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와인과 명화의 산뜻한 마리아주 -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도서]

미술관에서 명화를 보고 떠올린 와인 맛보기
글 입력 2022.05.3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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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미술 작품. 두 개념은 언뜻 보면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석이 꽤나 많다. 우선, 둘 다 뭔가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만 같은 고급문화에 속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와인과 미술 둘 다 배경 지식이 있을 때 보다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비슷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와 가깝지 않다는 것이 비슷하다.


그래. 더 이상 숨기지 않겠다. 술을 좋아한다. 달큰한 막걸리도 좋고, 청량한 맥주도 좋다. 취하고 싶은 날엔 소맥도 좋아한다. 그런데 와인은, 와인만은 그렇게 어렵다. 다른 술들은 뭘 몰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막걸리는 맛있는 전을 부치면 언제나 맛있고, 맥주는 차가우면 일단 먹고 들어간다. 소맥은 비율만 알면 언제나 감탄을 자아내는 잔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와인은 이게 어디서 생산되었는지, 얼마나 숙성되었는지에 따라 맛도 전부 다르고, 어울리는 음식도 달라진다. 내가 아는 건 겨우 스테이크와 레드 와인이 잘 어울린다는 것뿐이다.


미술이라고 나와 가까우랴. 미술에 있어선 서양, 동양, 시대 가릴 것 없이 잘 모른다. 일단 무슨 그림이든 나보다 잘 그렸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감탄을 장착하고 감상을 시작한다. 미술 안에 담겨진 해석은 설명을 들어야 이해할 수 있다. 혼자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는 내 생각이 정답과는 한참 먼 것만 같아 자꾸만 소심해진다. 마치 수능 지문에서 처음 본 고전 시가를 해석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와인과 미술을 동시에 다루는 책이라니. 와인과 미술을 둘 다 즐기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라니. 완전 날 위한 책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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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정희태는 대학에서 요리를 공부했다. 그러다가 와인에 빠졌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그는 그길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와인의 성지라고 불리는 부르고뉴 지역에서 소믈리에 과정을 거친 정희태는 와인 시음 과정을 수료한 후, 프랑스 각지의 와이너리를 방문하며 와인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저자는 와인에 대한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 파리의 크남 대학에서 ‘예술, 문학, 언어 강사 전문 학위’를 취득한 후 프랑스 국가 공인 가이드 자격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등 다양한 프랑스 문화재를 통해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렇듯 와인과 미술에 대한 공부를 겸하던 그는 와인과 미술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술은 물감의 종류에 따라 그림의 느낌이 전혀 달라진다. 와인 역시 포도의 품종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담은 미술 작품과 같이 와인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색과 향, 맛이 달라진다. 더불어 와인과 미술을 관통하는 가치와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저자 정희태는 와인과 미술을 함께 즐기며 느낀 감동을 나누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은 크게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와인에 대한 기본 개념을 배울 수 있는데, 이 개념들이 미술 작품과 연관되어 소개된다. 2장에서는 미술 작품과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공통된 감정들을 다룬다. 3장에서는 와인 라벨과 와인 병에 담긴 아티스트의 작품을 바탕으로 와인과 미술의 교집합을 풀어낸다.


또한,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는 36개의 키워드로 구성된다.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부분을 키워드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의외성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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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키워드는 와인과 관련된 중요하고 역사적인 사건 2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 키워드 의외성은 마네의 그림이 미술계에 가져온 파격적인 변화와 프랑스 와인이 세계 최고라는 편견을 깬 캘리포니아 와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 번째 키워드 사건을 통해, 19세기 필록세라 사건을 이 사태를 그린 그림인 고흐의 <아를의 붉은 포도밭>과 함께 다루며 원산지 명칭 표기법 AOC의 도입, 신대륙 와인 산업의 발전을 소개한다.


사실, 와인에 관심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건을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책을 펼치자마자 몰려오는 무지의 지루함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미술계에 있었던 사건과 엮은 설명을 듣자 흥미가 아주 조금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 더 읽어볼까, 하는 생각과 함꼐 내 손은 어느새 다음 장을 넘기고 있었다.

 

 

 

근원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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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부터 9번째 키워드는 와인의 중요한 개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중 네 번째 키워드 근원과 아홉 번째 키워드 발전을 소개해보겠다. 


네 번째 키워드 근원은 와인을 만드는 포도의 품종과 품종 별 맛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피노 누아라는 포도 품종은 가벼운 맛과 풍부한 꽃향기를 내는 품종이며, 섬세한 맛의 와인이 된다. 이처럼, 그림도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전혀 달라지게 된다. 달걀노른자를 사용한 물감 템페라를 사용한 템페라화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덜 받고 빛을 거의 굴절시키지 않아 생동감 있는 색 표현이 가능하다. 가장 기본이라고 볼 수 있는 재료의 변화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상세히 설명된 부분은 미술과 와인에 문외한인 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는 앞으로 펼쳐질 와인과 미술의 세계에 대한 겁을 조금 덜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아홉 번째 키워드 발전은 와인 잔의 변화를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사용한 잔 킬릭스와 18세기 초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기능성 와인 잔을 비교하며 현재 쓰이고 있는 와인 잔의 종류를 설명하고 있다. 그저 예쁘게 생겼다고 감탄하기만 했던 잔들의 이름과 그 기능들을 알고 나니, 다음 번에 와인을 마실 땐 잔부터 섬세하게 고르겠다는 다짐을 했다.


와인의 중요한 개념들을 미술 작품과 함께 배우면서 점차 책의 흐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루함 속 살짝 피어난 흥미를 찾아 페이지를 넘겼다면, 이 키워드들을 지나고 나니 미술과 와인 사이의 연결고리가 보다 견고하게 느껴져서 다음 이야기가 점점 궁금해졌다.

 

 

 

마리아주와 미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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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에서 15번째 키워드는 와인을 마시는 방법과 음식과의 궁합 등을 미술 작품과 연관지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 마리아주와 미완성이라는 키워드를 소개해보겠다.

 

열두 번째 키워드인 마리아주는 음식과 와인의 궁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와인을 잘 모르는 나도 고기와 레드 와인이 잘 어울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저자 정희태는 이게 꼭 맞는 말은 아니라고 말한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끼리도 품종과 기후, 생산지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과적으로 마리아주를 하기 위해서는 맛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음식과 소스의 색, 무게감에 맞는 와인을 골라야 한다고 한다. 또한, 음식이 처음 만들어진 곳에서 만들어진 와인을 고르는 것도 하나의 팁으로 소개한다. 이와 같은 마리아주는 미술 작품에도 존재한다. 색을 어떻게 배색하느냐에 따른 변화였다. 미술을 잘 모르는 나도 학창 시절 보색을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있기에 이 챕터는 조금 더 이해하기 쉬웠다.

 

열네 번째 키워드인 미완성은 미완성된 작품으로 유명한 <모나리자>와 변질된 와인을 통해 미완성작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 정희태는 미완성된 다빈치의 작품이 그가 표현하려던 하나의 가치를 완벽하게 표현했듯이, 보존과정에서 변질되어버린 와인을 통해 다음 번 와인을 감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듯이 우리의 인생의 미완성된 모든 날들도 각각 중요한 의미와 역할을 가진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다. 변질된 와인을 무조건 마시지 말란 법 없듯이 망했다고 생각한 내 지난날도 어느 순간 고유한 가치를 가지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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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는 와인 지식과 미술 교양을 한 번에 담은 ‘교양 올인원 패키지’다. 가장 기초적인 와인 용어와 생산지, 포도 품종 등 와인을 즐기기 위한 기초 지식은 이 책으로 공부할 수 있다. 와인이 하나의 언어라면 이 책은 초등 와인 사전과 같은 것이다. 와인 뿐 아니라 미술에 대한 이야기도 가득하다. 저자 정희태는 와인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미술 작품들을 소개하거나, 미술 작품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소개한다. 또한, 와인과 미술 작품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가치와 감정을 36개의 키워드로 분류했다. 이를 통해 와인과 미술을 한데 묶어 배울 수 있고, 보다 풍성한 감상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는 와인을 잘 알지 못해도, 미술 작품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심지어는 술을 좋아하지 않거나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의 애정이었다. 단 한 챕터만 읽어보아도 저자가 와인과 미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려는 용도의 책이 아니다. 저자가 와인과 미술을 감상하며 느꼈던 감동을, 애정을 전부 담은 책이다. 본디, 좋아하는 것을 가장 잘 아는 법이고, 가장 잘 아는 것을 설명하는 게 가장 쉽다. 저자 정희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장 자신있게 풀어냈다. 우리는 그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36가지의 키워드가 각각 한 챕터를 차지하며 진행되는데, 한 챕터의 양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므로 매일 밤, 몇 개의 챕터만 읽어도 전혀 부담 없이 완독할 수 있는 책이다. 어려워 보이는 이야기도 쉬운 언어로 쓰여 있다는 점도 이 책이 쉽게 읽히는 데 한 몫 한 것 같다.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를 읽고 나자, 나 역시 저자 정희태가 소개한 명화와 와인을 함께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 좋은 음식과 딱 어울리는 음악을 들었을 때 그 맛과 감동이 두 배가 되듯이, 어울리는 그림과 와인의 조화도 궁금해졌다.

 

와인 한 잔 하고픈 여름 밤, 책 한 권으로 미술과 와인에 입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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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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