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와 맞닿은 현실과 그렇지 않은 현실의 공존. '헬프 미 시스터' [도서]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을 무겁지 않게 그려낸 이야기
글 입력 2022.03.3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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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책이나 영화,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콘텐츠들을 보다 보면 내가 경험한 현실이 참 좁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엔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제각각 다른 것들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을 텐데, 종종 내가 경험하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때는 참으로 낯설기도 하고 아득히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나와 그렇게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이번에 읽은 ‘헬프 미 시스터’ 속에는 나와 맞닿아 있던 현실과 그렇지 않은 현실이 공존하고 있었다. 비슷한 것을 봤지만 전혀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잘 살지도 그렇게 못 살지도 않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운이 좋게도 아직까지는 그렇게 힘든 일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 이런 나에게는 책 속 주인공들이 말하는 ‘플랫폼 노동자’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 ‘플랫폼 노동자’라는 워딩 자체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조금 더 책에 대한 생각을 나열하기에 앞서, 이 책이 어떤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지 얘기하자면 아래와 같다.

 

 

약물 성범죄를 당할 뻔한 뒤 회사를 그만둔 수경, 그런 딸의 곁을 지키는 엄마 여숙, 이렇다 할 직장 없이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버지 천식,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큰 전업투자자 남편 우재, 수경의 집에 얹혀 살고 있는, 일찍 철들어버린 조카 지후와 준후. 그리고 수경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틴챗' 유저 은지와 수경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보라까지.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을 겪었지만, 수경의 가족은 생계유지를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플랫폼 노동에 뛰어들게 된다. 자차 배송을, 뚜벅이 배달을, 대리운전을, 그리고 여성을 위한 심부름 대행 어플 '헬프 미 시스터' 일을. 이서수는 15평짜리 낡은 빌라에 사는 다섯 식구와 그 집을 오가는 두 소녀의 좌충우돌 '플랫폼 노동 도전기'를 통해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대신 "서로를 껴안고 구원"(소설가 박상영)해야 한다고 전한다.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단단하게 성장해나간다.

 

 

줄거리에서도 느껴지듯 ‘헬프 미 시스터’는 다소 무거운 얘기를 다루고 있다. 성범죄를 당할 뻔했던 ‘수경’, 아무도 생계를 책임지지 않은 가족 구성원, 성범죄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은지’ 등.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적으로 어두운 부분과 사회적 약자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큰 주제였던 ‘여성’과 ‘여성 노동의 현실’부터, 노인, 청소년, 가난한 이들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문제들이 가득했다.

 

꽤나 어두운 이야기가 가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무겁지 않게 풀어낸다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불안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자칫하면 너무 어두워지거나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문제를 부담 없이 풀어냈다. 이렇게 느껴질 수 있었던 건 인물들의 각자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작가는 특정 한 인물에 집중하지 않았다. 모든 인물의 가운데에 있는 ‘수경’으로만 집중했다면, 이렇게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낼 순 없었을 것이다. ‘수경’, ‘우재’, ‘여숙’, ‘천식’, ‘준후’, ‘은지’, ‘보라’ 각 인물들의 시선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개하니, 같은 상황을 두고도 어떻게 다르게 풀어내고 있는지와 각자의 관점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니 한층 풍성하면서도 마냥 무겁지 않았다고 느꼈다. 또한, 각자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계기를 통해 지금의 현실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기 위해 변하려고 하는지 등을 알 수 있어서 인물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기도 했다.

 

 

오늘의 비애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딱히 오늘의 비애가 아니다. 과거의 비애가 선을 침범해 오늘의 비애로 넘어온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그 비애와 선을 그어야 한다. – p39

 


앞에서 던졌던 화두를 다시 끌고 와서 얘기해 보면, 이 책은 나와 맞닿은 현실과 그렇지 않은 현실의 공존이었다. 소설 속에서 ‘플랫폼 노동’이라 나오며 그들이 생계 수단으로 선택했던 ‘택배’, ‘배달’, ‘심부름 어플’ 등은 나의 현실에서 아주 가깝게 있는 것들이다. 내 생활 편의를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이들보다 운이 좋은 나는, 생계 수단으로 여기는 것을 부수적인 수입을 벌 수 있는 수단 정도로만 생각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돈벌이로 택했을 때는 그 나름의 고충이 있었겠지만,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다. 즉, ‘플랫폼 노동자’로서의 현실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때 나는 참으로 내 시야가 좁다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힘들겠다’, ‘고생하신다’ 등의 생각은 했지만, 그 일을 선택했을 때 따라오는 상황들은 처음 마주하는 것이다 보니 꽤나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루 일을 배정받기 위해 끝없이 알람을 켜 둬야만 하고, 배달을 하면서도 맞닥칠 수 있는 위험 요소도 상당수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 꽤나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이외에도 성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여성, 틴챗, 총판 등 청소년에게 쉽게 노출되어 있는 위험, 키오스크 주문 등 세상의 빠른 변화 앞에 당황하는 어르신 등의 상황을 보며, 내가 바라보는 현실과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간극이 크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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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미 시스터’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서이수 작가의 문체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인 것 같다. 아마 무거운 얘기를 덜 무겁게 할 수 있는 것에는 작가의 담담한 화법이 베이스로 깔려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문장 안에 대단한 단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멋들어진 수식어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인물의 감정과 힘이 느껴지는 문장들을 종종 마주하고는 했다. 특히, 인물의 심정의 변화를 풀어내는 부분에서 이런 문체가 더욱 도드라진다고 느껴졌다. 예를 들면, 아래 내용들과 같다.

 

 

그래 늦지 않게 불을 켜줘야지. 너무 어두워지지 않게. – p62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다고 굳게 믿었다. 자신의 가능성을 딱 그 정도로만 한정한 것에 불과했다. 도대체 자신의 삶은 몇 평이나 되는 걸까 생각했다. (중략) 그들을 뒤로 밀어 놓고 달려가려는 시대의 머리채를 확 잡아챌 것이다. 같이 가! 하고 외치며. – p271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세상이 변하는 걸 알아챌 수 있을 때까지. – p275

 

 

위에서 꼽은 몇 개의 문장들은 주로 ‘여숙’씨에게 변화가 찾아올 때 등장했던 문장들이다. 할 수 있는 게 청소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그녀는, 딸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돌보기 위해 ‘플랫폼 노동자’로 새로운 환경에 뛰어든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꼭 청소일 만이 내 일이 아니었음을, 다른 일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정한 한계는 자신을 작은 방안에 가둬 두게 하는 생각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세상의 변화에 맞춰 함께 변화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언젠간 너무나 빠른 변화에 지치겠지만, 세상의 변화를 쫓을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쫓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위의 문장들은 평범하게 보이지만, 그 속의 그녀의 비장함이 녹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인물의 감정이 담긴 문장인만큼 힘이 느껴지는 문장으로 다가왔던 부분이어서 인상에 남았다.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약자’들이 서로가 서로의 의지가 되어주며 성장하고, 끝내 은은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헬프 미 시스터’.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는 쉽게 읽히는 책이라, 시간이 날 때 한 번씩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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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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