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떤 이에게는 멸망의 순간이 필요하다 - 김초엽 저 '므레모사'

글 입력 2022.01.2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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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책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자유로운 여행에 제약이 생기면서 물밀 듯이 쏟아지던 여행 콘텐츠 중 단연 눈에 띈 것은 다크 투어리즘에 관한 것이었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전쟁이나 재난, 죽음 등의 피해를 본 역사와 관련한 장소를 방문하는 여행으로, 쾌락과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른 종류의 경험을 추구하여 적지 않은 마니아를 낳고 있는 문화이다. 수많은 여행자가 위험을 감수하기까지 하면서 시도하는 다크 투어리즘의 핵심은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고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데 있다. 이렇듯 다크 투어리즘은 여행이 상품으로서의 경험을 구매하는 경제적 행위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더욱 주목받는 추세다.


어느 장소나 역사를 관광 상품으로 소비할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대상화의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다크 투어리즘은 간혹 지나친 상품화와 더불어 역사 왜곡의 문제로도 지적받는데, 관광 매력성을 확보하기 위해 장소나 역사와 관련한 사건을 실제보다 부풀리거나 곡해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삶의 일부로서 실재하는 사건을 쉽게 비극으로 단편화하여 소비자의 경험을 위한 도구로 소모한다는 다크 투어리즘을 향한 비판은 이런 측면에서 제기된다. 여행과 관광은 그 자체로 장소를 향한 일방적인 시선을 내포하기 때문에 희극이든, 비극이든 특정 사건을 오락거리로 치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새겨진 어떤 과거가 여전히 누군가의 현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쉽게 잊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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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SF 세계관에서 존재의 탄생과 멸망을 그리며 최후의 희망을 발견하는 소설가 김초엽의 신간 《므레모사》는 작가의 첫 호러소설로, 화학물질 유출 사고로 봉쇄된 지역 므레모사를 방문한 관광객들의 이야기다. 세계에 균열을 낸 다음 그 틈새에서 시작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무용수 유안과 레오, 관광학 대학원생 이시카와, 다크 투어리스트 헬렌, 여행매거진 기자 탄, 여행 유튜버 주연 등의 여행자 무리가 므레모사를 관광하며 베일 속에 감춰진 장소의 비밀을 찾아 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므레모사가 위치한 국가 이르슐은 독재와 억압 속에서 고립되어왔던 나라로, 죽음의 땅으로 황폐화된 므레모사 지역은 오랫동안 출입 금지 구역이었다가 이례적으로 개방되어 소수의 관광객을 받아들인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여행자들이 므레모사를 찾은 까닭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중심에는 모두 므레모사를 둘러싼 하나의 소문이 있다. 사고 이후 불모지가 된 므레모사를 떠난 이들이 신체에 생긴 변이 때문에 다시 므레모사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이다. 언뜻 괴담처럼 들리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어서, 혹은 그 너머의 진실을 파헤치고 싶어서 온 여행자들은 일반적인 세계와 분리된 채 온갖 비밀을 품고 자란 세계에 대한 저마다의 기대를 품고 있다.


죽음과 절망으로 수식되는 므레모사가 동시에 기대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극복과 재건을 향한 소망 때문이다. 사람들은 끔찍하게 황폐해진 므레모사에서 좀비처럼 변해버렸다는 귀환자들의 비극과 참상을 확인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것을 마침내 이겨낸 이들의 강인하고 아름다운 회복을 목격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신경 의족을 장착한 채 춤을 추며 온 국민을 감동시키는 무용수 유안은 그 모순적인 사고가 낯설지 않다. 다른 방식으로 걷고 춤출 뿐인 자신의 삶에 씌워지는 비극의 틀과 그 위에 이유 없이 쏟아지는 박수갈채는 항상 유안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의족을 장착한 부위에 잃기 전의 다리의 존재가 느껴지는 탓에 유안의 신체는 쉴 틈 없이 아프고 요란하지만, 자신의 재활 치료사이기도 한 연인까지도 간절하게 원하는 회복의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 유안은 언제나 고통을 숨기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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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이 므레모사의 귀환자들에게서 어려운 시련이 와도 희망을 품고 꿋꿋이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배워가기 위해 여행을 왔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주연처럼, 사람들은 누군가가 어떠한 소원을 꼭 이루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그 누군가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안도에서 비롯한다. 소원을 이루기 전까지는 실패한 삶이라는 판단에서 기인한다. 특정한 방식으로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 실패자가 되는 유안은 그래서 므레모사와 닮았다. 관광학을 연구하고 다크 투어리즘을 추구하며 여행을 기록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등 여행지를 습관처럼 도마에 올려놓고 바라보는 여행자들이 므레모사를 규정하는 방식은 어딘가 낯이 익고, 유안은 불편한 익숙함 속에서 기이한 동행을 계속한다.


또 다른 여행자인 레오가 므레모사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한다는 것을 유안이 알게 되는 대목은 소설의 큰 전환점이다. 다른 여행자들이 눈치채지 못한 므레모사의 비밀을 아는 레오는 유안과 손을 잡고 무리를 벗어나 므레모사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한다. 이들은 소문과 달리 나름의 터전을 꾸리며 일상을 향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주자들이 사실 도시의 암시에 걸려 있는 상태이며, 커다란 고목처럼 변한 귀환자들을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암시에 걸리지 않기 위해 무리로부터 도망치며 약을 먹어 온 레오와 유안을 제외한 모든 여행자가 암시에 걸리고 므레모사는 숨겨왔던 정체를 밝히며 초토화되지만, 유안은 오히려 귀환자들에게 다가가 자신을 받아달라고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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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도 못한 결말을 그럼에도 완만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는 여행기 사이사이에 갈피처럼 꽂혀 소개되는 유안의 과거 때문이다. 소설은 므레모사를 여행 중인 유안의 현재와 신경 의족으로 인한 고통을 감추고 주변의 기대를 충족해야 했던 과거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유안을 ‘회복되어야 하는 상태’ 그 이상도, 그 이하로도 보지 않고 강인하고 아름답게 일어서기만을 바랐던 연인의 시선은 현재 함께 여행 중인 주연의 그것과 비슷하고, 므레모사를 바라보는 관광객들의 태도와도 유사하다. 유안은 의족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고요히 쉴 때 유일한 편안함을 느끼지만, 그것은 죽음과도 같은 상태이며 거기서 깨어나야 진정한 삶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 주변의 시선에 못내 이겨내야 했다.


그러나 유안에게는 부정할 수 없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고통이 있다. 어떤 생산성도 없이 멈추어있는 상태에 끝없이 골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한 유안에게 느릿하고 정적으로 흘러가지만 ‘고통도 괴로움도 없이(172p)’ 자유로우며 ‘움직이는 것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경배하고(175p)’ 있는 므레모사는 고향과도 같은 장소이다. 사회가 죽음으로 취급하지만 아주 천천히, 그러나 엄연히 지속하고 있는 삶을 목격한 유안이 그 느슨한 순리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마땅한 선택이었다. 그리하여 유안이 ‘삶의 권력을 고정된 것들이 쥐고(175p)’ 있는 므레모사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맺어지는 이야기의 끝은 어떠한 의미로는 파국이 아닌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바라왔는지 비로소 알았다. 내가 바라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 (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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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애독자로서 전작들에서는 존재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방식에 주목했다면, 《므레모사》는 그 정반대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작가는 첫 장편소설인 《지구 끝의 온실》에서 ‘마침내 세상을 재건하는 마음’을 그려냈다면 《므레모사》를 통해선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에 대하여 논한다. 이 책은 강인함과 아름다움에 관한 믿음이 거꾸로 밀어붙이는 반동으로 인해 무참히 무너지는 반대편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의 세계관을 뚫고 새롭게 불거지는 이 소설은 그러나, 살아 움직이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존재가 꿈틀거리며 기존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과정을 마찬가지로 첨예하게 포착한다는 점에서 전작들의 메시지에 어긋나지 않고 맥락을 같이 한다. 단지 어떤 이에게는 세계의 재건이 아닌 멸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포괄할 뿐이다. 그리하여 작가의 세계관은 전복되지 않고 확장된다.


멸망을 논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방식의 삶’을 긍정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 소설은 전작들과 다르지 않은 결에 있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뉘는 이분법의 구조를 허물어 존재를 보는 넓은 시각을 유도하는 작가는, 이번엔 일상과 재난의 경계를 허물어 재난이 극복되기를 바라면서도 재난이 재난이기만을 원하며 영원히 고립된 채 자신의 삶을 위한 동력으로 기능하기만을 요구하는 행위의 모순을 드러낸다. 유안의 연인이, 주연이, 므레모사의 관광객들이 호흡을 느끼지 못하는 재난의 영역에서 펄떡이는 생의 흔적을 발견하며 그 또한 누군가의 일상임을 역설한다. 그리고 그것을 비극이자 교재 삼고 디뎌야 존립 가능한 삶이 과연 이상적인 삶인지 되묻는다. 재난과 완전히 분리된 유토피아란 없다. 재난은 결코 재난이기만 할 수 없으며, 누군가가 삶을 사는 방식인 그것은 반드시 타인의 일상을 침범하여 삶을 구성해내고 세상을 지속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욱 많은 시련들이

우리를 강하게 할지

눈물을 닦고 귀를 닫고 마음대로

치유하고 감사해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교재가 있어야 해

교재를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비극이 필요해

너의 비극을 모두가 축복할 거야


교재를 펼쳐봐 눈물을 쏟아내

교재를 펼쳐봐 아픔을 전부 쑤셔 넣어

교재를 펼쳐봐 피로 이름을 적어넣어

교재를 펼쳐봐 가지 마, 그냥 덮어두자

 

이승윤, ‘교재를 펼쳐봐’

 

 

강하지 않을 때, 아름답지 않을 때 편안히 살아낼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승화 없이 단지 재난으로 남는다고 해도 그것 또한 온전히 세상을 이루는 일부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성취만이 적힌 교재를 펼쳐서 속속들이 분석하고 설명하기보다, 때로는 덮어두는 것이 삶을 너르게 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교재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비극을 그러모아 쏟아내는 그 상황보다 비극적인 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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