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죽음이란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 -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글 입력 2022.04.0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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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바람, 그리고 수백 가지 단어



연극을 보면서 이상하리만치 계속해서 세계적 장송곡인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천개의 바람 천개의 바람이 되었죠"

 

천 개의 바람이 되었다는 위로 만큼이나, 눈을 뜻하는 단어가 수백 가지나 있다는 것이 로리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였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삶을 '일차원의 세계'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죽음 이후의 삶이란 도저히 한 단어로 표할 수 없는 깊고, 넓은 상상의 영역이 아닌가. 죽음의 세계와 현실은 교류하며 종종 접촉할지도 모를 일이다. 애도는 그런 믿음에서 비롯된 기도일지 모른다.

 

로리는 죽은 아버지의 유골을 품고 북극으로 향한다. 로리의 삶에는 극단적인 변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아버지의 꿈이 북극 탐험가였다는 것을 기억했다. 아버지가 북극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버지의 유골이 그곳에 있다면 아버지가 북극에서 꿈을 펼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죽음의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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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의 여정은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로리는 슬픔을 배운다. 그리고 그 슬픔을 풀어나가는 법을 연습한다. 사람과의 만남을 배운다. 그리고 그 만남으로부터 모든 타인과의 연결 감각을 느낀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수많은 단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있음을 배운다. 그런 것이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성장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죽음이란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


 

요즘 너무 많은 죽음을 보았다. 죽음과 연결된 슬픔의 온갖 얼굴들을 보았다. 나는 죽음을 슬픔 그 밖의 단어로는 체감할 수 없었고, 도저히 다차원적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내가 본 것은 억울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구조화되어 버린 죽음,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게끔 명백히 가둔 방안에서의 죽음. 나는 슬프고, 억울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가도 이 마음의 정체는 사실 슬픔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진실을 끄집어낸다.

 

죽음은 내 옆에, 내가 사랑하는 주변인들의 옆에 있다.

 

죽음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도록 해준 건 최근 읽은 책 한 권 덕이다. 그 책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촛불이 수직으로 타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어. 항상 좌우로 흔들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있는 것들의 힘이야. (...)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이어령,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죽음이 중심이라는, 진정한 수평이라는 사유는 새로웠다. 죽음이 돌아갈 곳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흔들리는 오늘의 생 또한 그저 죽음을 향한 한걸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이제 닳아 버린 사유지만 오늘의 내가 멋대로 굴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

 

 

 

흔들리는 생이 남았다


 

동시에 나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로리가 아버지의 유골을 뿌리는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유골은 아래로 내려가는 대신 위로 올라가다 넓게 흩어진다. 그것은 "수평의 중심점"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에 위계가 없듯이, 수평의 세계에는 위계가 없다. 최선을 다해 흔들리던 로리의 아버지는 로리 덕에 원하던 곳으로 돌아간다. 수평의 세계, 눈의 세계, 수백 가지 장소인 북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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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로리는 치열하게 흔들릴 일만 남았다. 죽음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보니 이제는 내 안에서 생의 의미가 흐려진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흔들리나.

 

그럴 때는 슬픔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억울한 죽음의 얼굴.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이 생을 더 힘껏, 애써서 살아내야지. 그래야만 수평의 세계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겠다.

 

떳떳하게 흔들리는 일만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태초에 죄를 짊어지고 태어났다. 그래도 죽음 앞에서만은 산뜻하고 싶다. 죄인도 선인도 아닌 투명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것만으로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흔들릴지, 그 고단한 문제에 대해서는 무대 위 로리와 함께 더 오래 고민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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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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