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발레 vs. 탭댄스, 춤에 담긴 계급적 갈등 - 빌리 엘리어트 [영화]

소년의 계급은 춤으로 숨길 수 없다.
글 입력 2022.01.1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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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계급. 이 두 가지 갈등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 안에서 대치되어 연결된다.

 

음악, 무용. 위 두 가지 갈등은 이 두 가지의 예술요소를 통해 영화적으로 표현된다.


탄광촌에서 피어난 발레리노 소년, 젠더와 계급을 극복한 깊은 가족애.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충분히 감동적이면서도 뮤지컬 영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빌리 엘리어트>는 어떤 두 가지 요소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첫 번째, 젠더. ‘계집애나 하는’ 무용 발레에 박힌 성차별적 편견이 주요 소재 (1)이다. 남자답지 못하단 이유로 빌리를 반대하는 아버지나 드레스 입는 취미를 가진(cross-dressing) 절친, 분홍색과 파란색 옷의 대비 등이 이에 포함된다.


주요 소재 (2)는 계급이다. ‘부자들’이나 배울 수 있는 귀족 무용을 파업에 시달리는 ‘탄광촌 노동자’의 아들이 도전한다. 경제적 빈곤은 가족을 삭막하게 하고 재능 있는 소년의 발목을 붙잡는다. 특히 상류층-중산층-노동계급이 뚜렷이 분리된 영국 사회에선 그 격차가 훨씬 거대하다. 이 계급으로 인한 갈등은 돈(과 그로 인한 비참함)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춤의 장르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오늘은 <빌리 엘리어트>의 뮤지컬적 요소 ‘춤’ 속에 어떤 계급적 갈등이 내재됐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재개봉 기념으로 제작됐던 감각적인 포스터 사진도 함께 첨부해 본다.)

 

 

 

발레와 탭댄스 Ballet & Tap


 

영화에는 크게 2가지 종류의 무용이 나온다. ‘발레’와 ‘탭 댄스’다. 간단한 역사와 특징을 알고 가자면 다음과 같다.


발레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궁정 연회에서 유래되었으며, 루이 14세 시대에 프랑스 궁전에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다리 포지션에 기초한 정형적 기법을 사용한다.


그에 비해 탭댄스는 아일랜드와 영국 지방의 클록댄스가 미국에 유입되면서 만들어졌다. 주로 흑인 연예인들에 의해 추어졌으며 구두 밑창으로 마룻바닥을 쳐서 소리를 내며 추는 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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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받아야만 하는, 발레


 

빌리는 발레를 ‘배우고’ 그 동작을 ‘다듬는다.’ 정형화된 모양을 만들고 난이도 있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수백 번(예컨대 절대적으로 수‘백’ 번이었을 것이다. 발레는 수‘십’ 번만으로 완성될 수 있는 춤이 아니다) 넘어진다. 빌리가 넘어진 이유는 이것이 인간의 ‘일상적인 동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발가락이 11자 모양을 유지하는 일상적인 자세와 달리 발레는 무릎을 바깥으로 턴 아웃 시켜 두 발바닥을 일직선으로 유지하는 게 기본자세다. 발뒤꿈치로 안정감있게 내딛을 수 있는 정자세와 달리 오직 발끝만 세워 뛰어다녀야 한다.


발목부터 발끝까지 둥글게 말아내는 것은 ‘포인’이라 한다. 발레에서 발바닥에서 떨어진 발이 포인이 되어있지 않는 것은 ‘오류’로 취급된다. 그 외에도 근육 가동범위 이상의 다리 찢기, 1미터 이상의 높은 점프와 수십 번의 연속된 턴 등이 있다.


발레의 특징들은 절대 일상적이고 자연스럽지 않다. 누가 일상생활에서, 예를 들어 발끝만으로 산책을 가고 턴을 하며 귀가한단 말인가. 즉, 발레라는 춤은 지독히도 제도화 되어있고, 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수혜자들은 정해져있다. 물론 빌리는 그 수혜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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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발레


 

평민-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빌리의 발레 교습은 ‘여성스러운 것’, 아니 더 구체적으론 ‘계집애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며 그와 반대되는 ‘터프하고 강한’ ‘남성적’ 성질(예를 들어 영화에 나온 복싱)을 더 우위에 둔다.

 

하지만 발레의 역사를 살펴보면 오히려 그 반대이다. 사실 초기 궁정발레는 남성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춤이었기 때문에 오직 남자들만 그 춤을 췄었다. 전문양성기관이 세워진지 20년 후에야 첫 여성 무용수가 등장한다. 그런 기준에서 남성이 발레를 배우는 것은 격식 있고 예술에 트여있는 ‘귀족적’ 행위라 일컬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빌리가 사는 탄광촌 사람들은 그것의 가치와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한다. 고급예술문화에 무지한(무지할 수밖에 없는) 노동계급에게 발레는 너무도 낯설고 기이한 것이라서 조롱거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 고매한 예술의 가치를 이해받지 못하는 환경에 있다는 게 빌리가 가진 계급적 장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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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층민의 삶에서 비롯된, 탭댄스


 

그에 반해 탭댄스는 빌리의 삶에서 비롯된 춤이다. 영국의 노동계급(하층민)과 미국의 흑인댄서(소수자)에 의해 추어졌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견고한 공사를 거치는 발레 바닥과 달리 그저 집이나 펍에 깔린 나무 마룻바닥에 발을 구른다. 우아한 오케스트라 클래식 대신 즉흥적인 재즈나 바닥에 부딪히는 그 ‘소리’ 자체만을 음악으로 사용한다. 넉넉하지 못한 소시민들의 삶에서 최소한의 물자로 즐길 수 있는 춤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탭은 빌리에게서 아주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온다’. 빌리의 집에서 선생님과 형, 아버지 사이의 싸움이 있을 때 빌리는 그 중간에 서서 괴로워한다. 이어서 찌푸린 표정으로 붉은 벽돌 벽에 매달리는 빌리가 보여 진다. 아버지와 형의 반대와 폭력에 대한 지침, 선생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수치스러움, 현실에 대한 갑갑함 등 빌리의 괴로운 감정은 곧 무언가를 쥐어뜯고, 때리고, 차고 싶은 행동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이것은 곧 자연스럽게 탭 댄스의 형태가 된다. (씬의 이름조차 'Angry Dance'다.)


옥상에 올라가 한심한 듯 쳐다보는 친구 옆에서 춤을 출 때, 빌리는 스스로의 발재간을 통제할 수 없는 듯 보인다. 그저 발이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것이다. 굳이 무언가를 배우고 정형화하지 않아도 그것은 빌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뿜어져 나온다. 탭을 통한 분노의 분출은 차별과 제약이 동행하는 하층계급의 내면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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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빌리가 처음으로 즐겁게, 자유로이 춤을 추는 체육관 댄스씬은 발레와 탭의 종류를 합친 형태이다. 발바닥을 구르는 것과 동시에 뻣뻣하지만 어설픈 발레 모양을 흉내 낸다. 텅 빈 체육관 속 푸른 달빛 사이로 선생님의 실루엣이 보였던 첫 부분처럼, 이 시공간에서의 춤은 마치 환상이나 꿈과 다름없다. 그러니 계급 상관없이 모든 것이 혼재하고 자유로운 꿈을 꿔도 된다. 계급의 혼합에서 오는 자유로움은 곧 빌리의 행복으로 이어진다. 춤의 장르에 상관없이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 계급의 혼합을 담은 춤(빌리의 입시작품)이 발레학교 심사위원들에게 낯섦, 당혹감, 거부감을 자아냈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진짜 현실(시험장)에서 계급에 대한 투쟁(발레시험)은 상위층들에겐 여전히 이질감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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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과 하강의 이미지, 춤의 호흡


 

한계를 넘어 저 위의 계급으로 올라가려 하는 빌리의 목표는(물론 어린 빌리는 세속적 이유가 아니었지만 결국 그가 감당해야 할 것은 계급의 한계다) 오프닝에서부터 보여 진다. 빌리는 침대 위에서 점프를 하며 위아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에서의 상승과 하강은 춤에서 사용하는 방향의 지향점과도 일치한다. 발레는 중력을 이기기 위해 최대한 흉곽을 모아 복식호흡하며 호흡을 위로 올려 무게를 가볍게 한다. 또 발레의 목표는 최대한 땅과 멀어지는 것이다. 더 높이 다리를 들고 더 높이 점프하며 더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을 미학으로 삼는다.


그에 비해 탭은 바닥이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는 춤이다. 허공에선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으며 오직 딱딱한 바닥에서만 그 진가가 발휘된다. 바닥과 맞닿으면 맞닿을수록 춤은 더 경쾌해진다.


이 가운데 오프닝에서의 카메라 앵글은 상대적으로 위쪽(上)에 위치되어 있다. 빌리는 높게 점프를 뛰어야만 화면에 나올 수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이 소년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내용을 담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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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계급으로의 편입 성공


 

결국 빌리는 유명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노가 된다. 한 마리 백조가 되어 뛰어오른 빌리는 더 이상 예전의 그 빌리가 아니다. 아버지와 형에게 묻은 까만 석탄 때와 달리 아주 하얀 분칠을 하고 아주 유연하게 뛰어오른다. 이제 그는 발레를 완전히 체득했고 그것을 도구로 하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거대하고 격식 있는 공연장에는 발레를 즐기는 상위층 관객들은 모두 그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다. 이 ‘소굴’ 안에서 당당히 점프를 뛰는 그의 모습은 상위 계급으로의 편입이 완전히 성공했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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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와 탭이 가진 춤의 특성. 그 역사와 동작, 호흡의 지향점만으로도 영화의 주제는 뚜렷해진다. 계급의 갈등은 결국 춤 안에도 숨어 있었다. 특히 그 모든 것은 결국 빌리가 몸으로 체화하는 것이란 점에서 의미를 극대화한다. 각 춤 장르의 특성을 이해하고 나면 이 영화의 섬세함을 더욱 즐겁게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스티븐 달드리, 2000,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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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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