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봄날의 꿈 같은 순간,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 Springtime Delight’

글 입력 2022.02.21 19: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한 계절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계절에 대한 환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데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습하고 찌는 듯한 무더위 만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 주변 공원을 산책할 때 불어오는 여름 밤의 나른하고 선선한 바람, 벤치에서 마시는 캔맥주 한 캔, 선풍기 바람을 쐬며 포크로 쿡 찍어먹는 네모나게 자른 빨간 수박을 떠올릴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봄에 대한 환상이나 설렘을 느끼지 않은 지가 꽤 되었다. 흩날리는 벚꽃 잎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것도 잠깐, 매년 봄마다 도시를 뒤덮는 황사와 미세먼지에 따가운 목구멍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날이 잦아졌다. 이왕 마주하게 될 봄날이라면 어느 정도의 환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때마침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이 선물처럼 찾아왔다.

 

 

20220218084522_yiotweii.jpg

 

 

여의도 더 현대 서울에서 진행되는 <어느 봄날,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 Springtime Delight>은 테레사의 세계 최초 단독전이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태어난 테레사 프레이타스는 1990년생의 젊은 사진작가로, 그는 친숙한 모티브를 그림같은 요소로 표현해내며 사진작가 겸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디올과 캘빈클라인, 팬톤 등의 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을 하기도 하며, SNS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인플루언서로도 유명하다.

 

전시는 테레사의 가장 아이코닉한 작품들인 파스텔 톤의 꽃 사진들로 가득 차있는 Among the Flowers (꽃 사이 사이), 꿈을 꾸는 듯 몽환적인 느낌이 극대화된 사진들이 기다리고 있는 Spring Dreams (봄의 꿈), 작가의 고향 포르투갈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At Home, In Colour (홈 그리고 컬러), 테레사가 사랑한 봄의 경관들을 보여주는Spring in the City (도시의 봄), 최근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세트장과 비슷하여 관심을 끈 스페인의 건축물을 표현한La Muralla Roja (라 무라야 로하), 투명한 물빛이 돋보이는 By the Water (물가에서)라는 총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은은한 파스텔 빛깔로 꾸며진 전시장의 입구에 도착하자 함께 간 일행들과 당혹스런 눈빛을 주고받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앞의 대기 인원이 백팀이 넘었기 때문이다. 따스한 색감의 사진전이 이미 SNS상에서 입소문을 탄 모양이었다. 역시 유명한 인플루언서의 전시 다웠다. 사진전을 방문하실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우선 예약을 먼저 하고 백화점 내부를 구경하시는 방식을 추천한다.

 

 

 

비밀 정원으로의 초대



 

다시 오지 않은 무언가를 포착한다는 것, 그런 점이 저를 항상 매료시킵니다.

 

 

20220218155817_relorbus.jpg

ⓒ Teresa Freitas, Subject Matter Art, and Artémios/CCOC - Rothko Spring, 2018

 

 

따사로운 햇빛에 따라 변화하는 꽃들의 색깔을 보며 인상주의 화가들의 화풍을 떠올렸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봄의 정원에 비치는 따스한 햇살, 코끝을 간지럽히는 산들 바람, 그리고 만개한 꽃으로 가득한 들판… 테레사의 가장 아이코닉한 작품인 파스텔 톤의 꽃들로 가득한 전시장에서는 금방이라도 향기가 날 것 같았다.

 

마치 비밀 정원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는 차를 마시고,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물면 기억 속의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테레사의 사진에도 그러한 힘이 있었다.

 

살랑이는 원피스를 입고 꽃놀이를 즐기러 가는 봄날의 내 모습이 기억 속에서 즉시 소환됐다. 아이보리 빛의 린넨 돗자리와 나무를 엮어 만든 라탄 바구니, 그 안에 담긴 길다란 바게트와 시집 한 권을 들고 떠난 4월의 피크닉도. 들판에 가득 내리 쬐는 햇빛이 사진을 뚫고 나오는 듯 했다.

 

 

 

봄의 꿈


 

20220218231952_enbevldh.jpg

ⓒ Teresa Freitas, Subject Matter Art, and Artémios/CCOC - Daydream, 2018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꿈 사진 시리즈가 소개된다. 테레사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형태와 이미지를 포착해 색감에 변주를 주는 것이 자기 작품만의 비밀이라고 설명한다.

 

현실의 풍경을 담아낼 수밖에 없는 사진이라는 매체로 초현실을 구현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그녀의 몽환적인 사진 앞에서 보란 듯이 꼬리를 내렸다. 동화책 속을 거닐 듯 작품을 보았다.

 

 

 

라 무하야 로하



‘라 무라야 로하’는 스페인의 유명 건축가 리카르도 보필이 설계한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아파트로, 스페인의 칼페에 위치해 있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세트장이 라 무라야 로하와 비슷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는데, 기하학적이고 비비드한 분홍색 벽과 계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IMG_8710 2.jpg

 

 

전시장 내부에는 관람객들이 직접 계단에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라 무라야 로하와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어낸 구조물이 놓여 있었다.

 

 

나 자신이 예술가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불려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게 노는 것을 일이라고 부를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정도였죠.

 

 

사실 전시회에 오기 전까지는 디지털 사진전에 대한 묘한 반감이 있었던 것 같다. SNS에 사진을 잘 찍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SNS 인플루언서가 된 작가가 유달리 운이 좋은 케이스일수도 있겠다고 오만한 생각을 했다. 대중 앞에 자신의 완성된 창작물을 꺼내놓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면서도 그랬다. 역시 멀리서 관전하며 판관이 되는 일은 쉬운 것이었다.

 

전시회를 끝까지 감상하고 나자, 몇 가지의 사실만으로 가볍게 판단하고 말았던 지난날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테레사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것을 멈추지 않은 사람이었고(심지어 목소리를 찾았다고 생각한 뒤에도), 자신이 예술가라는 사실을 정체화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자신을 증명해온 사람이었다.

 

우리는 주로 어떤 사람을 작가라고 부를까. 책을 한 권 냈다고 해서 늘 작가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옛날에 책 한권 냈어요.”라는 말로 자기소개를 마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작가는 직접 집을 짓는 사람. 누군가로부터 계속 ‘작가 作家’로 불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활동을 전개해야한다. 작가 테레사는 자신이 아티스트로 불리는 것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소셜미디어라고 말한다.

 

테레사 뿐만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들 역시 SNS를 통해 자신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예술가들이 SNS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 더 이상 생소한 일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돌아오는 봄에 걸맞는 따뜻하고 환상적인 색감의 사진들, SNS를 무대로 활동을 펼치는 인플루언서 작가의 전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류에 발 맞춰 나아가야 하는 공간인 더 현대 서울과 더없이 어울리는 전시였다.

 

 

[박세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