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슬픔이 강이 되어 나를 잠식할 때 -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슬픔이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해일로 몰려오리
글 입력 2022.04.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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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이 짧은 어휘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이 느끼는 본능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느끼는 슬픔은 그것으로 온전히 새로운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는 슬픔은 온갖기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감히 그 슬픔을 위로할 수도 없게끔 하는 게 어쩌면 가장 슬프다.

 

감정은 순환하기 때문에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끔 삶에 영향을 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많은 슬픔이 탄생하고 소멸하고 있다. 그런데 그 슬픔이 역류한다면, 그래서 순간을 잡아먹고 하루를 잡아먹어 삶이 슬픔으로 가득찬다면, 그건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병이 되고 편견이 되어 그 사람을 괴롭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슬픔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 슬픔의 강에 침전하는 것이 그가 현실을 마주하는 것보다 덜 고통스러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낙후된 골목, 치밍과 이야오는 함께 자랐다. 치밍은 부모님의 가게가 성공해서 고급 아파트로 이사를 갈 예정인 모범생이지만 이야오는 부모님의 이혼과 어머니의 가정폭력으로 관심으로부터 소외된 소녀다.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백마 탄 왕자님은 불쌍한 소녀를 구원해 진실된 사랑을 이룬다. 보통 이런 게 슬픈 소녀를 위시한 소설의 레퍼토리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내 예측을 이야오는 비웃는다. 그녀의 슬픔은 쉽게 재단할 수 있는 수준이 절대 아니였다. 임신과 낙태, 가정폭력, 그리고 학교폭력까지.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이야오가 맞닥뜨리는 고통은 지속적으로 누적되었고 그건  너무나도 가혹했다. 애초에 한 가지의 것만 겪기에도 힘들다. 특히나 아직은 너무나도 어리고 보호가 필요한 중고등학생 나이의 이야오가 주변인으로부터 아무 사랑도 못 받는다는 것, 그것을 그리고 이야오가 호소하는 것이 책을 읽으며 가장 힘들었다.

 

구썬시는 100위안에 몸을 판다고 소문이 난 이야오에게 돈을 건네지만 이후 도와준다. 보통 책을 읽으며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게 되는데, 구썬시를 악으로 인식하고 읽다가도 이 아이가 선의 행위를 할 때면 헷갈렸다. 나는 구썬시를 응원해야 하는가? 분명 이야오와의 첫 만남은 이야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었던 것인데, 자꾸만 이야오를 도와준다.

 

그러나 후반부에 구썬샹의 죽음에 대한 원망을 이야오에게 돌리고, 그러다가도 전학 간 학교에서 중위엔을 도와주려는 모습을 보면서 구썬시는 그저 평범한 군상이라고 해석했다.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에게나 적용되는 일이다. 구썬시는 그런 모습을 통해 치밍과 이야오 또한 이중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자신으로 하여금 표현해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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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야오는 죽었다. 구썬샹도 죽었다. 아무런 관계도 없어보이는 듯한 두 소녀가 얽히고 얽혀 죽었다. 치밍은 이야오라는 변질된 어둠으로부터 벗어나 구썬샹이라는 빛을 찾고자 하였으나 결국 빛과 어둠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치밍을 통해 작가는 무조건적인 명암의 대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듯 하다.

 

구썬시는 그 사이에서 역류된 슬픔이 변한 강물에 휩쓸렸다. 그는 이야오를 잊지 못한다. 전학 간 학교에서도 이야오처럼 학교폭력을 당하는 중위엔을 도와준다. 그러나 중위엔은 이야오처럼 단순한 학교폭력 피해자가 아니였다. 오히려, 자신에게 욕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창백하게 굳어버린 구썬시. 그것은 곧 슬픔이 멎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잔존해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표현한 걸까.

 

책의 말미에도 표현된다. 신데렐라는 영리한 머리로 자신을 불쌍한 모습으로 보이게끔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어쩌면 우리도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자 한 번쯤은, 머리를 굴려 자신을 더욱 과대하게 나타낸 경우가 있지도 않을까. 오히려 슬픔에 잠식되어가는 자신을 즐기고자 말이다. 그렇게 나조차도 현실을 조작해야만 그 아픈 나날들을 외면하고 회피할 수 있으니까.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었다. 강은 흐른다. 그래서 슬픔은 고여있지 않고 흐른다. 그래야 맞는 건데, 어쩐지 그 역류한 물줄기에 빠져버린 체로 흘러가느라 바다에 도달한 것만도 같다. 이야오의 슬픔은 우리 주변에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그러나 겉으론 보이지 않는 이야기다. 궈징밍의 화려한 표현과 수려한 문체로 만들어진 그 푸른 슬픔의 강에 자신을 담가 흘러가는 감정을 맡겨보는 것이 어떨까. 책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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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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