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도서]

글 입력 2021.11.18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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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예술 작품이고
이러한 예술 작품과 일러스트는 현대 미술의 또 다른 예술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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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강동아트센터에서 기획한 <볼로냐 그림책 일러스트 특별전>을 관람했었다. 그곳에서 유독 눈이 가는 작품이 있었는데, 한국의 이수지 일러스트 작가의 결과물이었다. <파도야 놀자> 작품은 여름날 한 소녀가 해변에서 행복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엄마가 지켜보는 시선으로 표현되었다. 소녀는 단단한 땅과 수중세계의 경계를 넘는 것에 대한 공포로 바다에 다가서는 것을 주저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모아나가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시선으로 바다를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직도 그의 작품들과 감성을 잊지 못했었는데,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에서 이수지 작가를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어 매우 반가웠다. 이 책은 동화 속 글이 아닌 그림에 초점을 두어 여러 그림책 작가들의 서사와 에너지를 담았다. 특히 그들이 체념하지 않고 낙관하는 법, 파괴하지 않고 살려내는 창조적 에너지의 시작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저 그림에 그치지 않고 작가들의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흥미롭다. 그동안 누구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준비하여 다시금 그림책 작가들의 가슴을 번쩍이게 만들어준 저자와, 그들의 삶의 궤적을 카메라에 온전히 담은 사진작가의 노력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책을 펼치면 총 10명의 그림책 작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자신만의 세계와 돌파하는 힘에 대해 읽다 보면 어느새 굳어버린 나의 고정관념과 습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하다.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만들어온 작가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이 어떻게 작품을 제작해왔는지 생각하게 한다.

 

 

 

소윤경: 의문문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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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경: 의문문의 쓸모

 

 

대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을 시도하는 작가이다. ‘마땅히, 당연히, 누구나, 반드시’와 같은 당위의 말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 말이다. 관습적 기대에 불응할 줄 아는 태도를 존중하는 듯 보인다.

 

 
작가가 자기 눈으로 사물을 본 결과를 그려내는 그림, 고유한 시선이 전해지는 그림을 아이들이 더 많이 보았으면 해요.
 

 

이 작가의 인터뷰에는 도식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식을 취한다는 건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말한 부분이다. 굳이 에너지를 들여가며 대상을 바라보고 새로이 인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작가는 도식화의 문제점을 언급하며 자신의 창작 세계를 소개한다. 대상화된 표현이 너무 많이 노출되면 현실 인식이 왜곡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호랑이의 악한 부분만 묘사되어 비호감 캐릭터로 자리 잡거나, 토끼와 개 고양이의 영리한 부분만을 노출시켜 호감 가는 외양으로 도식화되어 있는 것을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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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경, <콤비> ⓒ디자인정글

 

 
소윤경 작가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그림은 바로 이런 도식을 배반하는 그림이다. 어린이는 단절된 특수한 존재가 아닌 본질적으로 어른과 같은 인간이라고 칭한 것도 놀랍다.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서만 갇혀 사는 아이들? 이 틀을 깨부순 작가의 말이 맞다. 아이들은 이미 현실을 잘 알고 있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속 아동문학 작가인 여주인공이 아이에게 한 대사가 소윤경 작가의 창작 세계를 뒷받침한다.

 

“공주는 무조건 착하고 예쁘다고 누가 그래?”

 

거부당할까 두려워서 자기 생각을 표현 못 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작가의 말은 내 인생을 돌아볼 수 있게 했다. 거절의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지 말라는 것. 그리고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과 이유 없이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는 점. 누군가가 나의 무언가를 거부하거나 탐탁지 않아 해도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알겠습니다. 받아줄 사람도 있으니 저는 괜찮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것.

 

나는 부정적인 경험을 두려워하는 편이다. 하지만 소윤경 작가의 ‘돌파하는 힘’은 내가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인지, 사실 누구보다도 약하지 않은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자신의 직감을 선택하는 용기를 북돋아준 소윤경 작가였다.

 

 


이수지: 놀이가 태도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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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놀이가 태도가 될 때

 

 
놀이가 품은 창조적 힘을 잘 아는 작가이다.

 
경계 3부작으로 불리는 <거울 속으로>, <파도야>, <그림자놀이>는 아이가 서서히 놀이에 빠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놀이란, 시도하고 탐색하며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는 돌파하는 힘이 놀이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어디에서든 좋은 점, 멋있는 점, 배울 점을 찾으려는 태도를 가지면 매 순간 새로운 감동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어렸을 때 놀이를 하면서 “나도 해볼래, 다시 해볼래”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놀이는 다음 시도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작가는 작업을 구상할 때도 늘 노는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실제 그의 작품을 보면, 작가가 진짜 신나게 작업했다는 것이 한껏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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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파도야> ⓒ강동아트센터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은 유독 글이 적다. 그림책은 농밀한 감정이나 서사를 함축해서 단순하고 쉽게 전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굳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선을 그려낼 수 있으면 감정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간결한 선이 대부분이다. 다만 단순함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는지가 보인다. 특히 애니메이션화된 <파도야>를 보면 불그스레한 뺨의 아이의 천진난만함에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서 큰일이라는 이수지 작가의 ‘돌파하는 힘’은 시도하는 용기와 무엇을 하기로 작정한 그 순간이었다. 항상 호기심이 가득하고 끌림을 감당하기 어려워 더욱더 다가서는 작가의 태도가 마음에 남는다. 따분할 것만 같은 반복적인 일을 이제 막 그 일을 시작한 사람처럼 여전히 새록새록한 시선을 바라보고, 감탄하고, 설레한다는 점이 너무나 신기했다. 그리고 배울 점이 많아 책갈피를 매어둔 부분이 많다. 결국 감탄하려고 작정한 사람,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많은 사람은 닳고 닳은 세상에서도 기어코 신선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같다. 한계를 정해두지 않고 모든 것을 즐기겠다는 그 각오가 너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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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속 10명의 그림책 작가들은 좌절, 실망, 모욕, 상실, 상처가 필연적인 세상에서 그럼에도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오늘도 작가들은  익숙한 단어에 담긴 무수한 의미를 그저 한 장의 그림에 담기 위해 수없이 그릴 것이다.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정의를 무너뜨리는 순간이 많았다. 애초에 무엇을 단정 짓는 것처럼 큰 오류를 자주 저지르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약간의 서늘함과 함께 글과 그림의 모순을 담은 소윤경 작가는 무한한 이야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정된 이야기가 아닌 다른 버전의 이야기도 있을 거라고.

 

이수지 작가의 ‘돌파’는 원하는 결말을 방해하는 장애물 앞에서 탐색하고 시도하여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었다. 난관을 만나도 좌절하지 않고 바라는 마음을 유지한다면, 결국 해결책을 발견하여 더 넓은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음 시도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법과 다가올 다음번을 기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림책은 무한의 상상을 하게 한다. 물론 회화와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지만 예술의 범위 안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다 최근 재평가되고 있다. 그 세계는, 여리고 느린 존재와 속도를 맞출 줄 알았으며 작고 사소한 숨결에 감탄할 줄 알았다. 그리고 우리가, 내가 잃어버린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가 꿈꾸는 평화로운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자꾸만 생각하게 한다.

 

강인하고 담대한 이야기를 품었던 그림책의 진정한 모습이 널리 먼 곳까지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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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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