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 구경 해보실래요? [공간]

장날의 풍경
글 입력 2021.12.0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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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부꾸미가 먹고 싶었다. 수수부꾸미는 찹쌀가루와 찰수수 가루를 익반죽(뜨거운 물로 반죽하는 것)한 후 녹두나 팥 등의 소를 넣어 기름에 지진 떡이다. 날씨가 추워 질수록 수수부꾸미의 뜨끈하고 쫄깃한 맛이 자꾸만 생각났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수수부꾸미가 먹고 싶다 토로했고, 우리는 곧바로 수수부꾸미를 찾아 '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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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장'은 5일마다 열리는 5일 장이다. 매달 5와 0으로 끝나는 날짜마다 온갖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물건을 사고판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 날, 한 시에 모여든다. 특별히 누가 모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제 자리를 찾아 모여드는 사람들이 무척 신기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장에 갈 때면 개천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파라솔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이 마치 놀이동산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어서 장에 가는 일이 더욱 설렜던 것 같다.

 

그뿐만 아니다. 여기저기서 물건을 파는 소리, 흥겨운 트로트 음악 소리, 엿장수의 가위 소리, 뻥튀기가 튀겨지는 소리 같은 것들이 뒤엉켜서 더욱 별세계처럼 느껴지곤 했다. 게다가 구경할 건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엄마 손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쫓아다닌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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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장날에 대한 여러 가지 기억이 많지만, 가장 재밌었던 기억은 바로 교환학생 친구와 함께 방문했었던 기억이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시골 학교와 도시 학교 간의 교류를 위해서 일주일간 서로의 학교를 체험해 보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친구와 서울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숙식 및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게 무척 긴장되고 걱정됐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와 매칭됐던 친구는 나를 세심하게 잘 챙겨주었다. 그래서 나도 그 친구가 시골에 오면 고마움을 담아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다. 어떤 게 좋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고민한 끝에 서울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장 구경을 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함께 장에 가던 날, 다행히 친구는 장 구경을 무척이나 좋아해 줬다. 즉석에서 튀긴 꽈배기와 찹쌀도넛도 사 먹고, 부모님께 선물할 강정도 사고, 귀여운 강아지도 구경하면서 우리는 손을 꼭 붙든 채 시장 여기저기를 누볐다. 모든 게 다 신기하던 시절이라 장에서 물건 하나를 사는 것도 너무 즐거웠다.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가 참 싱그러웠다. 아마 그래서 튀김 장사 아저씨는 우리에게 꽈배기를 하나씩 덤으로 주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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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추억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방문한 장은 여전히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우스운 건 아직 몇 발자국 움직이지 않은 것 같은데 내 손에는 이미 엄마가 들려준 검은 봉지가 잔뜩 있다는 것이었다. 괜스레 기분 좋은 무게감에 열심히 반찬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엄마를 따라서 나도 더 분주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수수부꾸미가 보이지 않았다. 짐작건대 코로나의 영향으로 먹거리를 파는 장사가 많이 없어진 듯했다. 너무 아쉬웠다. 잔뜩 기대했던 탓일까, 아쉬움을 아무리 감추려 해봐도 평소와는 다르게 잘 안 되었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시무룩해 진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는 나를 데리고 떡을 파는 가판대로 향했다.


'얼마에요?' 엄마는 인절미값을 물었다. 아주머니는 갓 만든 떡을 솜씨 좋게 잘라내며 작은 건 삼천 원, 큰 건 오천 원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인절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엄마는 수수부꾸미 대신 인절미를 사주려고 한 것이다.

 

잠시 고민하는 척했지만, 사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내 눈앞에서 바로 만들어지는 인절미를 보고 있는데 무슨 고민이 더 필요할까. 금세 내 손에는 검은 봉지가 하나 더 늘어났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갓 만든 인절미만큼이나 따뜻하고 말랑말랑해진 내 마음도 함께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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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나는 인절미를 썰어내던 아주머니의 솜씨에 대해서 한 번 더 이야기했다.

 

만약 그 자리에서 아주머니가 직접 인절미를 썰고 있지 않았다면, 아무리 내가 인절미를 좋아한다고 해도 선뜻 사지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둘 다 아주머니의 생동감 있는 손놀림에 홀린 게 분명하다. 하지만 정말 그렇대도 억울하거나 분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 숨 쉬는 공간'

 

곰곰이 생각할수록 그게 바로 장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크고 넓은 공간에 물건만 가지런히 정리된 마트와는 다른, 조금은 투박하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풍경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여유와 정이 넘치는 그런 풍경이 말이다.


그날 저녁, 식탁을 가득 채운 반찬들을 보며 각각의 재료를 팔던 얼굴들을 떠올렸다. 그 얼굴들을 다음 장에 또 만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5일마다 만나자는 무언의 약속이 존재한다. 그 약속만 잊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모습이 변해도 우리를 만나게 해 줄 약속이 있다는 게 내심 한없는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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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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