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거꾸로 걷는 남자 - 포르투갈의 높은 산 [도서]

글 입력 2021.12.14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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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걷는 남자


 

내가 거꾸로 걷는 남성을 알게 된 건 이 년 전이다. 뒤로 걷기가 건강에 좋다던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뒤로 걷는 게 똑바로 걷기보다 느리다. 그러나 그는 뒤로 걷기를 선택했다. ‘집’을 잃었기 때문이다.

 

뒤로 걷는 남성은 ‘토마스’라고 불린다. 그는 미술 박물관 학예 보조사로 1904년 가족을 잃었다. 그는 가족을 잃은 후, 뒤로 걷기를 선택했다.

 

거꾸로 걷는다니, 분명 우스울 것이다. 귀신은 인간의 행동을 거꾸로 따라 한다던데 그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행동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그는 ‘집’을 잃었기 때문에 신에 대한 반항으로 뒤로 걷기를 선택했다.

 

어느 날 토마스는 기독교의 역사를 바꿀지도 모르는 예수를 찾기 위해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진실은 달랐다. 예수의 형상은커녕 침팬지를 마주한다.

 

 

알겠습니까? 당신들은 오랜 세월 십자가에 달린 침팬지에게 기도한 겁니다. 당신들의 ‘사람의 아들’은 신이 아닙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린 유인원일 뿐입니다!

 

다 끝났다. 이 십자가의 예수가 전시되어 널리 알려지면 다른 예수상 모두를 조롱할 것이다. 토마스는 자기 이야기를 속으로 중얼거린다. 보라고. 당신이 내 아들을 데려갔으니 이제 내가 당신 아들을 데려가려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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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집을 잃은 그가 마주한 예수는 침팬지의 스케치일 뿐이었다.

 

무수한 고난을 거쳐 마주한 침팬지. 신에 반항하기 위해 뒤로 걷는 그가 마주한 건 숭고한 신이 아닌 유인원이었다. “우리는 멋대로인 동물이다. 그게 우리이고, 우리는 우리일 뿐 더 나은 무엇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진화된 유인원이지 타락한 천사가 아니라는 진실을 마주하고 만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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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꾸로 걷는 남자를 알게 된 건 2년 전, 장편 소설 창작 수업에서였다. 교수님의 단 한 마디 때문이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는 뒤로 걷는 남성이 나온다.”

 

소설을 직접 찾아 읽고 나서야 그가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는 소설의 1부로 나오는 인물임을 알았다. 물론 2부나 3부의 인물 및 서사 역시 비슷한 연결고리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 나선다.

 

그들이 찾는 만능의 공간,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어디에 있었을까.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는 산이 없다. 그저 언덕들 외엔, (…)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찾아 나선 높은 산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이 바란 것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있지 않았다. 한 가지를 바라보고 나선 믿음이 깨진 순간은 섬뜩하다. 허무함, 공허함, 허탈감이라는 단어로만의 설명을 뛰어넘는 감정이다.

 

누가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라고 했을까. 소설 속 문장을 인용하자면 인간은 “진화된 유인원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믿음을 만들어내고 믿음이 깨졌을 때 가장 인간다워진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믿음이 깨지는 순간을 포착해내었기에 우리는 그 지점에서 섬뜩함을 느낀다.

 

그러나 섬뜩함의 재현에서 감상이 끝났다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에 묘미는 각 부의 마지막 장면이다.

 

1부는 신부가 낚시 도구를 바닥에 던지고 울부짖는 토마스에게 달려갔고, 2부에서는 멜루 부인이 몸을 돌려 닥터 로조라의 방으로 향했고, 3부에서는 오도가 코뿔소가 있는 방향으로 내달리며 소설이 끝난다. 그들은 모두 어느 방향으로 향한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단언할 수 없다. 미묘한 모호함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결말을 상상해낸다.

 

결국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섬뜩함을 다시 ‘이야기’ 형태로 만들어내 관통하면서 우리를 전율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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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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