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변했다 돌아오는 것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2.0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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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들어가기 전부터 전시가 시작되네?’

 

《현자의 돌 Rolling Stones》을 보기 위해 문래예술공장에 갔다. 설 연휴에도 문을 여는 전시장을 찾았다는 사실에 유난히 기쁜 마음으로 친구를 기다렸다. 먼저 들어갈 수 있지만 전시 보는 속도가 빠른 편이라 함께 즐기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심심한 마음에 밖에서 안을 살짝 훔쳐볼 수 있을까 해서 건물 가까이 다가갔다.

 

외벽 유리창 사이에 난 원형 구멍으로 반짝이는 바위 질감의 구리 금속판이 보였다. 멀리서 봤을 땐 거대한 초콜릿 포장지 같았는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까 금광의 내부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었다.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무언가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생경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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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작은 전시지만 바닥에 놓인 구리 조각만 해도 1024개나 돼 다 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창 밖에서 보던 구리 금속판 작품 <용바위>쪽으로 갔다. 작품의 전체적인 모습을 마주하니 금속판 사이사이 접합 부분이나 꺾어진 각도에 따라, 또는 금속 자체가 뿜어내는 질감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오묘하게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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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강원도 인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고향의 바위를 금속판으로 덮어 고무망치로 형상을 복제한 것이 바로 <용바위>다. 바위는 금속판보다 단단해 고무 망치로 내려쳐도 부서지지 않고 형태가 유지된다. 반면 금속판은 바위의 모양대로 형태가 일그러진다.

 

어렸을 때 나뭇잎의 모습을 본뜨기 위해 나뭇잎 위에 얇은 종이를 두고 그 위를 색연필로 열심히 색칠하던 기억이 겹쳤다. 아름다운 자연을 모방하고 싶은 마음은 아이나 어른이나,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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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 눈 앞에 있는 것은 바위 모양 금속판 뿐이지만 전시 영상을 보다 보니 고무망치에 눈길이 갔다. 망치는 고무의 탄성으로 인해 무언가를 내리칠 때마다 일시적으로 모양이 변형되었다가 이내 돌아온다. 변하지 않는 바위와 쉽게 변하는 금속판, 그리고 변했다가 금방 원형을 회복하는 고무망치 이 셋의 앙상블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이렇게 발견한 작품의 재밌는 점은 곧 나와 내 일상으로 대비된다. 자유롭게 변하는 구리 금속판을 보며 친구와 나를 떠올렸다. 스무 살, 교양수업에서 처음 만난 내 친구는 단순하고 도전적인 성격이다. 그래서인지 볼 때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시도했고 나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그를 본 적이 없다. 반면 애매한 완벽주의로 플랜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일 벌이기 싫어하는 나는 친구의 열정과 실행력이 부러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는 태권도복을 입은 채 교정을 돌아다니다 흰띠도 넘어가지 못했는데 별안간 교환학생을 떠났다. 갑자기 학교 근처에 비건 파이 가게를 차려 근사한 파이를 대접해준 적도 있다. 이제는 복학해서 같이 학교 다닐 일을 고대했는데 별안간 회사에 인턴으로 뽑혀 미리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있다. 거침없이 새로운 환경에 본인을 툭툭 던져놓고는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는 모습이 바위의 형태가 어떻든 그대로 본을 뜰 수 있는 금속판과 겹쳐 보였다.

 

그에 비해 나는 바위같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친구를 지켜봤다. 당시 나에게 변화무쌍한 환경이란 재미보다는 헤쳐나가야 할 장벽이었고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피곤함이었다. 그래서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친구를, 나를, 주변을. 나와는 다른 친구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그런 친구를 보며 조급해지거나 셈이 날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대신 다른 변화가 있었다. 덜 따지게 되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다 잘 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면 굳이 시작하지 않았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실은 핑계다. 이제는 벅차 보여도 재밌을 것 같으면 한번 해보자는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 이게 친구의 기준은 아니다. 그렇다고 원래 내 기준도 아니다. 새로운 기준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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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이것저것 깊이 재지 않는다. 일단 저지르고 본다. 그렇게 살던 대로 살았을 뿐인데 그 모습이 나에겐 고무망치 역할을 했다. 행위의 도구가 되는 고무망치는 곧 외부환경의 자극을 의미하는데, 그게 나에겐 친구였다. 덕분에 나는 단단한 바위에서 부드러운 구리판이 될 수 있었다.

 

반면 친구는 일상 속의 작은 일들을 기억했다가 하나의 유의미한 정보로 바꿔 끄집어내는 나를 보고 배운다고 했다. 아주 큰 이슈가 아니면 흘려보내던 친구의 단순한 사고가 마냥 단순하지만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서로 두들기고 복제하며 새로운 형태의 무늬를 만들었고, 이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어떤 시점에 누구를 만나고, 그 사람에게서 이를테면 비건 음식 같은 사소한 영향을 받고, 처음에는 그 사람의 영향으로 시작했지만 그게 새로운 나를 만든다는 사실은 재미있다. 그렇게 나는 또 나아간다. 친구에게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친구와 비슷해진다는 것과는 다르다. 친구와 나 사이에 친구의 것도 아닌, 내 것도 아닌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나고, 우리는 그 무언가를 통해 각자 성장한다.

 

눈 앞에 놓인 작품 하나를 통해 친구와 함께 했던 5년이 책장 넘기듯이 지나갔다. ‘물질로 환기되는 경험은 곧 기억이 되고, 축적되어 작가, 작품, 그리고 전시를 이룬다. 《현자의 돌 Rolling Stones》은 커다란 바위를 두드리며 구리와 그 이외의 많은 기억을 꺼낸다’는 전시 해설이 가슴에 와 꽂혔다.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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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조누피
    • 전생에 내가 아마 다섯 목숨쯤을 살리고 이번 생에 또만이를 만났나봐요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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