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세먼지는 황색입니다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도서/문학]

197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의 관점에서 언론과 독자란?
글 입력 2021.12.1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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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는 황색인가?



“미세먼지는 황색이래.” “뭐?” “누렇다고.” “누러면 황사 아니냐?” “그러게.” 몇 년 전부터 계속된 미세먼지로 대한민국은 KF마스크 선도국이 되었다. 신문의 1면을 차지하던 이야기는 뉴스 말미 기상 캐스터의 한 줄로 갈음되고 있다. 보통의 삶이 더욱 침식되는 원인은 알게 모르게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

 

“미세먼지는 황색입니다.” 심각한 표정의 앵커가 다시금 화두를 던진다면 시청자의 반응은 어떠할까. 보도 시점에 기민한 이는 배경이 궁금할 테다. 문법에 집착한 이는 미세먼지가 아니라 미세먼지가 도사린 하늘이 누런빛이라고 지적할 테다. 그리고 황사든 미세먼지든 다 건강에 해롭다며 마스크를 구매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색깔론의 근본이 주범은 아니다. 색의 보조관념에 얽매여 이면을 외면하는 순간을 막을 순 없다. 세상에 흩뿌려진 형형색색의 표현 사이로 본색(本色)을 거두어 드러내는 것이 글쓴이로서의 소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삶 깊숙이 굳어져 반사신경을 미혹시키는 안료를 경계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황색언론을 마주한 독자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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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언론의 출현


 

스물일곱 살의 카타리나 블룸은 가정관리사로 성실히 생계를 꾸려나가는 와중 괴텐이란 남자를 만난다. 은행 강도와 살인 혐의가 있는 그의 행적으로 인해 그녀까지 경찰 조사를 받게 된다. 그의 과거를 몰랐던 그녀는 이혼 전력 등의 사생활과 묵비권 행사로 여론의 관심 대상이 된다. 자신의 명예가 황색언론에 의해 실추되자 결국 그녀는 기자를 살해하고 자백한다.

 

1972년 1월 하노버 공대 심리학 교수 페터 브뤼크너(Peter Bruckner)는 바더 마인호프(Baader-Meinhof-Gruppe) 일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이로써 그는 언론의 비난과 실업을 경험해야 했으며 이는 해당 작품의 원형이 되었다. 당시 배경인 테러리즘 논쟁은 사회 질서 정립 혹은 시위를 위한 폭력 용인 여부로 요약될 수 있었고 사회적 대립과 개인의 격랑 간 선후 관계는 모호했다.

 

무릇 사람이라면 휩쓸리고 휘둘릴 수 있다. 언론은 우리가 무엇을 걸치고, 먹으며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담는 그릇이기에 갖가지의 기준으로 취사 선택한 편향성을 논조라는 명목으로 전달한다. 이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합집산의 집단 뒤로 언론과 사회는 면죄부를 얻을 수 있지만 개인은 그렇지 않다. 지극히 사적인 결정이 주류의 관점에서 곡해될 때 새로운 물결은 잠시의 파문에 그친다.

 

 
“이 장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기밀 정보들의 원천을 캐묻지 말 것을 당부한다. 중요한 문제는 오직 정체된 옆 웅덩이를 뚫는 일이다. 정체된 웅덩이의 어설프게 생겨난 둑을 뚫어 물이 빠지게 하거나 흐르게 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정체된 웅덩이의 약한 둑이 무너지고 모든 긴장이 사라지기 전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2008, 민음사, 61면.
 

 

속보는 정보에게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소식이라는 정보의 본뜻에 비춘다면 우리네 삶은 매우 가변적이므로 언론의 시의성을 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때때로 독자들은 속도의 속임수에 현혹되고 만다. 어떤 사안의 본질을 흐리기 위해 다른 곳으로 관심을 유도하는 세칭 ‘물타기’는 손해 위험을 줄이려는 주식 거래 방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금권이 비대하게 쌓이는 ‘정체된 웅덩이’는 누구의 소관일까.

 

 
“마지막으로 반전시키거나 끌어들이거나 옆길로 흐름을 유도하는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여기에서 소위 기술적으로 끼어들어 한마디 해야겠다. 이 이야기에서는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난감하고 다 다룰 수 없을 만큼 파란만장하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단점이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2008, 민음사, 100면.
 

 

정확성이 보장된 보도는 힘이 있다. 참과 거짓을 가르는 것도 ‘기술’이기에 이를 연마한 매체에 힘이 실리는 것은 타당하다. 사실 확인이 용이한 구조의 언론사는 몸집을 불릴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전문 필진의 논설이 미감을 더하면 독자의 구미를 돋울 수 있다. 그러나 정보 접근성이 향상될수록 ‘정곡’을 찌르는 정론 대신 곡론끼리의 비견이 양산될 뿐이다. 소셜 미디어의 확산으로 독자의 관점은 다양하나 견고해졌고 기업은 수요를 좇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 다른 대목에서 ‘함께 흐를 수 없는’ 원천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그건 운명의 여신이 왕의 아이들의 초를 잘못 불어 꺼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어느 한쪽이 상당히 깊이 가라앉아 익사한 것이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2008, 민음사, 102면.

 

*독일의 민요(Deutsche Volkslieder, 1807)에 ‘왕의 아이들’에 관한 민요가 실려 있다. 서로 너무나 사랑하는 왕자와 공주가 있었는데, 그들 사이를 깊은 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공주는 왕자에게 두 자루의 초를 밝혀 둘 테니 자기에게 헤엄쳐 오라고 했다. 운명의 여신은 이를 들었지만 짐짓 못 들은 척, 자는 척하면서 초를 꺼 버린다. 어둠 속에서 헤엄쳐 공주에게 가려던 왕자는 물에 빠져 죽고 만다. 다음 날, 일요일 아침 모두가 즐거워하면서 교회에 가지만 공주는 머리가 아파 산책을 가겠다고 하고는 물가로 와서 어부를 시켜 죽은 왕자를 건진다. 죽은 왕자를 본 공주는 결국 자신도 물속으로 뛰어든다.

 

 

지리멸렬한 역학의 결론은 독자에게 남다른 분별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담론에 놓인 수많은 이들의 복심은 무엇일지 짐작해보며 ‘함께 흐를 수 없는’ 원천들을 추측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1급수에도 ‘부유물’은 잔존한다. 적당한 과장이 이목을 견인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무기물과 미생물의 유익함은 독자의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로 귀결된다. 진부하지만 낙착을 보기 위해 구관에서부터 살펴야 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때문이다.

 

 

 

황색언론은 미세먼지처럼


 

그렇고 그런 이야기의 행방은 묘연하다. 연신 들리는 황당무계한 동정이 앞으로 필자가 감당해야 하는 사회인으로서의 무게라면 때 이른 근심이 몸의 근막을 짓누른다. 경보를 통해 미세먼지에 대비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한 치 내다 볼 수 없는 인간사에 탄식한다. 심사를 어지럽히는 건 인지조차 어려운 길 위에 길잡이가 되어야 할 언론이 뿌옇게 드리운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공기청정기를 켠다. 촌각을 다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보루이다. 문명의 이기는 지난 고뇌를 기우로 만든다. 하지만 재화의 탄생은 환경을 악화시키고 악화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은 또 다른 재화를 생산한다. 날조는 언론 생태계를 파괴하고 이를 쇄신하기 위해 언론사는 사실 확인(fact check)을 부르짖는다. 환경과 언론은 인간이 대항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단지 우리의 과오를 감내해야 할 뿐이다.

 

잊을만 하면 찾아온다. 좋거나 보통이거나 나쁘거나 매우 나쁠 대기질에 응축된 미세먼지는 수치로 환산된다. 자연적인 환류로도 부족하다면 다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게 상책 아닐까.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게시물의 본체는 어떠할까. 사람이 모이면 분진이 일 듯 각광에 숨어 버린 그림자는 계속 일렁일지 모른다. 이제는 무심코 창을 열어 공기를 마시기 어렵듯 황색언론이 많아진 작금에 데여 촉각부터 세우는 태도가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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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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