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여행을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여행]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한 날을 기다리며
글 입력 2022.02.0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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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만약에, 로또 1등에 너가 당첨됐어. 그러면 뭐부터 하고 싶어?'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로 빠지지 않는 이 질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기억 나는 한 어릴 때부터 항상 같았다.

 

'세계여행!'


 

여행과 우리들의 사이는 지금, 멀어질 대로 멀어졌다. 특히 해외여행과의 관계는 회복되려면 한참 남은 듯하다. 상황이 조금만 좋아지면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왜 이렇게 여행을 갈망할까?

 

여행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경제적인 비용, 적정 수준의 체력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또, 필수적인 짐들과 서류들을 준비하다 보면, 생각보다 큰 짐가방이 필요해진다. 여행을 막상 떠나보면 상상하던 무지갯빛만이 펼쳐지는 과정은 아니다.

 

시간과 경제적인 비용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체력이 떨어지면 모난 마음이 고개를 내밀고, 연달아 운 나쁜 일들이 겹치면 집이 그리운 순간이 생긴다. 수개월을 혹은 수년을 갈망하던 그 여행 장소에서, 집이 그리워지는 당연하고 어이없는 순간이 생기는 것이다.

 

여행을 뜻하는 영어단어 ‘Travel’의 어원은 ‘일하다’,‘고통’,‘노동’이라는 뜻을 지닌 고대 프랑스 단어 ‘Travail’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관광의 모양을 띤 지금의 여행과는 사뭇 달랐을 오래전의 여행은 더 힘겨웠을 것이다. 목숨을 내놓는 모험에 가까운 여행이었을 것이니 말이다.

 

오늘날 해외로의 여행은 죽음을 불사르며 해야 하는 행위는 아니지만, 여전히 새로운 풍경과 언어, 향, 그리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 모든 것에 적응해나가는 것은 꽤 힘들다. 여행은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의 연속이고 여행자는 그런 상황과 정신적인 스트레스, 육체적인 스트레스를 계속해서 극복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생길 수 있는 황당한 불편함은 말하자면 끝도 없다. 공항에서부터 비행기가 연착되거나, 여행지에서 소매치기를 당하기도 하고, 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듣던 대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기를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필자는 그렇다.

 

지금껏 가본 곳 중 가장 먼 여행지에서, 갑자기 궁금했다. 여행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아서 여행길이 힘들고 벅차도 자꾸만 다른 나라로, 멀고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댈까?

 

가장 먼저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사람들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지고 다른 언어를 구사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섞여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벅차게 행복했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나라들과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그렇게 그 자리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입고 존재하고 있었다.

 

그 다양함이 주는 ‘자유로움’ 또한 ‘여행’하면 꼭 등장하는 키워드일 것이다. 책 <여행하는 인간>의 저자는 여행지에서 우리는 ‘무명인’이 되어 자신의 꼬리표를 떼어놓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말한다. 일상의 장소와의 거리감이 주는 해방감은 나조차 나에게 가지고 있던 ‘나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한다.

 

여행지에서는 모든 새로운 상황에 그저 자신을 두고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데, 이런 상태가 주는 자유로움은 일상에선 경험하기 힘든 자유로움이었다. 내가 세워둔 나의 물리적, 정신적 한계를 계속해서 부숴나가며 배우는 모든 것들은 자유로움을 안겨주었다.

 

여행지의 언어를 구사할 줄 모르는 것이 오히려 자유로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는 그저 멜로디 같을 뿐이다. 뜻을 의식하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다. 가사를 모르는 노래의 멜로디처럼 그저 흥겹거나 감미롭다.

 

여행지에선 시간이 느리게 간다. 지루하기 때문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할수록 우리의 뇌가 느끼는 시간이 느리게 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시간이 빠르게 가는 이유는 시간이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포개지기 때문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익숙한 것만 하다 보면 시간은 그저 포개져, 화살처럼 스쳐 간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여행지에서는 그래서, 자신에게 맞게 삶의 속도를 조절할 여유가 있다.

 

여행은 겪어볼수록, 생각할수록, 아이러니함 그 자체다. 여행지가 아무리 좋아도 집의 냄새가 그립다. 겉모습도, 언어도, 생활방식까지 모든 것이 가장 다른 곳에서 우리도 그저 같은 사람이라며 동질감을 느낀다. 또, 가장 이국적인 풍경을 보고 싶어 떠난 여행지에서, 결국 내 안의 모습을 발견하고 온다. 불안함이 있어야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허름한 숙소가 있어야 깨끗한 숙소의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여행하고 나면 삐걱대고, 세련되지 못하고, 허접한 그 모든 것들이 오히려 삶을 완벽하게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여행은 무엇을 꼭 발견하거나 배울 필요 없이 떠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지만, 뜬금없는 모든 것이 주는 자극과 풍요로움은 떠나기 전의 일상의 나와 여행이 끝난 후의 나를 가른다. 해보지 않았던 것, 익숙지 않고 잘하지 못하는 것을 해보라고 등 떠미는 여행지의 공기가 그립다.

 

아무렴 여행이 가장 싫은 이유는 절대 여행을 싫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해지는 그 날을 위해 다음 여행을 준비해야겠다. 당신이 꼭 두 발을 딛고 싶은, 당신을 부르고 있는 여행지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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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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