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N포세대’와 ‘갓생’ 사이 잠 못 드는 청춘 - 드라마 '우리가 못 자는 이유' [드라마/예능]

청춘의 불안이 향하는 곳
글 입력 2022.04.0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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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드라마 <우리가 못 자는 이유>의

스포일러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외치는 목소리를 들은 것 같소.

‘더 이상 잠들지 못하리라, 멕베스는 잠을 죽였다. 저 순수한 잠을,

헝클어진 근심의 실타래를 풀어서 곱게 짜주는 잠,

하루하루 삶을 마감하는 죽음이요, 쓰라린 노고를 씻어주며,

상처 입은 마음의 진정제요, 대자연의 성찬이요,

삶의 향연에서 최고의 자양분인 잠을.’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제2막 2장 中

 

 

셰익스피어는 그의 희곡 『맥베스』에서 살인을 저지른 '맥베스'가 더 이상 편히 잠들지 못할 것을 암시하며, 잠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잠을 통해 우리는 하루를 마감하며 ‘내일’을 맞이할 에너지를 얻는다. 이렇게 잠은 건강하게 삶을 이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잠에 들지 못한다.

 

 

마음에 마음을 가누려 애를 쓰던

아이를 안아줄 어른이 되었다는 게 자랑스러워.

가끔은 좀 막막해도 견디고

내일을 위해 잠이 들 줄 알아. 이젠 울지 않거든.

 

윤하, '잘 지내' 가사 中

 


끝없이 이어지는 불안이 오늘처럼 내일도, 내일처럼 모레도 계속될 것 같은 무력감과 좌절감이 밀려올 때, 그럼에도 ‘내일을 위해’ 잠에 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불면의 밤을 보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N포세대’와 ‘갓생’ 사이에서 부유하는 청춘들의 불면(不眠)


 

[꾸미기]포스터.jpg

 

 

여기 각자의 이유로 잠 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2017년 방영된 드라마 ‘우리가 못 자는 이유(연출 강수연/극본 백소연)’ 이다. 5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지만, 2022년 청년들이 마주하는 불안은 드라마가 방영되던 때보다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청년 세대에게는 다양한 이름이 붙었다. 그중 ‘N포세대’라는 이름은 극심한 취업난과 심화된 양극화, 다양한 사회 갈등 속에 삶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청년의 현실을 짚어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청년 세대는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고 개인적인 삶을 중시하는 ‘MZ세대’로 불리며, ‘갓생’을 살기 위한 이들의 노력이 다양한 콘텐츠로 쏟아져 나왔다.

 

‘갓생’은 ‘신’을 뜻하는 영어단어 'God'과 ‘인생’을 합친 단어로, 높은 성취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자기개발을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딘가로 수렴되지 못하고 끝없이 발산할 뿐인 노력의 기저에 있는 것은 오히려 ‘N포 세대’라는 이름의 배경이 된 불안과 무력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실 나도 불안해.

너무 너무 좋아하는 거 하는데, 너무 너무 오래 혼자서만 하니까,

이게 아니면 어떡하지, 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거 같은데,

그게 너무 무서워서 잠 잘 시간 아껴가며 그리고 또 그리는 거야.”

 


드라마 속에서 에너지 드링크를 달고 사는 웹툰 작가 지망생 ‘영재’는 ‘유정’에게 늘 희망을 놓지 말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계속 노력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에 불안해하며 강박적으로 그림을 그려 왔다.

 

 

"벌써 2년이나 됐어요.

처음엔 나한테 재능이 없는 건 아닌가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오더니,

'뭐 없으면 어때 끈기가 있으면 되지' 했더니만 버티는 것도 염치가 없어져서

또 잠이 안 오고, 다 포기하면 잠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모르겠어요 이젠.

왜 잠이 안 오는지도. 그냥 밤에 자려고 누우면 등에서 식은 땀이 나."

 


‘유정’은 극단을 꾸리며 열정적으로 꿈을 좇다가 현실의 벽 앞에 극단을 접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온다. 유정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경험은 없는 상황에서 힘들게 일하는 부모님을 보며 죄책감과 무력감이 밀려온다. 유정이 추구하던 가치는 현실이 요구하는 가치와는 너무 다른 것이었다.

 

너무나 불안하고 막막한 현실에 잠을 잃어버린 영재와 유정에게 무작정 희망을 품으라고 말하는 것도, 어차피 안 될 거니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도 너무 잔인하다. 우리가 마주한 고통이 어디까지가 구조의 문제이고 어디까지가 개인 역량의 차이인지, 그 경계를 명확하게 찾기는 어렵다. 그리고 하나의 ‘세대’로 묶을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청년들은 각기 다른 위치에서 각기 다른 고통과 고민을 마주한다. 그렇게 구조의 문제와 개인의 역량 사이에서 부유하는 청년들은 끝없는 불안과 자기 연민, 혐오와 강박의 함정으로 빠져들어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개인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성취 뒤에 있는 구조를 지우지 말아야 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외면하며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 일을 포기해서도 안된다. 각 개인이 구조 속에서 무엇을 얻고 잃었든, 우리는 구조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동시에 우리의 노력과 성취의 가치는 분명 존재하고 다양한 노력으로 세상은 변화해 왔다. 다만 그 노력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지, 얽히고 설킨 구조와 개인의 문제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과 불안이 어디를 향하는지에 주목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청춘의 불안이 향하는 곳


 

[꾸미기]insomnia image.jpg

 

 

이 드라마는 ‘잠 못 드는’ 청년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그들이 느끼는 불안과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정과 재영의 불면(不眠) 뒤에 있는 구조를 가리지는 않는다.

 

 

"그럼 유정씨는 이력서 쓰고 있는 거에요?"

"그것도 쓰고 있는데, 잘 안 되네요."

"아니, 왜요?"

"짧은 인생의 역사라고는 망한 인생 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자기소개서에서는 뭐 인생의 교훈을 얻는 일화를 쓰라는데,

아니, 인생의 교훈은 아주 쓰라린 패배에서 얻는 거 아닌가?

(…)

그렇다고 솔직하게 쓰면 구질구질하다고 안 뽑아 줄 거잖아요.

그저 적당히 쓰라리고 적당히 교훈적인 경험, 아오 까다로워."

 


획일적인 가치를 요구하는 경쟁 사회는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어렵게 한다. 유정이 포기한 꿈은 영재 말처럼 ‘안 될 수도 있는데, 될 수도 있는’ 것 중 하나일 수 있고, 열 번 실패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인형 뽑기를 다섯 번 실패했다고 그만두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유정이 마주한 실패는 유정의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가 버렸고, 그 이후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런 그에게 왜 더 도전해보지 않았냐고, 왜 그렇게 실패 앞에서 쉽게 좌절한 거냐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영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밤낮으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여 제작사를 찾아가지만, 삽화 일만 떠맡고, 고료조차 주지 않는 담당자에게 ‘재능기부라고 생각하라’는 말을 듣는다. 결국 영재는 ‘좋아하는 것 한다고 무시하지 말라’며 화를 내고 자리를 뛰쳐나오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이유로,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착취를 정당화하고 노동과 창작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현장에서 어떻게 온전한 성취를 이룰 수 있을까?

 

유정과 영재가 경험한 실패는 그들을 점점 고립시켰다. 고립은 개인이 겪는 실패와 불안, 무력감 뒤에 있는 구조를 지우며, 이를 모두 개인의 탓이나 혐오에 취약한 집단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이렇게 구조의 문제와 개인의 차이 사이를 부유하던 불안과 긴장은 쉽게 혐오로 흘러가 버린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청년세대가 마주하는 끝없는 불안의 해결책은 혐오도 아니고, 개인의 경험에만 비추어 누구의 아픔이 더 큰지 경쟁하는 것도 아니다. 아픈 사람들끼리 누구의 아픔이 더 큰지 밝혀내는 것만으로는 누구의 아픔도 사라지게 할 수 없으며, 혐오는 기존의 질서와 위계를 더 강화하고 또 다시 억압과 차별을 내포하는 구조를 재생산할 뿐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는 각 개인이 고립되는 것을 경계하고, 혐오와 억압을 지적하며 다양성의 가치를 주장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갓생’이 그동안의 자기개발과 다른 점은 자신만의 가치에 좀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그저 기존의 구조에서 요구하던 가치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시도 자체가 더 다양한 삶의 모습이나, 개인이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들이 더 드러나고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모여 차별과 혐오를 짚어내고 함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기존의 질서와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한 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놓지 않는 것은 어쩌면 희망을 놓지 않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불면의 밤으로 연결된 수많은 '나'와 당신, 그리고 또 다른 영재와 유정 앞에 '유정'의 아버지가 전했던 위로를 놓아두고 싶다.

 

 

"유정아, 여기 이 큰 아파트, 이거 아빠가 전부 다 지키는 거야.

그래서 여기 사는 사람들 밤마다 마음 푹 놓고 자는 거야.

우리 같이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은 이렇게 세상을 지키는거야.

우리가 이 어두운 밤을 다 지키는 거야."

"그럼 나는? 나는 뭘 지킬까 아빠?"

"너는 니 꿈을 지켜야지, 그게 이 아버지 마음도 지키는 거야."


 

끝없는 불안과 막막한 현실에도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당신의 오늘에도 나의 오늘 에도 깃들 수 있기를, 그래서 내일로 향하는 오늘 밤이 조금은 덜 힘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효중 태그 .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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