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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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영화로 각색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에 가깝다. 원작의 이야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각색하면서 삭제되는 부분도 많고 배우의 역량에 따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려령 작가님의 ‘우아한 거짓말’ 원작의 동명 영화인 ‘우아한 거짓말’을 보면서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각색도 적절히 잘 이루어졌다.
왕따 피해자들은 생존자들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 역시도 왕따를 당했던 경험이 있고,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아직도 이따금 나를 괴롭히곤 한다. 내가 조금 더 잘했다면 왕따를 당하지 않았을까.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었다면 왕따를 당하지 않았을까. 나는 줄곧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는 물어뜯을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고 그게 나였던 것이다. 천지의 경우도 그러했다. 화연에게는, 그 아이들에게는 다만 그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다.
천지가 단지 나약해서 그런 결말을 맞이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천지는 절벽 위에서 생사를 건 싸움을 하고 있었고, 그런 면에서 천지는 아주 강인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누군가가 등을 떠밀었을 뿐이다.
나 역시도 벼랑에 매달려있던 적이 있다. 내가 손을 놓으면 끝나는 거였다. 손을 놓지 않은 이유는 겁이 나서였다. 내가 죽는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은 다른 타겟을 찾을 것이고 나는 잊힐 것이다. 그런 생각에 죽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살아남았다.
천지의 엄마는 천지의 일로 사과하는 화연의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맞다. 용서를 빌 천지는 더는 이 세상에 없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왕따 가해자나 방관자가 있다면 늦지 않게 용서를 구했으면 한다. 사과는 늦지 않았을까 싶을 때가 가장 이른 때라고 생각한다. 용서를 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정혜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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