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의 해각’을 향해 – 드라마 '기억의 해각' [드라마/예능]

기억의 칼날을 손에 쥔 채 상처 입고, 상처 입히는 우리
글 입력 2022.06.0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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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드라마 <기억의 해각>의

스포일러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 밴드 자우림의 곡인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가수 윤하가 커버한 무대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곡이 발표되었을 당시 스물넷 스물다섯쯤 이었다는 윤하는, 막상 자신은 너무 힘든데 자신의 이 시기가 ‘아름다웠다는 걸 사무치게 알지 못했다’는 이 곡이 그리 공감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이 노래를 발표했을 당시 자우림의 김윤아 님과 비슷한 나이가 되어 이 곡을 다시 들어보니,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이 곡이 너무 새롭게 들리고 확 와 닿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 마음을 온전히 전하는 윤하의 무대와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곡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은, 다시 오지 않을 아름답고 찬란한 시절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심지어 어쩌면 간절함이 우리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예쁘고 반짝였던 ‘나’의 모습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에서도 오지만, 그렇게 예쁘고 반짝이며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소중한 사람’의 모습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는 슬픔과 그리움에서 오기도 하는 것 같다.

 

이렇게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지난날의 너와 나’의 모습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쉬움과 간절함이라는 이름으로 자꾸만 현실과 비교되고 현실로 소환된다. 생각해보면 이미 ‘과거’가 된, 과거의 것들을 담은 ‘기억’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이 기억들은 현실 위에 멋대로 떠올라 ‘현재’에 몸담고 있는 우리를 과거의 시간으로 자꾸만 끌어들인다. 이는 찬란하고 아름답던 기억 뿐만 아니라 끔찍하고 아픈 기억들도 마찬가지다.

 

2021년 방영된 드라마 <기억의 해각>은 이러한 기억들에 둘러싸여 자꾸만 과거로 가라앉는 ‘은수’의 이야기를 다룬다. 은수는 알코올 중독이었던 남편 ‘석영’의 곁을 지키며 그를 돌봤고, 석영은 은수 덕분에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기타 공장에서 일을 할 정도로 회복된다. 하지만, 이제는 은수가 알코올 중독에 걸린다. 석영은 은수가 그랬듯 그의 곁을 지키고자 하지만, 술을 마실 때마다 과거의 기억과 아픔을 꺼내 놓는 은수의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며 자괴감과 죄책감 속에 지쳐간다.

 

 

[꾸미기][크기변환]기억의 해각 포스터.jpg

 

 

 

‘기억’의 칼날을 손에 쥔 채


 

드라마 <기억의 해각> 속 은수에게는 지워지지 않은 흉터가 있다. 알코올 중독이던 석영이 여느 때처럼 술을 먹고 들어온 날, 은수가 석영에게 ‘단주(斷酒) 모임’에 나갈 것을 권하자 석영은 본인이 ‘죽길 바라는 거냐’며 칼을 들고 행패를 부린다. 석영에게 받은 상처가 켜켜이 쌓여 가던 어느 날 중에 하루였던 그날, 석영에게 들었던 차마 생각지 못했던 말이 은수에게는 너무 큰 상처로 다가왔고, 결국 은수는 석영이 들고 있던 칼에 찔리며 아이마저 잃게 된다. 그때 은수에게 생긴 상처는 몇 번이고 덧나며 지워지지 않는 큰 흉터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견디기 힘든 아픔을 겪으면서도 석영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은수는, 너무나 사랑했지만 너무 오래 아프게 했던 석영처럼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 그리고 술을 마실 때마다 석영에게 받았던 상처와 그때 느꼈던 아픔을 석영 앞에 꺼내 놓으며 석영을 비난한다. 은수에게 남은 아픈 기억들은 자꾸만 은수의 상처를 헤집고 견디기 어려운 아픔을 계속해서 은수의 현실로 소환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픔에 잠겨가는 은수는 술을 마시며 자신을 망가뜨리고 석영에게도 상처를 준다.

 

‘복수’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아프고 안타까운 은수의 모습은 마치 칼날을 손에 쥔 것 같았다. ‘기억’의 칼날을 손에 쥔 은수는 누구보다 깊은 상처를 입지만, 동시에 이 칼날로 다른 사람을 찌르며 상처를 입힌다.

 

 

넌 내가 왜 술을 마신다고 생각해?

술을 안 마신 나는 자꾸 남편을 용서하려고 해, 등신같이.

근데 남편이 술을 끊었다고 해서 내 상처가 다 낫는 게 아니잖아.

술을 마시면 기억이 또렷해져. 그 사람에 대한 분노, 미움.

그리고 곱씹어, '내가 사랑하는 남편은 이미 세상에서 사라졌다.'

 

 

은수는 술을 마시며 과거의 기억 속에서 아픔과 분노, 미움과 슬픔을 곱씹는다. 그리고 내려 놓을 곳 없는 감정들을 곁에 있는 석영에게 쏟아낸다. 석영도 그런 은수의 모습 속에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게 사랑도, 미움도, 죄책감도, 모두 소진한 채 서로의 곁에 남은 두 사람 사이에 ‘현재’는 껍데기처럼 놓여있고, 과거의 기억만이 망령처럼 남아 불쑥불쑥 서로의 상처를 헤집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둘은 서로의 곁에 남는다. 오랜 시간 모든 감정을 소진한 채 수많은 상처를 남겼는데도, 둘은 서로를 돌본다. ‘사랑의 끝’이 어디까지 인지를 묻고 싶었다던 드라마의 기획의도처럼 둘에게 남은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단지 서로를 차마 떠날 수 없어서 곁에 남아 있는 것인지, 죄책감과 연민으로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혹은 상대방에게 복수 하듯 아픔 속에 스스로를 내던져 놓은 것인지 알 수 없다.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아픔과 상처를 오롯이 견뎌야 했던 은수와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은수 곁을 지키는 석영의 관계에 대해 함부로 ‘정답’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동시에 석영이 은수에게 행했던 폭력이 정당화 될 수도 없고, 은수가 자기 스스로에게 또 석영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을 무조건 옹호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둘 사이의 아픔을 매번 현재로 소환하는 ‘기억’이 둘을 계속해서 과거에 머물게 하지만, 결국 둘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은수와 석영 뿐만 아니라 수많은 우리들 역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기억을 쌓아간다. 그 기억들 때문에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과 연결되지만, 한편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과거에 자신과 상대방을 묶어 두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혔던 기억들은 때론 견디기 힘든 아픔을 계속해서 다시 소환하고 현재와의 연결고리를 끊는 칼날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워지지 않는 그 기억들을 함부로 견디라고 하거나, 잊어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우리가 칼날이 된 기억을 너무 꽉 쥐지는 않기를, 그래서 조금은 덜 상처 받고 덜 상처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기억의 해각’을 향해



[꾸미기][크기변환]이미지.jpg

 

 

드라마 속에서 은수는 우연히 바닷가 펜션에 사는 스물다섯 살의 ‘해각’을 만난다. 해각은 은수가 있는 곳에 계속 나타나며 은수를 도와주고, 심지어 은수가 바다에 빠졌을 때도 어디선가 나타나 은수의 목숨을 구해준다. 또한 술을 찾는 은수에게 해각은 '술을 마시고 싶을 때는 함께 마셔주겠다'며 ‘술친구’를 자처한다. 그런 해각과 함께하며 은수는 오랜만에 웃기도 하고 마음 속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그리고 결국은 해각과 함께 석영의 곁을 떠나기로 한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 환자에게 ‘술친구’란 절대로 있을 수 없듯, 해각 역시 은수의 눈에만 보이는 환상일 뿐이었다. ‘예쁘고 반짝이던’ 스물다섯 살의 석영을 ‘해각’으로 소환했던 은수는 해각이 사라진 바닷가에서 ‘그 애’를 데려오라며 오열한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대답 없는 은수의 외침은, 다신 볼 수 없는 과거의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우리의 마음에도 울림을 준다.


 

고통의 시간들은 기억이라는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과거에 불과해요.

그 흔적 위에 새로운 시간이 자라나요.

묵은 뿔이 빠진 자리에 새 뿔이 돋아나는 것처럼요.

그걸 ‘해각’이라고 한대요.

 

 

은수가 이야기하는 ‘해각’의 정체를 알아차린 석영은 은수도 석영도 예쁘고 반짝이던 시절, 은수가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과거의 은수가 했던 말과 달리, 은수에게 고통의 시간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현재’가 되고, 과거의 흔적에 불과하다는 ‘기억’은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자꾸만 현재로 소환해낸다. 과거의 기억 위에 새로운 시간이 자라나는 ‘기억의 해각’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고통의 시간을 지나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은수의 마지막 모습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지 모른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해각’의 모습은 여전히 은수를 따라다닌다. 그런 해각에게 은수는 ‘너 가. 나 너 안 볼거야’, ‘너 보면 나 일 못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따라다닐 거라는 해각에게 ‘그러던가, 그럼’이라며 미소 짓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픔으로 다가오는 소중한 기억도,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과 상처를 남긴 기억도, 어쩌면 평생을 따라다닐 지우기 어려운 기억일 것이다. 그만큼 그것을 애써 부정하기보다는 그것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대할 지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다면, ‘해각’으로 향하는 한 걸음을 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치유와 회복의 시작은 ‘인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더라는 석영의 말처럼 말이다.

 

지금의 ‘당신’이 그때의 당신일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의 ‘나’ 역시 그때의 내가 아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나’와 소중한 사람의 모습에 대한 기억이 우리를 자꾸만 과거로 끌어들인다고 해도, 아물지 않은 채 덧나기만 하는 상처와 아픔이 과거 속에 우리를 가라 앉힌다 해도, 우리는 눈 앞에 마주한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그립고 간절하다고 해도 ‘그 시절’을 온전히 현재로 소환해 낼 수는 없으며, 아무리 아프고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과거라도 그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물론 온전히 개인의 힘으로 자신의 모든 아픔을 감당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한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오롯이 받아들이고 마주하기까지 스스로를 포함하여 꽤 많은 개인과 사회가 오랫동안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이렇게 ‘기억의 해각’을 향해 가는 길은 어렵고 힘들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과거의 기억을 쥐고 현재를 마주하고 있는 스스로가 ‘기억의 해각’을 원하고 이를 위한 아주 작은 힘이라도 낼 때, 이 해각의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마주할 수 있을 것임은 어쩔 수 없다.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일수록 그 기억을 온전히 있어야 할 곳에 잘 놓아두는 것은 과거의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인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나가는 것은 현재의 자신과 곁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 중 하나 일 것이다.

 

드라마 <기억의 해각> 속에서 은수는 결국 '기억의 해각'을 향해 한 걸음을 떼었지만, 드라마 속 은수와 석영의 관계와 결정들이 모두 완전한 정답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너무나 소중한 당신이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제대로 마주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스스로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상처 입고 상처 입히지는 않기를, 부디 너무 많은 힘과 감정을 소진해버리기 전에 더 예쁘고 반짝이는 새로운 시간이 당신과 우리의 기억 위에 자라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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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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