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혐오가 익숙해진 시대 [사람]

글 입력 2022.03.18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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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어렸을 때의 내가 꾸준히 고민을 해봤던 문제였다.
 
사실 범위를 좁혀서 한 개인의 행복을 따져보기만 해도 실현하기에 어려운 문제인 건 알고 있다. 개인만 해도 늘 행복할 수는 없고, 애초에 행복하지 않은 일이 있기에 반대로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사람이 늘 행복하기에는 어렵다’라는 결론을 내고 한동안 그 고민에 대해 잊고 있었는데, 요즘 그 고민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혐오’. 요즘 시대에 가장 대두되는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혐오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혐오하는 경우도 있고, 그저 조금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이 보이기만 해도 혐오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혐오가 익숙해지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애초에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혐오가 흔하게 보인다.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문제인 성별 문제에 이어, 어린이와 노인 혐오, 장애인 혐오까지, 굉장히 다양한 양상이 보인다. 이러한 혐오의 공통점은 편을 가르려고 하는 것이다. 단체로 똘똘 뭉쳐 일종의 소속감을 느끼고 상대편을 혐오한다. 마치 청팀과 백팀의 싸움처럼.
 
하지만 이러한 편 가르기는 사람을 단편적으로만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는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정의할 수 없는 개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다양한 개개인이 살아가는 세상을 몇 개로만 나누려고 하는 것에는 분명히 허점이 생겨나고, 그것은 ‘편견’이라고 불린다.

위와 같은 혐오가 담는 가장 큰 메시지는 이것인 듯하다: ‘왜 그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유난이지?’ 우리는 상대의 고민과 고통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설사 나에게는 쉽게 해결될 일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그렇지 않은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최근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지하철이 연착되는 일이 몇 번 발생하자, 이를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보여 꽤 놀란 적이 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자유롭게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조금만 붐벼도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기에 훨씬 불편해진다. 당연하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우리는 적어도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해도.

때때로 혐오는 너무 쉽게 던져진다. 특히나 익명의 특수성이 강한 SNS에서는 허위 사실이 빠르게 퍼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유명인에 대해 나쁜 얘기가 나오기만 해도 그곳으로 달려들어 말을 덧붙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그리고 사람들을 이를 ‘정의감’으로 여긴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비판해야 마땅하다고. 하지만 그 사실이 거짓으로 밝혀지는 것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를 비난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을 ‘정의감’이라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명백히 ‘혐오’다.

‘혐오’는 쉽지만, 그만큼 잔인하다. 직접적인 폭행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말로, 그리고 시선으로 누군가를 때리게 된다. 어느새 내가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혐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해자로서는 그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지만, 피해자로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입어 죽음으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혐오라는 이 부정적 감정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혐오 대신 무엇으로 우리의 감정을 채워야 하는가?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상대가 불쾌감을 느낄 행위를 했다면, 사과할 필요가 있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 그리고 사과하는 것은 지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긍정적인 행위는 상대와 자신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감정을 분출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는 없어도, 서로 싸우는 세상이 아닌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은 훨씬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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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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