후원을 매개로 머지않아 종료될 수도 있는 이 프로젝트가 이어가길 바라는 의지를 비쳐 보았다. 조급함에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 연대하며, 앞으로 계속해서 가질 의문들을 실천을 통해 함께 풀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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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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