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람답게 일할 권리를 향한 ‘깩소리 한 번’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글 입력 2022.03.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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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경쾌한 리듬과 단조의 어두운 멜로디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 노래는 80년대 민중가요 ‘사계’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도 간혹 등장해 언뜻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 곡은 사계절이 지나고 또 다시 봄이 와도 풍경 하나 누리지 못한 채 일에 매진해야 했었던 당시 노동자의 애환이 담겨 있다.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던 한국 사회의 과거에는 기계처럼 딱 떨어지는 가창으로 슬프고 섬뜩한 정서마저 느껴지는 이 노래와 같이 숨길 수 없는 잔혹한 이면이 있다. 전태일의 분신 등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당시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인식은 한국이 엄연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도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안타까운 과거로 남아 있다.

 

그러나 당시의 노동을 단순히 슬프고 아픈 역사로 단정하고 마는 것은 현재에도 여전히 그 연장 선상에서 발생하고 있는 노동 문제를 간과하게 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그것에 맞서 싸워 무언가를 성취하기도 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지나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노동의 가치가 개인과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 가치가 어떤 과정에서 쟁취되고 수호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지금의 노동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당시의 노동은 지금의 사회와 상관없는 관념이 아닌 살아 있는 자들의 현실이었고, 현재의 기반을 이루는 그 현실 속에서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라는 외침을 쉬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다. 지금의 현실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때 당시가 ‘과거’처럼 느껴지도록 분명한 발전을 이뤄낸 현장의 주역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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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타는 여자들》은 전태일 분신사건 이후 결성된 평화시장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일원이자 미싱 노동자였던 세 여성을 중심으로 하여 70년대 노동자들의 경험을 구술의 형식으로 재현한 다큐멘터리이다. 구술 인터뷰, 좌담, 당시 노동자들의 기록, 화가의 삽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당시 노동자들의 삶을 불러들이는 이 영화는 노동에 관한 크고 작은 사건들과 함께 그것과 얽힌 개인의 미시사에 면밀히 접근하며, 거시적인 역사 기록으로는 실감하기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과 그것을 맞닥뜨리며 변화했던 삶의 면면을 조명한다. 대학생이나 지식인 등에 비해 비교적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의 투쟁을 기록하는 영화는 투쟁의 시작부터 과정, 그 결과까지 개개인의 회고를 통해 돌아보며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순간을 역사로 호명한다.

 

 

 

이런 식으로 살아야겠다


 

노동조합의 시작이 그러했듯 세 여성의 투쟁의 계기에는 전태일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노동 운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다가, 전태일 1주기 추모식에서 전태일과 노동 운동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는 회고가 이어진다.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변화의 필요에 관한 자각이었다. 세 여성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활동했던 노동자와 조합원들의 다양한 구술을 풍부하게 담는 영화는 당시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그에 따른 고충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는데, 그것은 상황에 대한 당사자의 고발인 동시에 노동 운동의 필요성과 노동자의 삶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는 주요한 요소이기도 한다. 임미경 씨는 과도한 노동을 강제하는 공장에서 탈출하고 ‘혼이 난’ 경험을 최초의 데모라고 회상한다. 비인간적인 처우를 견디다 못해 잠시 휴식을 가진 후 돌아온 것은 모욕뿐이었는데도 그는 당시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좋다, 다음부터 이런 식으로 살아야겠다.’ 저항의 기쁨을 경험한 그들은 변화의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은 최초의 노동자들을 위한 교실인 ‘새마을노동교실’을 설립한다. 그러나 교실은 ‘사상이 불순하다’는 의혹에 의해 개관과 동시에 문을 닫고, 이에 반발한 평화시장의 여공들이 농성을 단행하여 교실의 재개를 이끌어낸다. 관계자가 피해를 보는 것을 원치 않아 온전히 본인들만의 기밀로 유지하며 외부의 도움 없이 내부 단합으로 농성을 성공시킨 것이다. 노동과 저항의 경험으로 터득한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감각은 무거운 책임과 위험에도 무뎌지지 않고 날카롭게 구조에 균열을 낸다. 학업의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여공들은 재개된 교실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며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삶의 방법을 습득해나간다.

 

노동 교실은 ‘여자라는 이유로’ 금지되었던 학업과 취미 생활을 향유할 뿐만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고 뜻을 모을 수 있는 공론장이 되기도 하였다. 당시 여공들은 폐장한 교실의 문을 다시 열어 당연한 권리를 되찾는 과정에서 굉장한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것은 노동 교실이라는 공간으로 집합한 이들이 스스로 심은 변화의 씨앗이 노동 환경의 개선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가해지고 있는 부당한 억압과 착취에 대한 저항과 반발의 동력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성취에 기뻐하되 절망과 좌절의 순간에도 함께 보듬어줄 수 있는 동료와 선후배의 연대가 있었다. 대부분의 출연진이 빠뜨리지 않고 언급하는 노동 교실에서의 순간은 모두가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동시에 집단의 연대를 강화하여 서로의 희망이 되었던, 그 자체로 노동 운동의 결정적인 시작이었다.

 

 

 

깩소리 한 번


 

그러나 노동 교실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탄압과 위협의 대상이 된다. 불온세력으로 몰려 잡혀간 노동자의 어머니가 법정모욕죄로 구속되면서 노동 교실을 폐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오자, 노동자들이 ‘깩소리 한 번’의 항쟁을 결단하면서 영화의 소재가 된 '1977년 9월 9일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사수 농성 사건’이 발생한다. 노동자들은 목숨을 담보로 하고 몸에 석유를 뿌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 손목과 배를 그으며 거세게 저항한다. 오직 노동 교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단행한 것이다.

 

하지만 공권력은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시위대에 갖은 폭력을 행사했다. 주민등록번호까지 조작해서 미성년자를 성인 구치소에 가두기까지 한다. 기본적인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않아 수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권력은 법을 자의적으로 이용하여 구조를 탈피하고자 하는 이들을 탄압했다. 시민의 요구를 듣고 이를 민주적으로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는 그 대신 ‘누가 시켰냐’는 물음만을 반복하면서 그들의 자아와 권리마저 인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사람다운 삶이라는 매우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인 소망을 요구했을 뿐이었다. 제2의 전태일은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던 임미경 씨는 ‘누군가가 죽어야 바뀔 것’이라고 믿었다며 현재의 안위와 이익을 희생할지라도, 심지어 죽어야 할지라도 더 나은 삶을 요구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당시 여공들의 결단력과 간절함을 대변한다.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해


 

그러니 영화에서 재현되고 상기되는 당시의 사건 사고들은 이들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땐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노동 인권의 진보에 기여한 뜻깊은 순간이지만, 국가마저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상황에서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야 했던 이들은 말로 설명하기조차 힘든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는 쉽게 음모와 왜곡의 대상이 되었던 당사자들의 상흔을 진실하게 꺼내어 보이면서도, 농성 당사자들의 대화를 통해 사건을 불러들임으로써 그들이 아픈 경험을 혼자 짊어지지 않도록 모두에게 나누고자 한다. 그러므로 영화는 사건의 객관적인 재현뿐 아니라 노동 운동의 동력이 되기도 한 개개인의 상처를 보듬는 정서적인 공감과 연대를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시도한다.

 

영화는 말미에 미싱 작업실을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는다. 노동자들은 벽에 비춰지는 당시 자신의 사진을 보고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을 건넨다. 열심히 잘 살았다고, 너를 칭찬해주고 싶다고, 잘 견뎌내 줘서 고맙다고 진심을 다해 토닥이는 말들은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면서도 듣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당시의 순간을 아픔까지도 숨김없이 되새기고 다른 누구도 아닌 당사자 개개인의 언어로 복기하는 이 영화는 그 자체로 당사자들에게,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건네어지는 위로와 격려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는 민중가요 ‘흔들리지 않게’를 함께 부르며 영화의 막을 내리는 여공들의 모습처럼 연대의 형태로 구체화하여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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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때로는 사용자나 정부뿐 아니라, 노동을 천시하고 사용자의 편에 서서 구조에 순응하기를 강요하는 모든 시선과 맞서야 하며 때로는 그것이 가장 투쟁을 힘들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전태일이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과 함께 분신을 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직업에 귀천을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며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서는 내막을 알려고 하기보다 아래로부터의 변화에 반발부터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노동자의 삶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노동이 각자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지금도 힘든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노동자들의 싸움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 그것이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확신을 실제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거를 재현하면서도 미래를 안내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지금의 현실에 머물지 않고 과거를 반추하고 성찰하여 더욱 발전해야 한다는 지표이며, 사람다운 삶을 향하는 궤적이 얼마나 많은 삶을 살렸는지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처럼 의미 있는 사료를 영화의 형태로 만날 수 있음에 기쁘다. 여전히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수많은 이들에게 이 영화가 또 다른 연대의 시작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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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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