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프지만 아름다웠던 우리의 시절에게 [도서]

그 시절 우리에게 위로를 전하며
글 입력 2021.11.11 20:4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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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고치면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오래도록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 ‘새로 쓴 작가의 말’ 중에서

 

 

오래도록 빠져나올 수 없었다.


책을 덮은 후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늘 깊은 여운에 허우적대기 마련인데, 유난히 오랫동안 유영했다.


인물들은 놀라우리만치 선명했다. 이야기의 중심인 이 여섯 명의 파주 친구들이 꼭 나의 유년 시절에 살아 숨 쉬며 머물러있을 것 같았다.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친구들인데 이야기를 읽는 동안은 존재했다. 분명히 존재했기에, 그들의 흩어짐은 내게도 분명한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
 
주연, 송이, 수미, 찬겸, 민웅, 그리고 ‘나’.


‘나’의 시선으로,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야기의 흐름은 서른을 준비하며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현재와 십 대 시절의 과거를 오간다.

 
뿔뿔이 흩어진 현재와 달리, 그 당시 유난히 삭막했던 파주의 땅에서 이 여섯 명은 유년 시절을 함께 보냈다.
 
‘파주.’ 대도시의 아름다운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변두리. 안개가 걷히면 숨김없이 드러나는 야생의 자연 풍경은 이내 건조하기까지 하다. 건조한 곳에서 풍기는 사람 냄새는 유난히 마음을 촉촉하게 만든다. 그들이 더욱 돈독한 우정으로 엮일 수 있었던 이유다.

그들은 신도시에 위치한 학교에 가기 위해 ‘한 시간에 한대씩’ 오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2번 버스에 늘 함께 올라탔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인도에서 파주로 이사 와 뒤늦게 ‘2번 버스 멤버’에 합류한 주연, 늘 그녀만의 방식으로 어딘가 탁월했던 송이, 안온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녀대로 솔직한 감정을 지녔던 수미, 그들 중에선 제일 공부를 잘했던 찬겸, 그리고 그 무렵 그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민웅.
 
그들은 각자 다른 존재 방식으로 맞물리며 같은 시절을 지난다.
 
 

얼얼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때 그 모든 감정들을 제때 소화해냈어야 했다.

그랬으면 나는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p206)



‘나’에게는 이 다섯 명을 제외한 또 다른 특별한 사람이 있다. 주연의 오빠 ‘주완’이다. ‘나’는 주연의 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주완과 친해지게 되고, 매주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함께 보며 주완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확실한 건, 우정 그 이상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주완은 어딘가 아팠다. 몸인지 마음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아마 둘 다 그랬을 것이다. 인도에서의 한 사건으로부터 생긴 후유증은 주완을 집에만 머물게 했다. 주완은 그런 스스로를 ‘맬펑션(malfunction)하다'고 말한다.
 
“난¨¨맬펑션해. 망가졌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나빠. 너한테 나쁠 거야.”(p99)
 
맬펑션인지 말풍선인지 뭔지,라며 주완의 말에 아랑곳 않고 ‘나’는 주완에게 입을 맞춘다. 입을 맞춤과 동시에 그들은 간질간질했던 마음을 구체화해 그것에 사랑이라 이름 붙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마음에 확신이 더해지면 그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된다. 어디까지 커져버릴지, 커져가다가도 이내 희미해질지 그 끝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절망스럽게도 ‘나’와 주완의 끝은 갑작스러운 주완의 죽음으로 거대한 상실이라는 절벽이었다.

 

끝까지 함께 달려가고 싶은 무엇,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표현한다면, ‘나’는 그 끝에 도달하기도 전에 주완의 손을 놓쳐버렸다. 사고였다. 갑작스러운 사고는 어찌할 새도 없이 ‘나’와 주완의 손을 끊어내어 주완을 절벽 끝으로 밀어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미의 동생 수호가 저지른 사고였고, 그날 이후로 수미는 ‘나’와 주연의 세계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에 구멍이 생겼다.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로.

 

갑작스러운 상실은 제대로 된 애도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애도 장애를 앓게 된 ‘나’는 다른 어딘가에 주완이가 계속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느 날 나는 주연이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앤트워프는 어떻대?”

“무슨 앤트워프?”

“주완이 앤트워프에 있는 거 아니야?”

“¨¨뭐?”

 
그 주연이의 “뭐?”가 너무나 억누른 “뭐?”라서 나는 나한테 이상이 생겼음을 바로 알았다. 정말로 이상했던 점은 내가 지도에서 앤트워프를 짚어낼 수 있긴커녕 그게 어느 나라에 있는 도시인지도, 어떤 풍경을 한 도시인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대체 어디서 앤트워프를 들었을까. 어디서부터 엉클어진 걸까. (p211)
 
 
주완에 대해 잘못된 망상을 하는 ‘나’에게 주연은 끊임없이 주완의 죽음을 상기시켜준다.
 


“아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그런 나이까지 가지 못했어. 오빠는 죽었어.”

“한 번만 더 말해줘.”

“오빠는 죽었어.”

“죽었구나. 알고 있어. 죽은 거 알고 있는데.” (p214)

 

 
말은 입 밖으로 꺼내어지는 순간, 구체적인 형상을 띄며 힘을 갖는다. 주연은 오빠가 죽었다며 입 밖으로 말을 뱉으면서, 그녀 또한 주완의 죽음을 계속해서 상기했을 것이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이 무해하고도 잔인한 말을 뱉어야만 했던 주연의 마음을 나는 도무지 헤아릴 수 없다.
 
나는 결국 주연과 ‘나’의 대화에서 눈물을 터트렸다.
 
이 둘의 대화는 너무나 아팠다. 아프지만 애틋했고, 애틋했기에 이겨내리라 믿음이 생기기도 했다. 사실 ‘이겨낸다’는 표현은 잔혹하다.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어찌 이겨내리. 그럼에도 그들이 주완의 죽음을 마음에 ‘잘’ 묻어 두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조심스레 응원을 보내었다.
 
 
 

못나면 못난 대로 살아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p226)


 

이 여섯 명의 친구들은 성인이 된 후 본인만의 방식으로 파주를 떠난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영위해나간다. 그렇게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기도 하고, 이따금 서로를 떠올리며 소식을 전한다. 어릴 적 용인되지 못했던 서로의 결핍과 상처들에 대해 이제는 너그럽다. 서로의 안위만을 걱정한다.
 
언젠가는 망가지고 사라질 것을 잘 알기에, 부디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기만을 바라며, 그들은 서로에게 안부를 전한다.
 
왠지 그들이 없는 파주에는 여전히 향기가 배어있을 것만 같다.

 

 

 

최유정.jpg

 

 

[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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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단풍의 계절
    • 아련한 어린 시절 추억이라기 보다는 어린시절 놓쳐버린 첫사랑이 더 가슴시린 ,,,, 글을 읽고 한참 동안 멍하게 있었네요
    • 1 0
  •  
  • 박채연
    • '어릴 적 용인되지 못했던 서로의 결핍과 상처들에 대해 이제는 너그럽다. 서로의 안위만을 걱정한다.'
      이 구절이 참 마음에 와닿네요 한 시절을 같이 공유하고 성장한 친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만으로 나또한 잘 살아낼 수 있다는 위로와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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