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 연극 '돌아온다'

글 입력 2022.05.2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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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가장 따스한 감동'이란 타이틀을 내세운 연극 <돌아온다>는 촌구석에 있는 낡고 허름한 '돌아온다'라는 식당을 배경으로 한 창작 연극이다. 욕쟁이 할머니,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초등학교 여교사, 집 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청년, 작은 절의 주지 스님 등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가족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보여준다.

 

2015년 제36회 서울연극제 우수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연극 <돌아온다>는 2021년 1,000석 규모의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무대로 확장되며 더욱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전하게 되었다.

 

제작사는 "누구나 가슴 속에 그리운 사람 혹은 무언가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온 가족과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감동과 웃음을 선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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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11 7시 30분

 

 

우선 이렇게 규모가 큰 극장에서 연극을 본 건 처음이라 새로웠다. 거대한 극장 크기만큼이나 동선이 자유로워서 좋았고, 여러 인물이 한 무대에 등장할 수 있었기에 더욱 꽉 찬 느낌이 들었다. 다만 공간이 울리다 보니 목소리가 잘 안 들려서 정확하게 알아듣기 어려웠다.

 

대부분 한 호흡으로 이어가는 대사가 많았기에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워낙 실력 있기로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보니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이 실렸고, 눈빛이나 동작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섬세하게 표현한 덕분에 큰 문제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연극 <돌아있다>는 쓰러져 가는 식당을 지키는 주인 남자와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들은 '막걸리를 마시면 돌아온다'라는 문구에 맞게 각자가 그리워하는 대상을 생각하며 막걸리 한 잔을 적신다.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조금은 아프고 쓰린 이야기를 체념한 듯 덤덤히 이어나가는 모습에서 심장이 저릿했다.

 

극 속에서 표현되었듯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굉장히 애타는 일이자 막연한 희망만을 품은 상태로 버티는 과정이었다. 심지어 그리운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그 결과가 좋지만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실 감동적인 연극보다는 슬픈 연극에 가까웠다.

 

마지막에 상상으로 연출된 결말은 모두 자신이 그리워했던 인연을 만나 한자리에 마주하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실제 결말은 세드엔딩이었다. 주인 남자 아들은 자기 맘대로 식당을 팔고 떠나버렸고, 여선생의 군인 아들은 자결했고, 귀신들은 생이 끝난 후에도 만나지 못해 하염없이 서로를 그리워했다.

 

그전까지 계속 웃으면서 보다가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해졌다. 그저 탄식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갑작스레 전환된 극의 분위기에 감정이 쉴 새 없이 요동쳤고, 결말을 향해 갈수록 입술이 메말라왔다.

 

그래도 결말을 제외하고는 곳곳에 웃음 포인트가 가득했기에 오래간만에 실컷 웃을 수 있었다.

 

청년은 중간마다 어두운 분위기를 환기하며 극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항상 술에 취한 상태로 식당 안을 배회하며 여기저기 시비를 걸고 다니는 그가 이상하게도 밉지 않았다. 오히려 바보 같은 행동들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챙겨준다는 말이 있듯 무언가 신경 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또 다른 웃음 주역인 스님은 고기를 썬 칼로는 채소를 썰지 말아달라더니 술 한잔 정도는 적셔도 괜찮다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며 관객들이 배를 잡고 웃게 했다. 그가 들려준 드라마틱한 과거사는 굉장히 긴 편이었지만, 스토리텔링이 흥미진진해서 그런지 일순간 모두를 집중시켰다.

 

자기를 낳은 어머니와 키워준 어머니가 다르다는 사실에 집을 나가 온갖 힘든 일을 전전하다가 중이 된 스님. 그런 스님이 들른 식당에서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를 만나 포옹하는 장면은 정말로 감동적이었다. 비록 어머니가 간암 말기에 접어들긴 했지만, 이제라도 만날 수 있음에 안도했던 것 같다.

 

'돌아온다'라는 제목처럼 누군가를 찾아온 손님들이 그리워하던 사람 혹은 동물을 찾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온전한 형태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여선생의 아들은 유골함 속 뼛가루가 되었고, 그녀가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울부짖으며 찢은 원인이 되었다.

 

내겐 그리운 사람이나 동물은 없지만, 그리운 시절이 있다. 바로 중학교 3학년으로, 아무 걱정거리 없이 웃으며 친구들과 놀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 해 겨울방학에 떠났던 호주여행에서 봤던 풍경들이 지금도 눈 감으면 생생히 떠오른다. 만약 내가 연극 속 식당에 들른다면 무엇이 돌아오게 될까? 과연 멀쩡한 상태로 돌아올 수는 있을까?

 

아무래도 객석을 채운 관객들이 더욱 크게 웃고 울었던 건 자신 역시 지난 인연을 떠올렸기 때문일 듯하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부디 <돌아온다> 속 결말처럼 씁쓸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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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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