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간을 거슬러 서로를 마주하다 - 복서와 소년

공감과 연대의 가능성
글 입력 2021.12.0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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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목소리는 어디에


 

20대인 나는 30대가 되는 게 두려웠다. 그러다 최근에 30대의 목소리로 30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점점 30대 내 삶이 진심으로 기대됐다. 정신적, 물질적 여유와 거기서 오는 안정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40대 이후부터의 내 삶은 아직 막연하고, 두렵다. 전혀 그려지지 않을 뿐더러, 나는 40대 이상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접하지 못한다.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결혼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넘어, 다른 삶에 대한 기대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은 접할 기회가 부족하다.

 

동시에 생각한다. 늙는다는 것을 나는 왜 '삭제'의 상징처럼 여기나. 신체의 건강함을 잃는다고 하여 목소리까지 잃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에게 노인의 이미지는 전형성에 갇혀 있고, 그건 노인을 다양하게 인식할 수많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는 의미다.

 

나는 그래서 노인이 주인공인 컨텐츠를 찾아 헤맨다. 그런 작품은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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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애 감독의 영화 <69세>에 등장하는 심효정(예수정 분) 할머니는 69세다. 그녀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29세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하지만 그녀를 믿어주는 사람은 동거 중인 동인 뿐이고, 경찰과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치매 환자로 매도한다.

 

효정 할머니의 삶은 전형적이지 않았다. 자녀가 둘쯤 있고, 그 자녀들이 또 아이를 낳아 손자, 손녀가 있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가족주의적인 할머니가 아니었다. 효정은 남동인(기주봉 분)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둘은 연애하는 사이가 아니지만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보살피고, 일상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간다.

 

영화는 69세 효정 할머니만을 집요하게 쫓는다. 효정 할머니의 영화 속에서 하는 선택들, 그 모든 발걸음과 동인 할아버지와의 관계 등을 보며 나는 효정 할머니의 면면을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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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폴리 감독의 작품 <어웨이 프롬 허>는 노부부의 사랑을 담은 영화다. 아내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요양원에 입원했는데, 기억을 잃은 아내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를 지켜보는 남편은 아내를 남편에게 보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결심하는 과정을 그린다.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들의 일상을 쫓을 수 있는 작품들이 부족한 현실이다. 무지는 혐오로 나아갈 수 있기에 경계하며 노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의식적으로 많이 관람한다.

 

 

 

어떤 만남, 어떤 관계


 

연극<복서와 소년>은 학생과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풀어가는 이야기라고 하여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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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외곽 허름한 요양원. 억울한 누명으로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어, 사회봉사 활동을 명 받은 고등학생 셔틀이 가장 안쪽 구석 독방에 페인트칠 봉사를 하러 온다. 독방에서 생활하는 이는 파킨슨 환자 행세를 하는 왕년의 복싱 세계 챔피언 붉은 사자. 서로의 존재가 불편하고 불쾌한 두 사람은 작은 일에도 사사건건 대립하며 날을 세운다. 어느 날, 붉은 사자가 복싱 챔피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셔틀은, 진짜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붉은 사자에게 복싱을 알려달라 부탁하고, 이에 붉은 사자는 셔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는데...... - 시놉시스

 

<복서와 소년>은 셔틀과 붉은 사자의 우정을 다룬다. 반항심이 넘치는 10대와 노인의 연대와 교감은 (연극이니까 훈훈한 결말일 거라 추측하지만)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조부모와도 제대로 소통할 수 없는 10대와 20대는 널렸다. 그러나 '가족'으로 묶인 관계가 아닐 때 오는 낯선 책임감과 완전한 타인 사이에 오가는 궁금증은 두 사람 사이의 윤활유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둘은 세대 차이도 나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소외되어 있다는 것, 아무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는 것, 다른 누구보다 진짜 친구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타인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종종 어떤 놀라운 관경을 목격할 때면 숙연해진다. 내 믿음의 오류를 마주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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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 <아들>은 소년원에서 소년들을 가르치는 올리비에가 5년 전 자신의 아들을 죽인 열여섯 소년 프랜시스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올리비에는 끝내 프랜시스에게 복수를 하지 못한다. 아니, 복수를 하지 않는다. 영화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올리비에가 프랜시스에게 분노하지만 모든 걸 이해하고, 심지어 더 나아가 그와 교감한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올리비에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그 어떤 사람과도 마음이 통할 수 있구나. 사람에 대한 믿음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게 된다.

 

연극 <복서와 소년>을 관람하면서도 소통의 가능성을 보았다. 셔틀과 붉은 사자는 운명적으로 잘 맞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저 고립감과 외로움,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 정도의 공통점만으로 서로는 서로를 보듬을 수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다 그 정도 공통점은 있다. 그러니까 어떤 공감과 연대는 운명적인 게 아니라 당연할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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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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