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의식의 세계를 걷다. '초현실주의 거장들 :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展' [전시]

글 입력 2021.12.2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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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사조. (출처: 네이버 사전)
 

 

유럽 전역에서 가장 큰 초현실주의 컬렉션을 보유한 세계적인 박물관 보이만스 판뵈닝언의 소장품들이 뉴질랜드를 지나 한국에서도 공개된다. [초현실주의 거장들 :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展]에서는 이 전시의 포스터로 쓰인 <금지된 재현>작품의 주인인 르네 마그리트, 콧수염, 괴짜, 천재라는 세 단어만으로도 연상되는 그 이름 살바도르 달리, 다다이즘부터 현대 개념미술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마르셸 뒤샹을 포함한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원화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11월 27일부터 3월6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3층에서 진행된다.


전시는 ‘초현실주의 혁명’, ‘다다와 초현실주의’, ‘꿈꾸는 사유’, ‘우연과 비합리성’, ‘욕망’, ‘기묘한 낯익음’ 총 6가지 섹션으로 구성된다.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시작으로 초현실주의의 시초가 된 다다이즘 운동부터 초현실주의 이후 싹튼 추상파 운동까지 아우르는, 정신적 세계에 기초한 초현실주의 운동의 특징과 맥락을 세부적으로 담아낸 전시이다.

 


초현실주의 포스터_1108.jpg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미술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름만으로는 언뜻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예술사조들이지만 내게 멀게 느껴지는 단어는 아니었다. 홍대거리 곳곳에서는 밴드 혁오의 오혁이 비주얼 아트 크루 다다이즘 클럽과 함께 전개하는 브랜드인 '다다多多'의 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마주했고, 초현실주의자들이 작품을 창작하는 기법 중 하나인 ‘오토마티즘’(자동기술법)은 우리가 국어시간에 배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이상의 ‘날개’에도 등장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배운 의식의 흐름 기법은 지금도 대화 도중 생각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산발적으로 튀어나올 때에 하는 말 중 하나이지 않은가. 종종 의식의 흐름으로 일기를 쓰며 나는 지금 초현실주의적 사고에 빠져있는 것뿐이라는 (말이 되다 만) 생각을 자주 했었다.


또, 미학이나 문체로 정의되는 것이 아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능력에 의해 정의된다는 부분이 나는 시적이라고 생각했다. ‘초현실주의 시’의 영역이 따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사랑과 무의식에 대해 언어로 조각해내는 일은 이 시대의 시와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구구절절한 이유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무언가 새로운 현실을 제시하는 환상적인 작품 세계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다.


이전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에서 초현실주의에 빠져있던 이상과 김환기 등의 작품들을 인상적으로 관람하며 국내에도 초현실주의전이 열리기를 손꼽아 기다려왔다.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전시 소식에 무척 반가운 마음으로 예술의 전당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혁명의 시작, 초현실주의 선언문


 

이미지01_앙드레 브르통-초현실주의 혁명.jpg

앙드레 브르통

 (André Breton, 1896-1966)

 초현실주의 혁명 (La Révolution surréaliste), 간행물, 1924,

 28,6 x 20,2 x 0,3 cm

 © André Bret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경이로운 것은 언제나 아름다우며, 

경이로운 것은 모두 아름답고, 

사실 경이로운 것만이 아름답다.”

 

- 앙드레 브르통

 


1924년 10월, 파리.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검소하게 제작된 이 책은 혁명의 시작을 상징한다. 1차 세계대전과 산업화를 겪으며 힘든 현실을 경험한 유럽의 예술가들은 이상의 괴리와 감정적 갈등 안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낸다. 그들은 이성적인 사고와 비이성적인 사고의 벽을 허물어 인간 정신이라는 심오한 범주를 완전히 열고 싶어 했다. 본래의 예술이 이성과 감성, 정신과 마음이 합쳐지는 지점에 초점을 두었다면 그것의 극점인 무의식의 영역에 눈을 돌린 것이다.


이 선언을 시작으로 초현실주의는 꿈과 욕망, 무의식의 세계로 금세 진입하였고, 문학과 시에서부터 시작하여 회화, 조각, 공연, 사진, 영화에 이르기까지 범위를 확장하였다. 초현실주의를 창시한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를 ‘순수한 상태의 심리적 자동화 기술’이라며 이성에 의한 통제를 벗어나 말로든 글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사유의 실제 작용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다다이즘에 대한 내용을 빼고 초현실주의를 완벽하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다’(어린이가 갖고 노는 말 머리가 달린 장난감)라는 말은 다다이즘의 본질에 뿌리를 둔 ‘무의미함의 의미’를 암시한다. 초현실주의 이전 짧은 기간 동안 한창 유행했던 허무주의적 예술운동인 다다이즘은 제 1차 세계대전 말기와 1920년대 초 유럽을 휩쓸었다. 다다이스트들은 전쟁을 초래한 사회에 대해 항의하며 혼란과 소음, 반이성주의를 찬양했으며 무정부적이면서도 유머가 있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다다이즘에 몸담은 멤버들은 이후 초현실주의에 흡수되었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는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인 문명화에 대한 거부로 정신세계를 중시하며 전통과 질서를 파괴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다다이즘은 기존의 이성적이고 전통적인 생각들에 항의하고 파괴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초현실주의는 창조와 탐구를 중시하며 미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다다이즘은 새로운 현실의 등장을 꿈꾸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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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1887-1968)

여행 가방 속 상자 (La boîte-en-valise), 1952


 

마르셀 뒤샹은 미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다. 변기 모양의 오브제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인 유명한 작품은 아마 다들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레디메이드’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했다. 레디메이드란 예술가의 선택에 의해 예술 작품이 된 기성품을 뜻하는 말로, 일상의 물건들을 그대로 가져와서 예술품으로 만든 것을 ‘이미 만들어진(Ready-made)’라고 불렀다. 직접 만들지 않은 일상적인 것들에게 예술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예술의 정의에 대한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예술이란 수공이 아닌 예술가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정신적 행위이고 예술의 본질은 형태가 아닌 기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며 개념미술의 씨앗을 심었다.


뒤샹은 일생동안 자신이 작업한 작품을 축소해서 작은 종이 상자 안에 담아 레디메이드 조각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는 다다이즘의 보물 상자이며, 그의 재치 있고 도전적인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는 1913년 자전거 바퀴를 나무 발판에 올린 후 조각으로 칭하며 레디메이드 작품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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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레이 (Man Ray, 1890-1976) 

 선물 / 대담함 (Cadeau/Audace), 1921(1974)

 혼합재료 Cast iron and copper tacks  

 16,5 x 10 x 10 cm

© Man Ray 2015 Trust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만 레이의 <선물/대담함>이라는 작품 역시 레디메이드이다. 그는 섬유의 구겨진 부분을 펴내는 용도의 다리미에 압정을 일렬로 붙여 예술작품으로 칭했다. 그는 미적인 특징들을 완전히 무시했다고 말하며, 장인처럼 손수 작품을 만드는 기술보다도 창의적으로 행동하기를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하는 점은 이 작품이 전시회에서 도난당했다는 것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감상한 작품은 만 레이가 1970년대에 다시 제작한 것으로, ‘스스로 수공한 것이 아닌 레디메이드 작품을 다시 제작한다면 독창적인 작품의 가치는 대체 무엇일까?’ 라는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초현실주의의 키워드. 꿈, 사랑, 무의식, 욕망, 기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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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

태양열 테이블 (Table solaire), 1936

판넬에 유채

60 x 46 cm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한 인물은 다른 한 인물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다. 커플의 머리에는 구름이 가득하고 광막한 사막에는 테이블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작은 오브제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으며 구름 속에는 먹구름의 기운이 풍기기도 한다. 나는 다정한 커플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어둡고 쓸쓸한 정서도 풍기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달리는 이 작품에 19세기 프랑스 화가인 장 프랑수와 밀레의 작품인 만종에서 여성의 몸이 남성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포즈를 인용한다. 그는 만종을 깊고 무의식적인 성적 욕망의 표현으로 보았다.


이 작품은 달리가 그와 그의 아내인 갈라를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갈라는 달리의 연인이자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는 뮤즈였다. 갈라에 대한 달리의 사랑은 유아적이고 맹목적이어서, 갈라가 병원에 입원하자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림 속에서 잠재된 불안감과 황량함이 느껴지는 것은 나의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지07_살바도르 달리-서랍이 있는 밀로의 비너스.jpg

서랍이 있는 밀로의 비너스 (Venus de Milo aux tirois), 1936

  혼합재료

  99 x 29,5 x 31,5 cm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욕망은 세상에서 유일한 동기부여 적 원리이며, 인간이 인정해야 할 유일한 주인입니다.

 

-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사랑과 욕망은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이성을 멀리하고 무의식적인 발현에 집중했던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사회의 구조와 성에 대해 얌전한 체하는 인식을 허물었다. 달리의 오브제는 주로 성적으로 묘사되었다.


'서랍이 있는 밀로의 비너스'는 전형적인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밀로의 비너스를 석고 모형으로 제작한 것이다. 달리는 비너스의 몸과 마음에 7개의 공간을 만들고 털 뭉치가 달린 비밀 서랍을 배치한다. 서랍에는 단순히 보이지 않는 꿈이나 무의식뿐만 아니라 성적인 욕망 등 인간 본연의 욕구 등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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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éne Magritte, 1898–1967

삽화가 된 젊음 (La jeunesse illustrée), 1937

캔버스에 유채

  184 x 136 cm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당구대, 배럴 통, 튜바, 새장, 자전거가 일렬로 늘어놓아져 있다. 이 작품 속의 많은 사물은 작가가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던 작품들이지만, 그는 이 사물들을 우리가 아는 방식이 아닌 색다른 목적으로 사용한다. 우리는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우리의 방식대로 젊음을 지나온 순간들을 감각하면 된다.


르네 마그리트의 깨끗한 화법 덕분에 우리는 이 화면에서 기이함을 느끼고, 이는 우리를 새로운 현실 세계로 초대하는 그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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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재현 (La reproduction interdite), 1937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81 × 65,5 × 2 cm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그림은 ‘제임스’라는 인물의 초상화이다. 인물은 거울 앞에 서서 뒤통수를 보이고 있지만, 거울은 그의 얼굴을 비추는 대신 뒷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면에 벽난로 선반 위에 놓인 에드거 앨런 포의 책은 거울에 반사되어 제대로 비친다. 책은 허용된 복제이며, 제임스는 금지된 복제. 그리고 거울은 비이성적인 것의 실체이다.


몇 십 년 전의 작품이지만 나는 이 작품에서 현대인을 목격하기도 한다. 관람객인 내가 이 작품을 보고 있으므로 작품 속에 있는 거울을 보는 사람에게는 이미 타자의 시선이 개입되었다. 거울은 뒤에서 타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의 그 사람의 뒷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거울을 보는 이유는 나뿐만 아니라 ‘남’이 보는 나를 의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작 내면의 나(거울에 비친 나)는 혼자 있을 때도 뒷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마음과 욕구를 들여다보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작품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작품을 감상하다 문득 시를 이해하고 싶다는 나에게 사랑하는 시인이 답해준 말을 떠올렸다.


‘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작품세계도 꼭 그러했다. 작품 자체가 의식의 흐름대로 풀어낸 무의식의 세계여서 그런지 작품을 일일이 심도 있게 이해하려 하기보다 몸에 힘을 풀고, 느껴지는 그대로를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감각해내려 애썼다. 시를 읽듯이 작품들을 감상했다. 나의 꿈과 욕망, 무의식의 세계를 꺼냈고 작품 속에 잠겨 있는 정취를 있는 힘껏 느꼈다. 그러다 보니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를 나의 오래된 기억들과 마주하기도 했다.


전시장 밖을 나오니 꿈에서 깬 기분이었다. 관념적으로 느껴졌던 초현실주의라는 사조는 세 시간의 시간을 거쳐 이전보다 조금 더 생생해졌다.


꿈과 이상, 우연과 비합리성, 무의식의 세계가 궁금하시다면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하는 <초현실주의 거장들>전에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기이하고 환상적인 세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전문필진-박세나.jpeg

 

 

[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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