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명과 사명 :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

글 입력 2021.12.3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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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하루 앞둔 날, 나는 어느 노년 화가의 마지막 작품 앞에 섰다. 그림을 그리는 중인 화가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 속 화가 앞엔 캔버스가 놓여 있고, 포옹 중인 남녀가 보인다. 그리고 여자는 꽃을 들고 있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러시아 태생이자 프랑스에 정착한 화가이다. 다채로운 색감과 몽환적인 화풍을 바탕으로 삶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했다. 그는 피카소, 마티스 등과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현재까지도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이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들의 분위기와 다소 달랐다. 태어나자 그를 맞이한 것은 비극의 연속들뿐이었다. 마음 한 켠에 묵직함이 다가오는 듯하면서도 그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사랑의 모습이 궁금했다.

 

 


신의 소명(召命)과 사명(使命)으로


 

일반적으로 소명(召命)이란 '부를 소'에 '목숨 명'으로 '부름 받은 목숨'이란 뜻이다. 그리고 사명(使命)이란 '심부름 사'에 '목숨 명'을 써서 사명이다. 이것은 '심부름하는 목숨'이라는 뜻이다. 소명은 '부르심'이고, 사명은 '보내심'이다.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는 평생 유대인의 고통과 슬픔을 몸소 겪어 내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으로는 불가능한 그의 삶이었다. 그는 1887년 러시아에서 모이셰 샤갈(Moyshe Shagal)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독실한 유대인 가정의 아홉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러시아에서 유대인은 2등 시민이었고 이동 또한 불가능 했다. 1907년에는 제대로 그림을 배우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01. 에펠탑의 연인들, 최종본.jpg

이미지 : 마르크 샤갈, 에펠탑의 연인들, 최종본, 다색 석판화, 1960, 66.3 x 50.6cm

Marc Chagall, Les Amoureux de la Tour Eiffel, 2e et dernier état , 1960, M.187, Color lithograph, 66.3 x 50.6cm, © Marc Chagall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그러나 항상 주변에는 그의 예술 작업을 지지해주던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으며, 훗날에는 그의 뮤즈인 연인 벨라와의 사랑이 있었다. 히틀러의 핍박과 수많은 고난 속 도망을 쳐야 했던 과정에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소박한 유대교 예배당과 목가적 풍경 속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유년 시절이 있었다. 언제나 유대인 공동체 사회의 온기를 잊지 않았다.


그에게 예술 창조의 원천이었던 ‘성서’는 다양한 색깔의 알파벳이 담긴 물감통이었다. 항상 성서를 읽고 묵상하며 그것에 붓을 담가 작품을 만들어 냈다. 사명(使命)을 다해 사랑과 평화가 공존하는 세상을 위하여 붓을 들었던 그였다. 더 나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죄목으로 2,000여 년 동안 핍박 받았던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독교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도 했던 그였다.


1930년, 마흔다섯의 샤갈은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받은 영적인 경험에 매료되어, 예루살렘 통곡의 벽을 중심으로 한 성지의 모습을 풍경화로 남겼다. 그는 예루살렘 방문 이후의 영감으로 25년에 걸쳐 성서 삽화 에칭 105점 연작을 완성한다. 이렇게 구약성서에서 샤갈이 선별한 장면들은 그의 인생에 걸쳐 드러나는 성서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고 있다.



03. 예루살렘, 통곡의 벽.jpg

이미지 : 마르크 샤갈, 예루살렘 통곡의 벽, 캔버스에 유채, 1931, 100 x 81.2cm

Marc Chagall, Jérusalem, le mur des lamentations, 1931, huile et gouache sur toile, 100 x 81.2 cm, © Marc Chagall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내가 만난 것은 세상의 두려움과 고통을 신의 소명과 사명으로 껴안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사랑의 화가’ 샤갈, 그는 신의 소명(召命)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까지 사명(使命)을 다했다.

 

 

 

또 다른 빛을 향해 (Towards Another Light)


 

내게 조금 더 특별했던 그 화가는 작품 앞에서 이제 그만 돌아서려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 하는 듯했다.

 

“한 사람과 연인으로서 함께 채우던 순수하고 열정적인 나의 사랑도 점차 내 속에서 소멸되었다. 매일 나는 십자가를 졌다. 그들은 나를 손으로 밀고 끌고 다녔다. 이미 밤의 어둠은 나를 둘러쌌다. 하나님, 당신은 나를 버리셨습니다. 왜? 나는 위층으로 달려갔다. 내 마른 붓이 있는 곳으로. 나는 그리스도처럼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이젤에 못 박혔다."

 

"이제 내 마음속 사랑의 감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내 곁에 사람이 떠난 이후 나의 사랑은 이제 또 다른 빛이 되어 만인의 것이 되었다. 갈수록 더욱 깊고 넓어져 가고 있음을 새로이 깨닫고 있다. 나는 신에게 맹세한다. 눈을 감는 그 날까지 신을 위하여 다시 한번 그림을 그려낼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그려내었고 나는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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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마르크 샤갈, 또 다른 빛을 향해, 다색 석판화, 1985, 63 x 48 cm

Marc Chagall, (Vers l'autre Clarté), 1985, M.1050, Color lithograph, 63 x 48 cm, © Marc Chagall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샤갈은 이 그림을 완성한 직후 98세 나이로 눈을 감았다. 생애 마지막까지 그에게는 오로지 사랑만이 가득했다. 나는 그의 작품 앞에 멈춰 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는 이것을 마지막으로 영원한 사랑을 품에 안고 세상을 떠났을 것만 같았다. 나의 시선이 닿은 곳마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신의 소명(召命)’이 묻어 나옴을 느꼈다.

 

그가 일평생 고통 속에 품고 온전히 지켜온 사랑은 또 다른 빛이 되어 나의 마음속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나에게 다가와 먹먹한 마음을 녹여주는 온기로 가득 채워주었다. 나를 가득 채운 그 빛은 또 다른 빛을 향하는 만인의 사랑이 되어 퍼져 나갈 것이다. 내 마음속 다가온 ‘사랑의 화가 샤걀’이 그러했듯이.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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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트뮤지엄은 독창적인 소재와 화풍으로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화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회고전이자, 샤갈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 창조의 원천이었던 ‘성서’를 주제로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을 2021년 11월 25일부터 22년 4월 10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기존 국내에서 여러 차례 진행된 사걀 전과 달리 그간 단독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성서’라는 주제와 함께 샤걀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강기슭에서의 부활>, <푸른 다윗 왕> 등 유화, 과슈를 포함한 19점의 명작과 4m에 육박하는 대형 태피스트리 2점 및 독일 Kunstmuseum Pablo Picasso Münster 소장품 등 총 220여 점의 오리지널 작품이 공개된다.


그는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리는 시간 동안 전쟁과 학살로부터 고통 받는 인류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펼쳤다. 이런 그가 성서를 통해 전달하는 인류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를 온전히 감상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혼란의 시대 속 전시장의 끝에서 만난 샤갈의 한 마디는 분명 우리들에게 큰 위로의 울림이 될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진정한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 - 마르크 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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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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