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취향을 사로잡았던 디자인들 [패션]

한계 없는 패션 디자인의 세계
글 입력 2022.05.1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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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깥의 시선과 공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유형의 사람이다. 나쁘게 말하면 과하게 눈치를 보고, 좋게 말하면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는 편이다. 이 성향은 당연히 인간관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옷이나 물건 등 나를 표현하는 수단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의 취향이 묻어나는 물건을 살 때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깊은 고민 끝에 선택한다.


동시에 남들이 다 예쁘다는 유행에도 거부감 없이 휩쓸리는 편인지라, 내 취향을 찾기까지 거듭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그 과정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일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지금껏 꾸준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디자인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있었는데, 이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예시가 될 수 있는 패션 브랜드의 사례를 몇 가지 들어 설명해 보려고 한다.

 

 

 

형태와 용도의 미스매치


 

첫 번째로는 기존에 존재하는 사물의 형태를 빌리지만 용도를 달리하는 방식이다. 실질적으로 제품을 디자인하는 단계에서는 다른 사물의 모양만 차용해 버리면 끝이다. 하지만 디자인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형태와 용도를 어긋내는 대담한 장난기가 더없이 매력적이다.

 

그 대표격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는 '모스키노(MOSCHINO)'다. 이탈리아의 패션디자이너 프랑코 모스키노가 1983년도에 설립한 브랜드로, 자유분방함과 반항정신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모스키노 가방의 대표격인 바이커백 역시도 라이더 재킷의 디자인을 빌린 형태인 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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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MOSCHINO

 

 

그 기발함이 조금 더 과감해지면 이런 결과물마저 나온다. 좌측의 가방은 세차장을 모티브로 한 2016년 s/s 컬렉션 중 하나다. 고가의 명품 가방이 도로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트래픽콘 모양이라니, 일상에서는 도무지 착용할 수 없는 디자인이지만 모스키노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아이템이다. 향수 바틀도 일반적인 선택지를 따르지 않는다. 유리창이나 거울을 닦을 때 쓰는 세정제의 모양새다. 화장대보다는 화장실에 있어야 더 자연스러울 디자인이다.

 

모스키노의 디자인이 매력적인 이유는 패션계 특유의 위계를 비틀고 조롱하면서 기존의 체계와 사고방식을 붕괴시킨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 모스키노는 "좋은 취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관성적인 움직임을 거부하는 그의 패션 철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문장이다. 비록 그는 44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동업자였던 로셀라 자르디니와 2013년 바톤을 이어받은 제레미 스캇의 활약으로, 현재까지도 매 시즌 새롭고 위트 있는 디자인이 탄생하고 있다.

 



상상조차 못했던 특별한 조합


 

두 번째로는 예상조차 못했던 두 브랜드의 협업으로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는 경우다. 콜라보레이션은 특정 브랜드가 자신의 고정 팬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면서 각자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합이라면 가장 성공적이다.

 

내게 그 대표적인 예시는 2018년 성사된 '펜디(FENDI)'와 '휠라(FILA)'의 콜라보레이션이다. 펜디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하이엔드 브랜드 중 한 곳인데 반해, 휠라는 10대~2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캐주얼한 스포츠 브랜드다. 둘의 만남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이들은 뚜렷하게 대비되는 각자의 정체성을 절묘하게 배합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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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FENDI

 

 

이 콜라보레이션은 두 브랜드가 모두 'F'로 시작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시작됐다. 휠라의 워드마크 로고를 이루는 글꼴과 색감을 그대로 차용해 펜디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스니커즈의 경우 스포츠 아이템이기 때문인지 휠라의 색깔이 펜디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숄더백은 기존의 펜디 로고에 이종결합된 로고를 나란히 배열해 충돌하면서도 의외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두 브랜드의 조합을 한층 더 강조했다.

 

이 컬렉션으로 펜디는 기존의 고객층 외의 젊은 세대를 공략할 수 있었고 휠라 역시 브랜드 이미지를 한층 상승시킬 수 있었다. 이렇듯 각 브랜드가 지니는 무게감과 정체성이 대척점을 이룰수록, 그리고 그 조합이 생소함과 조화로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수록 그 콜라보레이션은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콜라보레이션이 우후죽순 쏟아지지만, 펜디와 휠라의 사례가 오래간 내 기억에 남는 이유다.

 

 

 

해체한 뒤 재조합하기


 

마지막으로는 기존의 형태를 파격적으로 재구성하는 경우다. 패션 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지금, 의복의 형태는 셀 수 없이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갔지만 그 기본이 되는 구조 자체는 견고하게 자리잡혀 있다. 그 구조는 가장 편안한 동시에 가장 보기 좋은, 다시 말해 안정 그 자체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이 형태를 해체해 전에 없던 방식으로 재조합해 본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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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CONVERSE


 

그 시도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재치 있게 풀어낸 사례로 중국 출신의 디자이너 '펑첸왕(Feng Chen Wang)'과 글로벌 스니커즈 브랜드 '컨버스(CONVERSE)'의 만남으로 출시된 이 신발을 소개하려고 한다. 명실상부한 컨버스의 인기 모델인 척 70 두 켤레가 하나로 합쳐진 듯한 모양새인데, 기본적인 검은색 척 70의 외피에 4등분된 아웃솔이 한 겹 더 결합된 구조다.

 

무게도 보통 컨버스 스니커즈의 거의 두 배에 육박하는 데다 신발의 기능성만 따졌을 때는 결코 효율적이지 않은 디자인이지만, 척 70 고유의 디자인을 그대로 활용하되 자유롭게 해체하고 다시 합쳐 새로운 조형미를 창조해 냈다는 점만으로도 시선을 빼앗는다.

 

*

 

패션은 시대의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분야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포착해 시대를 앞서가는 것은 디자이너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계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다채로운 시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 그 사이에서도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디자인 사이의 공통점이 있다면,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인 것 같다. 파격적인 시도를 즐기지 않는 나지만, 옷차림새를 완성할 때만큼은 다른 누군가의 독자적인 감각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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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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