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에게 죽음은 무릉도원이다. [사람]

글 입력 2022.01.26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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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숨 쉬고 있는 이곳에서 죽음은 얼마나 남았을까. 죽음이 어느 골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날짜를 세워보는 매일 밤이다.


죽음이 언제 다가올지 숫자를 세다가 지쳐 나의 죽음은 어떨지 상상해 본다. 잘 걷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나를 들이박아 그 자리에서 죽으려나? 아니면, 나도 모르게 병이 찾아와 드라마처럼 늦게 병원을 찾아 슬며시 죽으려나? 아니면, 친구와 술 마시던 중에 갔던 화장실에서 괴한을 만나 죽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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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음에 집착하게 된 것은 3년 정도 되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버릇, 구역질이 나는 일이 있을 때, 얼굴과 마음이 잔뜩 일그러질 때 쉽게 뱉는 그 말. "아 죽고 싶다." "죽여버린다." "죽을까" "죽인다"


서슴없이 뱉는 날이 선 말이다. 일정기간 나에게 노출된 단어의 비중을 조사한다면 상위권에 자리 잡을 말이다. 죽음은 단어로 나에게 친숙해졌고, 삶만큼이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삶의 방향을 설계하듯 죽음의 방향을 설계하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죽음은 무릉도원이다.


대입 준비를 하는 기간에는 나처럼 멍청한 인간이 없었고 취업 준비를 하는 기간에는 나처럼 한심한 인간이 없었다.


멍청함과 한심함의 골이 깊어지면서 죽음이 반짝이는 해결책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해결책이 맞다고 생각한다. 당장이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문제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가 흘러갈 감정때문에 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나를 잃지 않아서 나는 지금의 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있어 죽음은 무릉도원이다.


아까 말했듯이 나는 죽음을 꿈꾼다. 그리고 나의 죽음을 어떤 방법으로 맞이할지 결정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나의 흔적을 아주 많이 남겨 둘 것이다. 나의 글로, 나의 사진으로, 나의 필름으로 내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도 있을 수 있게끔.


그리고 나의 사람에게 나의 어휘력과 행동이 가능한 그들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할 것이다. 내가 떠나면 더 이상 그들에게 얼마나 존귀한지 알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성실히 실행한다면 죽음을 맞이한 그 순간부터 나는 무릉도원 위에 있을 것이다.


죽음을 항상 곁에 두고 살면서 삶에 진심이 되었다. "몇 년 후에 죽을 목숨인데 이걸 왜 해야 해"라는 마음이 아니라 어차피 죽을 거 한정된 나의 삶을 가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느끼게 해 주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아름다운 것들을 눈으로 잔뜩 담아가야 한다. 주기적으로 나를 살피며 무엇을 원하는지 나에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죽음이 무릉도원이다. 이곳에서 쌓은 기억들로 꾸며진 무릉도원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죽음을 위해 무릉도원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중이다.

 

 

[황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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