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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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살인죄로 우리를 교도소에 넣는 꿈을 꿨어.”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살인이라니, 누굴?”
“그게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우리가 서로를 죽였어.”
스릴러가 ‘Thrill’er인 이유
영국의 ‘셜록 홈스 시리즈’는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열었고, 『가면산장 살인사건』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비롯한 추리소설로 인지도를 쌓아 온 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국 서점의 베스트셀러 가판대에 꾸준히 이름을 올려왔다. 추리 서사의 영화나 연극도 각 매체의 특성을 활용하면서 ‘추리’ 행위로써 작품에 대한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가령 카메라 시점의 한정적인 화면 그리고 감독의 의도 하에 편집된 부분적인 정보로 관객이 직접 사건을 추적하도록 하는 것, 한 공간 안에서 연극의 배우와 관객이 동시적으로 소통하며 플롯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러하다.
탐정 인물을 중심으로 범죄나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범죄 추리 장르나 미스터리 추리 장르 외에도 다양한 갈래의 추리 장르가 있다. 오늘 소개할 소설 『킹덤』의 장르인 ‘스릴러(thriller)’ 또한 추리 장르의 한 갈래다.
기본적으로 추리 서사에는, ‘문제’에 퍼즐 조각처럼 정확히 들어맞을 ‘정답’을 찾고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최초의 목적이자 최종적인 목표임이 분명하게 드러나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미스터리 추리 장르는 이러한 목적과 목표에 충실하다. 즉 독자는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고 사건이 해결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그리하여 추리 서사를 읽는 동안 발생하는 긴장감 따위의 감정을 어느 정도는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릴러 또한 살인과 같은 범죄나 폭력을 소재로 주요하게 활용하면서 독자와 관객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범인에 대한 정보를 숨기지 않고 범행 과정이나 인물의 잔혹함을 노골적으로 묘사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긴장감은 옅어지지 않고, 오히려 공포감과 절망의 감정으로 심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남은 이야기 동안 주인공에게 닥칠 비극을 예상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우리 안의 악(惡)을 직면함으로써 느끼는 불쾌감이기도 하다. 따라서 스릴러의 독자는 두려움과 공감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현대 사회와 인간의 거울 같은 이 장르에 매료된다.
손 그림자 놀이, 손과 그림자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
소설 『킹덤』은 전 세계 40개국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의 작가 ‘요 네스뵈’의 스탠드 얼론(단독 작품) 스릴러다. 75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볼륨과 프롤로그 포함 여덟 개의 장으로 촘촘히 짜인 구조는 요 네스뵈의 필력과 노련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 ‘오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대한 이야기는, 미국과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던 동생 ‘칼 아벨 오프가르’가 형 ‘로위 칼빈 오프가르’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와 재회하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칼은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긴 땅에 호텔을 짓고 마을을 부흥시킬 것을 계획하고, 로위는 불편한 마음으로 동생의 사업에 동참한다. 로위가 칼의 귀향과 호텔 프로젝트로 마을 화제의 중심이 됨과 동시에 모종의 불안감에 휩싸였던 이유는, 형제가 오래전 묻어둔 과거에 있었다. 불길한 예감 대로, 경찰 ‘쿠르트 올센’은 아버지의 죽음을 다시 조사하고 로위는 동생의 아내 ‘섀넌’을 사랑하게 되면서 오프가르 형제의 ‘왕국’은 ‘밤이나 낮이나 매일. 똑같은 죄를 범’ 하면서 이야기는 예상되어 있던 비극으로 치달아간다.
책의 표지 디자인은 소설을 한눈에 담았다. 습한 토양에서 은밀히 몸집을 키워나가는 이끼를 닮은 배경색, ‘킹덤. 오프가르 농장은 우리 왕국이다’ 라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강인함을 일정한 굵기와 날 선 각으로 표현한 서체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오른쪽 하단의 삽화가 핵심적이다.
손 그림자 놀이는 불 꺼진 방 안에서 빛을 이용해 나비나 새를 만들던 어린 시절의 동심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림자는 ‘타인의 뒤편에 머무는 사람’ ‘얼굴 없는 사람’ 등으로 은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삽화는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렇다. 이 소설은 소중한 시절의 곁이었던 ‘두 형제’의 이야기면서, 둘 중 하나는 나머지 한 명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두 타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개가 죽은 날이었다. 나는 열여섯, 칼은 열다섯.’ 으로 시작하는 프롤로그는 중요한 복선이 된다. 칼은 사냥 중 뜻하지 않게 아빠가 아끼는 개를 총으로 쏘게 되고, 죽어가는 개의 목숨을 선뜻 끊지 못하는 동생을 대신해 로위는 개를 죽인다. 아빠는 개의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개를 위해 어려운 결정을 행한 형제가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우린 가족이다. 우리가 믿을 건 가족뿐이야. 친구, 애인, 이웃, 이 지방 사람들, 국가. 그건 모두 환상이야. 정말로 중요한 때가 오면 양초 한 자루 값어치도 안 된다. 그때는 그들을 상대로 우리가 뭉쳐야 해, 로위. 다른 모든 사람 앞에서 가족이 뭉쳐야 한다고. 알았지?”’ 라며 가족의 결속을 강조한다. 피로 물든 프롤로그의 끝에 파고드는 ‘가족’과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불편하고 또 섬뜩하기까지 한 감정을 불러낸다.
『킹덤』의 저자 요 네스뵈는 이전 한 인터뷰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인생의 목표는 악(惡)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출판사 서평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당신은 무엇까지 할 수 있습니까?”
『킹덤』은 강한 유대와 결속을 가진 가족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아름다울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요 네스뵈이기 때문이다. 출간 전 진행한 인터뷰에서 요 네스뵈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과 범죄야말로 이 세상에서 쓸 가치가 있는 두 가지이다. 물론 새 책에는 둘 다 있을 것이다.” 가장 잔혹하고 폭력적인 일들은 대개 가족 내에서 혹은 가족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법이다. 혈연이라는 끊어낼 수 없는 인연 안에서 사랑은 범죄를, 범죄는 사랑을 낳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껏 수많은 작가들이 범죄소설에서 다뤄온 단골 소재이지만 독자는 알고 있다. 이 이야기가 평범할 리 없다는 것을. 역시 작가가 요 네스뵈이기 때문이다. ‘벽돌책’도 한달음에 읽어치우게 하는 필력도 필력이지만, 기존 작품과 궤를 달리하는 독특한 설정들은 작가의 오랜 팬들마저 여러 번 놀라게 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는 정의가 승리하지 않는다.
오슬로 경찰청 형사인 해리 홀레가 등장하는 시리즈는 물론 스탠드얼론(단독 작품)에서도 주로 오슬로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치던 작가 요 네스뵈가 오지에 가까운 가상의 시골 마을 ‘오스’로 독자들을 데려가는 것부터가 새롭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땅을 지키고 싶어하는 형과 주어진 삶에 만족할 줄 모르고 한탕을 노리는 동생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반목한다. 거 대한 자연 앞에 선 형제와 살인사건.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이다. 사람이 낳은 최초의 사람인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써 최초의 살인을 저지른다. 형 로위의 중간이 름이 ‘칼빈’이고 동생 칼의 중간이름이 ‘아벨’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작가가 이 은유를 감춰 둘 마음조차 없었음을 알게 된다. 남은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든 결말은 피투성이가 되리라는 것도. 제임스 M. 케인, 짐 톰슨 등 고전 누아르의 향기가 묻어나는 블랙 유머는 ‘이럴 때 웃으면 안 되는데’ 하는 당혹감과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킹덤』은 독자에게 집요하게 묻는다. “사랑을 위해 당신은 무엇까지 할 수 있습니까?”
[윤희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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