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쌉-인디펜던트' 배현이가 엮어낸 음악세계

아티스트 배현이 인터뷰
글 입력 2021.12.3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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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배현이

 

 

배현이의 <나쁜생각>을 처음 듣고 받은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짧은 기침소리 후 펼쳐지는 과격한 드럼, 안정과는 거리가 먼 휘슬소리, “선생 말을 잘 들어야지"라는 고리타분함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까지. 쏟아지는 최신곡 사이에서 유난히 두드러진 음악은 곧바로 아티스트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을 ‘쌉 인디펜던트 종합예술인’이라고 소개한 배현이(baehyuni)는 힙합 아티스트이자 ‘퓨어갱(Puregang)’의 멤버다. OPCD의 WMM 2020에서 <알바비>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씬에서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배현이의 첫 정규 앨범 [위위]는 관습과 문법을 깨버리고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날린다. 큐팁(Q-Tip), 고릴라즈(Gorillaz),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에 이어 레드벨벳과 에스파까지, [위위]는 다양한 아티스트의 영향을 받아 장르를 넘나드는 독특한 감각을 담았다.

 

[위위]에서 펼쳐진 음악 세계를 배현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

 

▪︎ 안녕하세요 현이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음악을 만드는 배현이라고 합니다.

지난 11월 앨범 <위위>를 발매하셨어요. 축하드립니다! 앨범 발매 이후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앨범을 발매한 후 친구들과 교류하며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퓨어갱의 뉴클리어보이와 내년에 발매할 EP를 준비 중이고, 다른 친구들이 부탁한 편곡 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삼과 함께 은평구에 위치한 카페 ‘이일삼점’에서 전시를 열었어요.

 


▪︎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어린 시절엔 연예인만 음악가가 될 수 있다고 알았어요. ‘먼저 유명해지고 나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처럼요. 메인스트림에서 활동하며 방송과 차트에 오르는 사람만이 음악가고, 음악가가 되기 위해선 전공을 배우고 소속사를 거쳐 정식으로 데뷔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인디나 언더그라운드 씬의 존재를 전혀 몰랐던 거죠.

 

그러다 대학생 시절 밴드부 활동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어요. 창작은 아무나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음악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어요. 밴드부 활동이 끝나고 나서 혼자서도 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 정해진 루트를 벗어난 D.I.Y 정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러한 태도가 현이님의 음악에 녹아들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예전에는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아 자신감이 떨어졌어요. 음악을 함께하는 친구나 선배도 없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다 내려놨어요. 오히려 혼자일 때의 작업이 더 즐겁다고 생각해요. 아무도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을 만들어야 제가 추구하는 음악과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SNS의 소개란에도 ‘쌉 인디펜던트’라고 썼는데, 요즘은 홀로 음악 하는 상황에 만족하는 태도를 모토로 삼고 있어요.

 

 

▪︎ ‘배현이’로 활동하기 전부터 작품활동을 해오셨어요. ‘베니갱’, ‘골드피쉬’, ‘알음다름’ 등 다양한 이름이 있었는데, 본명으로 활동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베니갱’은 당시 힙합 아티스트들의 예명을 따라 지은 이름이었어요. 억지로 지은 거죠. 인위적으로 의미를 만들다 보니 나중에는 이름 자체가 오그라들고 떳떳하지 못했어요. “저는 베니갱입니다”라고 닉네임을 사용하는 감성은 저와 어울리지 않았죠.

 

평소 ‘갱(Gang)’이라는 단어를 좋아했어요. 친구들이라는 뜻의 단어인데, 만화 에 나오는 ‘피너츠 갱(Peanuts Gang)’에서 영감을 받아 ‘베니갱’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하지만 이름을 오래 써도 입에 붙질 않아 결국 본명을 사용했어요.

 

 

▪︎ 현이님이 활동하고 계신 크루인 ‘퓨어갱’도 ‘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네요. ‘퓨어갱’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퓨어갱은 배현이, 뉴클리어보이, 로삼, 우소연까지 네 명으로 구성된 크루에요. “야, 우리 크루 할 건데 들어와!”라고 말하며 본격적으로 결성하진 않고 자연스럽게 모였어요.

 

퓨어갱은 저와 뉴클리어보이가 커뮤니티에서 교류하며 시작됐어요. 당시 힙합엘이의 자녹게(자작녹음게시판)에는 자작 녹음과 함께 ‘교류 환영’이라는 코멘트를 달아 메신저를 주고받던 문화가 있었어요. 비슷한 시기에 믹스테이프를 낸 뉴클리어보이와 친해져 나중에는 작업도 함께하며 친해졌어요.

 

퓨어갱이 결성될 당시엔 ’베니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갱’이란 단어가 좋아 어디든지 붙여 사용했어요. 길을 못 찾으면 ‘길치갱’이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 자체적으로 밈을 밀고 계셨네요.

 

네. (웃음) 당시엔 꾸며지고 인위적인 음악을 지양해 ‘퓨어’라는 단어도 좋아했어요. ‘퓨어하지 못하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면서 “담배 퓨어봐”라는 말장난을 칠 정도였어요. 어쩌다 보니 ‘퓨어’와 ‘갱’을 합쳐 ‘퓨어갱’이라는 단어를 습관처럼 사용했어요.

 

그렇게 퓨어갱 활동을 하다 멤버인 로삼과 친분이 생겨 “너도 퓨어갱 해볼래? 단체곡 같은 건 안 해”라고 은근하게 영입했죠. 이런 방식으로 친하게 지내면서 한 명 한 명씩 퓨어갱으로 영입했어요. 그러다 보니 퓨어갱은 크루라기보다는 고민이나 음악관을 공유하는 친한 친구들의 모임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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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배현이


 

▪︎ 퓨어갱을 대표하는 음악관은 '순수함’일까요?


그렇죠, 순수함이죠. 어떤 ‘척’을 하지 않는 태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와 뉴클리어보이가 힙합 씬에서 잘 통하는 음악을 추구했다면 아마 다른 음악이 나왔을 것 같아요. 트렌드와 시장성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음악을 원초적으로 추구하는 태도에요. 퓨어갱의 멤버들 모두 같은 태도로 음악 하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해요.


 

▪︎ 현이님은 아트워크도 직접 작업하시는데, 평소에도 그림을 즐겨 그리시나요?

 

평소에 그림을 즐겨 그리진 않아요. 노트에 간단한 낙서만 하는 편인데, 가끔 그림이 필요할 때 작업을 시작해요. 음악에 사용할 아트워크를 그릴 때는 주로 어플리케이션이나 포토샵 같은 툴을 활용해요. 그림 그리는 방법을 찾아서 작업하다 보면 어느 정도 괜찮은 그림이 나오더라고요.

 


▪︎ 현이님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볼 수 있는 일관된 아트워크의 비결이군요.

 

네. 다른 작가님에게 아트워크를 부탁한 적이 한 번 있는데, 그림 실력이 너무 좋으셔도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너무 틀어져 결국 직접 그리기 시작했어요.

 

 

▪︎ <조직원>, <용궁>, <온세계>의 뮤직비디오는 직접 제작하셨어요. 뮤직비디오는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시나요?

 

요즘은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들도 뮤직비디오를 꼭 제작하는 추세라고 느꼈어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했고 전문적인 인력을 섭외하기도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퀄리티가 낮아지더라도 직접 제작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첫 뮤직비디오 제작은 <조직원>으로 시작했어요.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신 배우는 실제 제가 근무하는 학원의 상담 실장님이었어요. 저보다 동생이지만 진짜 직장 보스였죠. (웃음) 그래서 그 친구에게 “내 뮤직비디오 찍을 건데, 너 데뷔할래?”라고 물어봤더니 흔쾌히 승낙해줘 무작정 시작했어요.

 

혼자 작업하다 보니 뮤직비디오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어 좋았어요. 야외 촬영을 진행하고 크로마키 천까지 활용하니 구색이 갖춰진 뮤직비디오가 나와 신기했어요. 앞으로도 시리즈로 이어지는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어요.

 

 

[MV] 배현이 (baehyuni) - 조직원 (Henchman) / 포크라노스



▪︎ 영상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있나요? 개인적으로 현이님의 뮤직비디오에서 베이퍼웨이브(Vaporwave)가 떠올랐어요.

 

베이퍼웨이브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진 않았지만 현실의 풍경보다는 가상세계의 모습을 좋아해 비슷한 연출이 나온 것 같아요. 현실성 없는 풍경을 위해 동물이나 저의 모습을 갑자기 넣기도 했어요. 요즘 제일 좋아하는 연출은 영상 뒷 부분에 피치다운 된 음원을 넣고 엔딩처럼 만드는 방식이에요. 아웃트로 느낌 처럼요.

 

 

▪︎ 현이님은 지저분하면서 깨끗한 소리를 선호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인가요?

 

지저분하면서 깨끗한 소리는 믹싱과 편곡의 밸런스에서 추구하는 방향성이에요. 믹싱의 경우 디스토션이나 필터를 적용한 더러운 소리에서 고음 음역대를 이퀄라이저에서 키우는 방식으로 명료하게 표현했어요. 편곡적으로는 복잡한 화음으로 채운 파트 뒤에 하나의 라인으로만 진행되는 랩을 배치하는 등 복잡함과 단순함의 균형으로 표현했어요.

 

 

▪︎ 작업에서 어떤 악기를 사용하시나요?

 

평소 미디를 이용해 작업하다 보니 플러그인에서 악기를 골랐어요. 처음에는 신기해서 다양한 악기를 마구잡이로 사용했더니 음악의 일관성이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만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좋아하는 악기들을 추렸어요.

 

보통 드럼 소스는 곡의 스타일에 맞는 소스를 다양하게 사용해요. 신디사이저는 아투리아 마이크로브루트(Arturia MicroBrute)를 사용하고, 아투리아 멜로트론(Arturia Mellotron V) 플러그인도 자주 활용했어요. 그 외에는 세럼(Serum)으로 베이스 사운드를 만들고 스플라이스(Splice)에서 다양한 샘플을 이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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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배현이



▪︎ 본격적으로 앨범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위위> 앨범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위위]는 몇 년 동안 일상에서 떠오른 생각을 표현한 앨범이에요. 앨범에 다양한 장르가 뒤섞여있다고 생각해요. 특정한 아티스트나 앨범을 레퍼런스로 삼진 않았지만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특징을 조합해 최선을 다해 만든 앨범입니다.

 

 

▪︎  [위위]의 믹싱과 마스터링도 직접 하셨는데, 셀프 프로듀싱을 고집하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믹싱 또한 하나의 음악성이라고 생각해요. 의도한 소리를 직접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죠. 전문 엔지니어와 작업한 경험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작업 의도를 설명하기 정말 어려웠어요. 100개가 넘는 트랙을 합치는 방법을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었고, 레퍼런스를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기도 했어요. 제가 의도한 사운드가 믹싱 단계에서 달리 표현되는 걸 듣고 믹싱까지 직접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 [위위]는 사회 비판적인 가사가 돋보여요. 통념이나 관습을 깨트리는 주제를 노래한 이유가 있나요?

 

[위위]는 컨시어스랩이나 사회 비판적인 주제를 염두에 두고 만든 앨범은 아니에요. 평소의 생각을 표현하다 보니 비판적인 가사가 나왔어요. 처음엔 차별적인 표현이나 말실수가 두려워 가사 필터링 과정을 거쳤어요. 하지만 지금은 필터링을 지양하고 당시 느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 첫 곡 <재생을 누르세요> 부터 살펴볼게요. 첫 곡의 의미로 제목을 정하셨나요?

 

네, 첫 곡은 인트로를 넣고 싶었어요. 특별한 주제는 없었고, 인트로에 어울리는 코드나 리듬이 나와서 <재생을 누르세요>를 작곡했어요. 가사는 전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가  들어갔어요.

 

최근 고릴라즈(Gorillaz)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 슬라이드 기타 소리를 넣었어요. 그리고 휴대용 녹음기로 야외에서 녹음한 우쿨렐레 소리를 마지막에 배치했어요.

 

놀랍게도 <재생을 누르세요>에서 ‘두두’라는 가사는 미고스(Migos)의 랩을 따왔어요. “두두”, “우우” 등의 소리를 많이 사용하는 미고스를 따라 했는데, 생각 보다 어울리지 않았네요. (웃음)

 

 

▪︎ <재생을 누르세요>는 현이님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엿볼 수 있어요. 현이님이 추구하시는 작곡법이 있나요?

 

저는 재즈힙합을 하던 시절부터 코드 루프를 기반으로 작곡했어요. 그러다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작곡에 변화를 주고 싶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어요.

 

앨범제작 초기에는 곡을 진행하는 방법을 잘 몰라 편곡을 이리저리 연구했어요. 루프로 반복되던 코드에서 엉뚱하게 틀기도 하고, 악기를 추가해 구성을 늘리거나 FX로 소리를 변형하는 방법도 사용했어요. 그리고 심심한 머니코드는 피하고 싶어 주로 재즈코드를 다른 곡에서 찾아 사용했어요. 일부러 벗어난 화음을 섞는 방식도 시도해봤죠.

 

 

▪︎ <조직원>은 어떤 계기로 쓴 곡인가요?

 

과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상사로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근무 환경에서 계속 시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바비>나 <조직원> 같은 곡이 나왔어요. <조직원>의 스케치는 아이패드의 ‘드럼패드머신(Drum Pad Machine)’이라는 어플에서 만들고 이후 살을 붙여 곡을 완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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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배현이



▪︎ <조직원>의 주제는 수직관계에 대한 비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가사의 메시지를 좀 더 풀어주실 수 있나요?

<조직원>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처럼 과격하게 사회를 비판한 곡은 아니에요. 압박 속에 놓인 소극적이고 위축된 심리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아르바이트에서 스트레스받았던 경험을 은유적으로 풀었는데, 많은 노동자가 회사원 같은 불특정 조직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해 ‘조직원’이라는 주제를 사용했어요.

저는 은유적인 가사를 좋아해 직접적인 표현은 최대한 피했어요. ‘갑질’과 같은 적나라한 단어를 사용하면 추구하는 밸런스가 무너질 것 같았어요.

 

 

▪︎ 이어지는 트랙인 <사탕도둑>의 가사도 표현이 비슷한 것 같아요. 게으름이나 도파민 중독에 대한 비유처럼 들렸어요.

네 그런 느낌이죠. <사탕도둑>은 게으름의 달콤함에 대한 곡이에요. 저는 인생에서 달콤함을 느낄 기회는 한정되었다고 생각해요. 마치 각자의 인생에서 먹을 수 있는 사탕의 개수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요. <사탕도둑>은 먹을 수 있는 사탕을 전부 먹어버려 쓴맛을 본 사람의 이야기에요. 자신의 시간과 기회를 스스로 훔쳐먹은 사탕도둑이 된 거죠. 

 


▪︎ <사탕도둑>을 쓴 계기가 있나요?

저는 게으른 성격이어서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학교도 졸업하고 집에서 음악만 하는 상황이다 보니 아르바이트 다니던 학원에서 저에게 대타 근무를 많이 부탁하셨어요.

그러다 하루는 대타 근무를 갑자기 요청하셔서 거부했는데 “왜 못 와?”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진지하게 업으로 삼은 것도 아닌데 시간이 너무 낭비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일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공황장애 증상이 찾아왔어요. 저의 처지가 마치 사탕도둑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작업에 매진하기 시작했어요. 사탕도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곡을 썼어요.

 

 

▪︎ <다시>는 후반부의 달리는 듯한 편곡이 좋았어요. 사이키델릭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다시>는 어떻게 작업하셨나요?

<다시>는 호불호가 굉장히 갈라지는 곡이었어요. 너무 좋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었죠. 저도 <다시>의 후반부가 어디론가 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다시>는 틴에이지 엔지니어링(Teenage Engineering)의 OP-1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만들었어요. OP-1은 샘플링에 최적화된 신디사이저인데, OP-1으로 보사노바 보컬 소스를 샘플링해 사용했어요. 

 

 

▪︎ <알바비>는 OPCD WMM 2020의 최종 선정곡이에요. 좋은 결과를 가져와 각별한 애정이 있으실 것 같아요.

 

<알바비>는 WMM 2020에서 샘플팩 미션으로 제출한 곡이에요. 호스트마다 두 명의 아티스트를 선정했는데, 저의 <알바비>는 선우정아님이 직접 뽑아주셨어요. 평소에도 선우정아님을 굉장히 존경해 선정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어요. 게다가 선우정아님이 남겨주신 코멘트는 저에게 너무나도 큰 힘이 되어 앨범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거의 은인처럼 생각하고 있답니다. 

 

 

▪︎ <알바비>는 구성이 가장 복잡한 곡이라고 느꼈어요. 작업의 특별한 방향성이 있었나요? 

 

맞아요. <알바비>는 다른 곡들에 비해 비교적 복잡하죠. 한 곡 안에 세 곡이 들어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어요. <알바비>는 별도의 레퍼런스 없이 작업했어요. 인트로는 우쿨렐레를 아무렇게나 치다 나온 코드를 사용했어요. 거기서 뒷부분의 화난 알바생의 강렬한 사운드로 <조직원>처럼 소극적인 태도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알바비>는 극적인 전환 때문에 호불호가 갈렸어요. 우쿨렐레 인트로를 듣고 어쿠스틱한 노래를 기대했는데, 뒷부분에서는 기대와 너무 달라지는 사운드를 듣고 “이게 뭐야?”라는 반응을 보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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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배현이

 

 

▪︎ <나쁜생각>은 뮤직비디오와 함께 공개됐어요. 영상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셨나요?

<나쁜생각>의 뮤직비디오는 <알바비>에서 함께했던 김정 감독님을 섭외해 제작했어요. 크리틱(CRITIC)이라는 패션브랜드에서 제작한 패션필름을 레퍼런스로 빙글빙글 도는 연출을 감독님께 부탁드렸죠. 360도 카메라를 이용해서 제작된 영상이에요.

 


[MV] 배현이 (baehyuni) - 나쁜생각 (Bad Thoughts) / 포크라노스

 

 

▪︎ <나쁜생각>은 삐딱한 태도의 가사가 돋보여요. 곡을 쓴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먼저 <나쁜생각>은 휘파람 샘플을 작게 쪼개서 루프를 만들었어요. 비트 위에 “선생 말을 잘 들어야지”리는 가사와 멜로디가 동시에 나왔어요.

<나쁜생각>은 어머니와의 갈등을 계기로 쓴 곡이에요. 저는 반항적인 태도에서도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에요.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저에게 전통적인 여성관을 바라셨는데, 그런 여성적인 모습은 저와 어울리지 않았어요.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저만의 삶을 살기로 했어요. 그래서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게 나쁜 생각이라는 의미로 가사를 썼습니다. 

 

 

▪︎ <버튼>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곡이에요. 다른 수록곡에 비해 화자의 태도가 솔직하고 강한 느낌이었어요.

<버튼>은 타이틀 후보곡으로 정할 정도로 좋아했던 곡이에요. 하지만 랩이나 믹싱이 마음에 들지 않아 타이틀에서 제외했어요. <버튼>은 말씀하신 대로 직설적인 태도로 가사를 썼어요. 학창 시절 사귀었던 친구들이 어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가는데, 취직과 결혼이 당연한 삶처럼 여겨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다양한 삶의 방식을 무시하고 저에게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는 게 화가 났죠. 음악 하는 친구들은 그런 이야기를 할 일이 없는데 말이에요.

 


▪︎ < LOVE >는 앨범에서 등장한 첫 러브송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곡을 좋아하지 않아요. 러브라는 단어가 너무 별로예요. (웃음) 지금 와서는 < LOVE >가 너무 가식적이고 유치한 노래처럼 들려요. 하지만 반대로 친구들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에요. < LOVE >는 한창 우울할 시기에 애써서 낭만을 그린 노래에요. 사랑보다는 이해해 줄 사람을 찾고 싶어서 노래를 썼어요. 



▪︎ 이어지는 < S2 >는 < LOVE >의 훅을 반복하며 이어지는 곡이에요. 비슷한 내용의 노래인가요?

< LOVE >가 가식적인 사랑이라면 < S2 >는 현실적인 사랑노래에요. 사랑에 빠져 찾아온 어지럼증을 겪고 현실로 도망치듯 빠져나간 이야기입니다. < S2 >는 앨범이 발매되기 직전 완성된 노래에요. 그래서 음악적으로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었어요. 



▪︎ <예술마음>은 예술에 대한 태도가 직접 드러난 곡이에요. 가사에는 음악에 대한 고민이 가득한데요, 지금은 예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술마음>은 ‘예술을 일로 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서 소극적인 태도로 시작해요. 그러다 갑자기 잔뜩 화가 난 자아가 등장해 ‘마음대로 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끝나요. 지금은 곡의 마지막 태도처럼 마음대로 음악을 만들기로 했어요. 



▪︎ <웨이터>의 가사는 비교적 이해하기 어려운 편이었어요. 어떤 내용의 곡인가요?

<웨이터>는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음악으로 성공하고 수입이 생기길 기다리는 뮤지션의 노래에요. 슈퍼스타가 되길 바라진 않지만 적어도 음악으로 먹고살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싶어 썼어요. 전업 뮤지션이 되고 싶은 소망을 담은 노래네요.

<웨이터>도 OP-1 신디사이저로 작업한 곡이에요. 처음엔 정말 어울리는 휘파람 샘플이 있었는데, 저작권 문제 때문에 직접 녹음해서 샘플을 만들었어요. 뉴클리어보이가 랩을 너무 잘해줘 좋은 곡이 완성된 것 같아요.



▪︎ 마지막 트랙 <자기암시>는 앨범의 주제를 요약한 곡 같아요. 현이님의 자기암시 내용인가요?

네 맞아요. 자기암시는 스윙스가 말한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멋있다고 칭찬하기’와 같은 행동이에요. 저는 처음 자기암시의 효과를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공황장애가 오고 힘든 시기를 겪고 나서 자기암시를 조금씩 시도해봤죠. 날마다 자기암시를 반복하니 심리적인 안정이 찾아왔어요. 자기암시의 효과를 깨닫고 꾸준한 실천을 다짐하며 쓴 노래입니다.



▪︎ [위위]의 흥미로운 점은 앨범 소개의 ‘영감이 된 아티스트’ 목록이에요. 락, 알앤비, 힙합을 가리지 않고 넓은 스펙트럼의 아티스트를 소개했는데, 말씀하신 아티스트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으셨나요?

저는 평소 인상 깊게 들었던 아티스트의 표현을 참고해 작업에 적용했어요. 엔이알디(N.E.R.D)와 아스테로이즈 갤럭시 투어(The Asteroids Galaxy Tour)의 음악은 곡 구성이 다채로워 편곡에 참고했어요. 예를 들어, 보통의 음악이 ‘인트로 - 벌스 - 훅 - 브릿지 - 벌스 - 훅’의 구성이라면 이분들의 노래는 훅을 고조시키는 프리 훅을 넣거나 따로 구분하기 애매한 부분도 존재해요.

저는 <용궁>과 <다시>에서 실험적인 구성을 참고해 작업했어요. ‘A-B-C’의 선형적인 구성이 아닌 ‘머리 - 가슴 - 배’ 느낌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보통 많은 사람들이 쉽게 기억하고 따라부를 수 있게 좋은 훅을 만들려 하지만, 저는 일반적인 틀에 곡을 가두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좀 더 자유로운 구성의 음악을 시도한 것 같아요.


▪︎ 량현량하는 아티스트 목록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어요.

저는 량현량하의 [쌍둥이 파워] 앨범을 정말 좋아해요.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이 잘 묻어난 음악이에요. 랩 스타일은 단순하지만 쉽고 재밌는 가사가 좋았어요. <사탕도둑>의 가사와 랩에서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싶어 량현량하의 음악을 참고했어요.


▪︎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은 앨범의 락 사운드에 참고하셨나요?

네, 평소 밴드 사운드의 곡을 쓰고 싶어 레드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ly Pepers)나 RATM 같은 밴드의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알바비>는 RATM의 사운드를 참고한 곡이에요. 그래서 음원 플랫폼에서 메탈/락 장르로 분류된 것 같아요.

악기들의 사용법을 다른 아티스트의 표현법에서 영감을 받는 편인데, 일렉트로닉 피아노(EP)의 사운드는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멤버인 큐팁(Q-Tip)의 음악을 참고했어요. [The Renaissance] 앨범에서 패드와 EP를 활용해 연출한 어딘가 자신만의 세계로 빠지는 몽환적인 느낌이 좋았어요.



▪︎ 케이팝 아티스트인 레드벨벳과 에스파도 언급하셨어요. 현이님은 어떤 점을 참고하셨나요?

레드벨벳의 경우엔 < Dumb Dumb >의 독특한 코러스를 <나쁜생각>에서 사용했어요. 에스파는 최근에 빠져들었는데, < Next Level >의 극적인 파트 전환이 인상적이어서 참고했어요. 개인적으로는 SM 스타일의 세계관 구축도 시도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웃음)


▪︎ 음악의 방향성뿐만 아닌 세부적인 연출에도 레퍼런스를 섬세하게 사용하셨네요.

네 맞아요. 다른 아티스트도 말씀드리자면 <나쁜생각>은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의 [Justified] 앨범을 참고했어요. ‘Like I Love You’의 스네어 사운드는 동일한 박자에 나오지만, 피치가 계속 달라져요. 변화적인 요소들이 곡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나쁜생각>에 많이 활용했어요.

그 외에는 테임 임팔라(Tame Impala), 고릴라즈(Golilaz)와 같은 얼터너티브 밴드의 웻(Wet)한 기타 사운드를 참고했고, 아스테로이즈 갤럭시 투어(The Asteroids Galaxy Tour)의 뾰롱거리는 신디사이저 소리를 가져오기도 했어요.

코드진행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의 음악과 세르지오 멘데스(Sergio Mendes)의 [Timeless] 앨범을 참고했어요. 가장 좋아하는 코드는 반음 진행이에요. 특유의 소름 돋는 느낌을 좋아해 자주 사용했어요.

가사는 선우정아님의 음악에서 영향받았어요. 평소 하던 생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 작사 방식을 참고했어요.

마크론슨(Mark Ronson)과 캘빈 해리스(Kelvin Harris)의 디스코 펑크 음악도 앨범 작업 중에 많이 들었고, 레미 울프(Remi Wolf)의 음악에선 명랑한 느낌의 연출과 보컬 믹싱도 참고했어요. 그리고 트레비스 스캇(Travis Scott)의 추임새를 따라했 어요. 오토튠과 리버브를 사용하고 “악!” 소리를 내면 꽤 멋있게 나온답니다. (웃음) 

 

 

▪︎ [위위] 이후의 다른 활동 계획이 있나요?

[위위]를 활용한 공연을 계획하고 있지만 아직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요. [위위]는 퍼포먼스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 MR만 틀고 노래하기에 어색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공연을 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하고 싶어요. 만약 공연을 계획한다면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가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NPR Tiny Desk Concert)에서 보인 재즈 라이브셋과 같은 소규모 라이브도 진행하고 싶어요.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하나 더 작업할 생각이에요.



▪︎ 마지막으로 팬들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의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종종 봤지만 아직은 ‘배현이의 팬’이라는 개념이 와닿지 않아요. (웃음)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만든 음악이라고 생각해 취향이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해요. 그래도 제멋대로 만든 음악을 들어주시고 이해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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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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