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르네상스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프레스코화의 대가이자 한때 미켈란젤로의 스승이었던 기를란다요에 대해 소개한다.
글 입력 2022.02.22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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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르네상스는 '도메니코 기를란다요'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이다. 예술철학을 전공하면서도 미술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는 필수 과목으로 들어야 했던 서양 미술사 수업에서 그를 만났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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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니코 기를란다요

 

 

1449년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는 국내에서는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와 함께  초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기를란다요의 본명은 도메니코 디 토마소 쿠라디 디 도포 비고르디(Domenico di Tommaso Curradi di Doffo Bigordi)로 금세공인 아버지를 두고 8형제 중 첫째로 태어났다. 16세기에 출간된 《미술가열전》의 저자 조르조 바사리에 따르면 당대의 사람들이 가업을 잇듯 도메니코도 금세공인 아버지 밑에서 일을 시작했다. 기를란다요(이탈리아어로는 화관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라는 이름도 아버지가 금속 화관(Garland)을 만드는 장인이었던 점에서 지어진 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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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rocchio - 그리스도의 세례(Baptism of Christ) 왼쪽 구석에 그려진 천사 중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천사의 얼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기를란다요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아버지의 작업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특징을 찾아 그리면서 그림 실력을 길렀다. 바사리에 따르면 후에는 알레소 발도비네티(Alesso Baldovinetti)의 공방에서 그림과 모자이크를 배우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이기도 했던 베로키오(Verrocchio)의 공방에서 수습생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이나 명성과 별개로 짧은 기간뿐이었지만 미켈란젤로의 스승이기도 했다는 사실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르네상스(Renaissance)는 프랑스어로 '재생, 부활'을 뜻하는 단어로 주로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14세기에서 16세기 중반에 문화부흥 운동이 일어난 시기를 의미한다. 당시 유럽 전반에 걸쳐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전했던 문화와 기술, 예술 등을 높이 평가하며 다시 부흥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19세기 중반부터 학문적인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인문주의(人文主義)'다. 인문주의란 인간의 문화를 중심으로 한다는 뜻으로 인간의 인간됨을 본으로 삼는 사상이다. 르네상스의 예술은 무엇보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작품에 담고자 했다. 예술가들은 작품의 등장인물의 인체나 이목구비가 얼마나 실사에 가까운지 또 얼마나 조화로운 비율을 가졌는지, 혹은 그림 속 공간에 투시법이 적용되어 입체감이 존재하는지 등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곧 르네상스와 중세 미술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프레스코 기법을 소개하는 영상

 

 

초기 르네상스 회화에서는 프레스코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프레스코란 석회를 찰흙과 풀가사리와 반죽한 회반죽을 벽에 바르고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안료를 입힘으로써 그림을 완성시키는 기법으로 반죽의 물기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어로 '신선하다, 싱싱하다'라는 뜻을 가진 프레스코(Fresco)라는 단어가 붙여졌다. 회반죽이 굳으면 색도 그대로 착색되는 만큼 안료의 색감이 생생하게 살아나며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프레스코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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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란다요 - 성전에서 쫓겨나는 요아힘 (Expulsion of Joachim from the Temple, 1486-90)

 

 

기를란다요는 아버지처럼 금세공으로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화가를 업으로 삼았다. 프레스코 기법에 능통한 스승들 밑에서 그림을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스코화에서 특출 난 재능을 보였다. 초기 르네상스에서 프레스코화가 인기가 있었던 만큼 고향인 피렌체뿐 아니라 로마나 토스카나에서도 주문을 받아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기를란다요의 만년 즘인 15세기 후반의 이탈리아에서는 알프스 산맥의 북방에서 전파되어 온 유화 기법이 유행하고 있었다. 프레스코 기법은 회반죽이 마르고 나면 그림을 수정하거나 다시 그릴 수 없게 된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유화는 몇 번이고 다시 수정하고 새로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기를란다요는 유행하는 유화 기법보다는 기존의 프레스코 기법을 고수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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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란다요 - 목동들의 경배(the Adoration of the Shepherds, 1483-85)

 

 

기를란다요의 작품 속에도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이 추구한 가치들이 반영되어있다. 대표적인 작품인 《목동들의 경배(the Adoration of the Shepherds)》를 보면, 감상자로부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물들은 크게, 멀리 있는 인물들이나 배경은 작게 그려져 있다. 프레스코 특유의 쨍한 색감과 묵직함 속에 인물들의 얼굴과 동작, 옷의 질감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묘사적인 방법뿐 아니라 이 그림에는 르네상스 화가들의 특징이 하나 더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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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의 기를란다요의 얼굴

 


바로, 화면 오른쪽에 그려진 목동 중 손가락으로 아이를 가리키고 있는 목동의 얼굴이 화가 본인의 얼굴이라는 점이다. 지금의 우리가 예술가를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창작가로 생가하고 있다면 근대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걸친 예술가의 이미지는 단순히 몸을 쓰는 노동자에 불과했다.  따라서 화가든 조각가든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을 작품에 남기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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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첼리가 의뢰받은 작품에 본인의 얼굴을 그림

 


한편 르네상스기에는 인간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가 출현하면서 전반적인 예술가의 가치도 함께 오르기 시작했다. 비록 여전히 의뢰받은 작품을 제작해야 하는 직업인이기는 했지만 작품에 자신의 얼굴을 작품에 등장시키거나 서명을 쓰는 형식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기를란다요의 작품에는 더욱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그가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 과학적이거나 수학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원근법이나 입체감을 구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를란다요는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화폭 안에 담고자 했다. 그의 작품 속의 색감이나 입체성은 눈으로 세심하게 주변을 관찰하고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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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란다요 - 그리스도의 세례(Baptism of Christ, 1486-90)

 


3년간 르네상스부터 컨템포러리에 걸치기까지 다양한 미술사 수업을 들으면서 수많은 예술가들을 접했지만 그만큼 내 눈길을 사로잡은 작가는 없었다. 또 수많은 프레스코화를 접했음에도 왜 프레스코화가 당시에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마음을 끄는 작품도 없었다. 그러던 중, 르네상스에 대해 깊이 있게 설명하는 수업에서 기를란다요의 《그리스도의 세례(Baptism of Christ)》라는 작품을 접했다.


본 작품은 기를란다요가 산타 마리아 노벨라(St. Maria Novella)성당의 토르나부오니 채플(Tornabuoti Chapel)에 세례요한의 삶을 다루며 그린 7개의 연작 중 6번째 작품이다. 가로폭이 450cm(4.5m)나 되는 거대한 작품으로 그림 속 인물들의 크기는 실재하는 사람들의 키에 가깝게 그려졌을 것이다.


뒷 배경이 산으로 덮여 있어 소실점이 바로 눈에 띄지 않지만 개울의 모양을 보면 한 점을 중심으로 개울의 폭이 좁아지며 1점 투시도법이 적용된 것도 알 수 있다. 세례를 받는 그리스도의 몸은 적당한 근육과 골격을 가지고 있고 유연해보이는 동작도 충분히 따라해볼 수 있을 법해 보인다. 예수의 오른 편에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팔을 괸 남자의 뒷모습도 오른쪽 팔이 다소 과장되어 보이기는 하지만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려져 있다.


가장 먼저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은 그림 속 균형이다. 세례를 받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양 옆에 총 네명의 인물들이 그려져 있으며 하늘에서 아들을 내려다보는 신의 양 옆에도 세명씩 총 6명의 천사가 그려져있다. 중심에 서 있는 예수의 시선이 절벽 사이로 보이는 개울과 강의 풍경의 반대편을 향하고 있어 자칫 한 쪽으로 쏠릴 뻔한 시선이 전체를 보게 만든다.


그 다음으로 작품 전체에 퍼진 색감이 시선을 끌었다. 작품을 실제로 접한 것은 아니기에 색감에 대한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전해지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질감에 마음이 갔다. 쨍하고 강한 것보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명암과 대비가 본 작품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또다른 이유이다.


종교가 있지만 오랜 시간 멀리해온 무늬만 신자로서 온화하며 부드럽고 절제적이며 균형잡힌 그림 속 그리스도의 평온한 모습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 인문주의가 대두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신과 종교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던 시대에 신의 자비를 찾아 교회를 방문했던 신자들 또한 이 작품에서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본 글을 통해서 '르네상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사람이 유명한 삼대장뿐만 아니라 한 사람 더 생기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방경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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