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유별났던 사진가의 특별한 사진들 - 영원히 사울 레이터

일상의 소중한 찰나를 담은 사진가 사울 레이터
글 입력 2022.02.0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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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부터 미국 뉴욕의 풍경을 담은 사진가 사울 레이터. 그는 '컬러사진의 선구자'라고 불리는데, 처음에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흑백으로만 세상을 담아낼 수 있던 시대에서 색감이 더해지는 기술이 나왔으면, 너도나도 컬러사진을 찍으려 했던 게 아니었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1900년대 중반 사진가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니, 그 시절엔 오히려 흑백사진을 진정한 사진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는 걸 알게 됐다. 컬러사진 초창기에는 색상을 재현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우리 눈에 보이는 색 그대로를 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흑백보다야 컬러가 당연히 눈에 보이는 것과 더 비슷한 게 아닌가 싶은데....당시에는 흑백 사진만을 고집해서 컬러 사진 작업을 했던 사울 레이터가 유별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사진집 『영원히 사울 레이터』를 쭈욱 보다 보면, 그가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사진을 담아왔음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 20세기 중후반에는 기사나 잡지에 실리는 사진처럼 명확하고 임팩트 있는 이미지가 중요했다. 혹은 경이로운 장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큰 스케일의 예술적인 사진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런 와중에 사울 레이터는 60년 동안 한곳에 머물며 뉴욕의 일상적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아주 집요하게 뉴욕의 구석구석을 좇으며 섬세하고 오묘한 방식으로 피사체들을 찍었다. 당시에는 평범한 풍경을 담은 듯한 그의 사진이 주목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의 감상은 180도 다르다. 평범하다고 느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평범해 보이지 않게끔 만드는 그의 사진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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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2/3가 여백인 경우가 많다. 벽, 기둥, 창살, 구조물들이 여백에 자리하고 있다. 때로는 나뭇잎들에, 앞사람의 커다란 우산에, 지나가는 자동차가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너머에 무언가 피사체가 있다. 그것들은 주인공인 듯 아닌 듯 사진 속에 함께 자리하고 있어서 사진 속으로 빠져든다. 피사체를 멀리서 바라보며 찍는 사진가의 위치에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유리창과 거울에 비친 대상을 찍은 사진도 많다. 마치 콜라주 기법을 사용한 그림인 것 마냥, 유리에 비친 것들과 유리 안에 있는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다. 촬영한 것은 카메라가 바라보고 있는 앞뿐인데, 우리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의 옆, 뒤의 배경까지 알 수 있다.


그의 사진에서는 초점이 흐릿하거나 흔들려서 대상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 것들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보통 우리가 일상에서 사진을 찍을 때 그런 사진이 나온다면 잘못 찍었다고 말하며 삭제한다.

 

하지만 사울레이터의 흔들린 사진은 묘하게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피사체를 온전히 보여주지 않아서 궁금하게 만들고 또렷한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다 보면 누구의 얼굴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저 일상에서 수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찍은 것뿐인데, 뿌옇게 가려진 그 얼굴에서 호기심을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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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레이터의 시선은 평범해 보이는 모든 것들을 평범해 보이지 않게끔 조명해주는 창이 되어주는 것 같다. 기차에 몸을 싣고 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나 고독함이 느껴지고, 거울에 비친 여인에게서는 내면의 울렁거림이 비치는 듯하다. 펑펑 눈이 쏟아지는 날, 우산에 가려진 사람들의 바쁜 걸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상상하게 된다.


어떤 일상의 순간들을 어디서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다운지 알았던 사울 레이터.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뛰어난 촬영기법이나 감탄을 자아내는 이색적인 모습 때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정한 시선, 스쳐 지나가며 잊을 뻔한 일상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힘 덕분이지 않을까?


 

신비로운 일은 친숙한 장소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 『영원히 사울 레이터』 中

 

 

나의 일상이 지루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진다면, 『영원히 사울 레이터』를 천천히 머금어보기를 추천한다. 책 안에 사울 레이터의 시선을 빌려다 주위를 살펴보니 괜시리 내 세상도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해지는 것 같다. 꼭 어딘가로 멀리 떠나지 않아도,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음을 글이 아니라 사진으로 알려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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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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