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의는 카르멘, 하의는 샹송, 새 옷입은 오페라 - 샹송 드 오페라: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

글 입력 2021.10.1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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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 과자 선물 세트


 

당신이 외국인이고, 오늘 저녁에 판소리극을 보러 갔다고 생각해보자. 일반적인 판소리극을 기대하고 갔지만, 이번에는 특수한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판소리극뿐만 아니라 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가수의 당시 가장 유행한 대중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인 당신이 어떤 감상을 받을지 상상해볼 수 있겠는가?


다양한 대답이 나오겠지만, 나라면 연출가가 이 작품을 통해 특정 문화의 매력을 관객들에게 맛보여 주고 싶었겠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리뷰할 ‘샹송 드 오페라 <카르멘>’에도 그 감상이 이어진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국민 가수인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와 프랑스 아티스트가 남긴 위대한 오페라 중 하나인 카르멘을 함께 맛보여준다. 오페라와 프랑스 대중음악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문화를 맛보기 충분한 프로그램이라는 뜻이다.


그 나라의 언어도, 문화를 어렴풋한 인상으로만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프랑스 음악의 이방인이다.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나 비제의 카르멘은 그 위대한 명성에 따라 몇 번 들은 적 있지만(하다못해 그녀의 노래는 인셉션에서 사용되어 유명세를 치르지 않았던가), 그의 노래를 가수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은 것은 처음이고, 비제가 프랑스인이라는 것도 이번을 계기로 처음 알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도 그럴 것이다. 사실 이번 리뷰글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 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샹송을 정의하고자 하였으나, 아무리 찾아도 다른 국가나 장르의 음악과 비교해서 국내에서 수집할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에디트 피아프가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사랑받은 프랑스의 국민 가수이며, 참새 같은 작은 몸집의 그의 노래가 시적인 영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감상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사전 지식이 부족하니, 이 리뷰 역시 그냥 외국인 관광객 이상의 감상에 불과하다. 외국인 관광객의 감상에는 언제나 미지의 것에 대한 신선한 충격과 환상이 함께 섞여 있는 법이다. 하지만 어떤 문화와의 진지한 첫 만남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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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적절한 축약


 

앞서 기술했던 것처럼, ‘샹송 드 오페라’는 샹송과 오페라를 한데 모은 프로그램이다. 무대는 에디트 피아프와 카르멘 비제의 노래가 교차하면서 제시된다. 구체적으로 본 작품에서 소개되는 작품은 다음과 같다. 에디트 피아프의 곡은 장빗빛 인생, 두근두근, 사랑이 무엇이길래, 사랑의 찬가이며, 카르멘에서는 하바네라, 내 어머니에 대해 말해 주시오!,세기디야, 두근두근, 샹송 보엠, 투우사의 노래, 그대가 던져준 꽃은, 이젠 두렵지 않아요, 날 사랑한다면, 그건 당신!그건 나!이다.


노래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에디트 피아프의 대표적인 작품과 카르멘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무대는 카르멘의 내용이 전개되는 중앙과 보컬리스트와 아코디어니스트 우측 끝 공간이 있다. 보컬리스트와 아코디어니스트가 무대 우측의 가장자리에서 카르멘의 전개에 따라 샹송을 부른다.


비교적 간소화된 무대에서 카르멘은 가장 중요한 아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오케스트라 대신 솔로 피아노가, 화려한 무대장식이나 여러 등장인물 대신 가장 핵심적인 아리아를 부르는 성악가들이 남았다. 처음 방문하기 전에는 개인적으로는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는 카르멘을 피아노 하나가 재현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주 좋았다. 오히려 다른 요소 없이 성악가들의 아리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이번 `샹송 드 오페라`는 집중해야 할 것에 잘 집중하여 구성한 프로그램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오페라에서 요구되는 거대한 스케일을 줄였지만, 이 작품은 관객들의 관심을 여전히 잘 끌어들인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로 그 원인을 분석한다. 바로 `각 인물에 대한 적절한 조명`, `짧고 빠른 전환이다.


우선 이 프로그램은 각 인물에 대해 적절하게 조명한다. 적절하게 조명한다는 것은 단순히 조명을 잘 활용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물론 이 작품에서 조명은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대상을 비추었다). 먼저 이 프로그램에서 돋보이는 것은 각 인물의 의상이다. 각 등장인물의 의상은 기존 오페라에서 들인 힘만큼이나 힘을 들인 티가 났다. 비교적 간소화된 무대와 대비되어 각 인물의 캐릭터성을 부각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간소화하였지만 센스있는 무대 장치도 흥미로웠다. 전체 무대는 좌측에 의자 두 개, 우측에 붉은 벨벳을 깐 거대한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무대 바닥에는 하얀 꽃이 즐비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무대 장치가 전체 카르멘을 비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히 붉은 벨벳을 깐 거대한 의자는 카르멘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녀 자체를 의미하기보다는, 열렬한 사랑이 만든 숭배에 더 가깝다. 물론 카르멘 안에서는 돈 호세가 숭배하고 갈구하는 카르멘을 의미한다. 초라한 한쪽의 의자는 사랑 앞에서 무릎 꿇은 이들의 마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바닥을 수놓은 수많은 꽃은 카르멘이 돈 호세에게 던져준 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카르멘이 부르는 아리아 중 하나인 `하바네라`에서 나온 것처럼, 사랑은 종잡을 수 없는 집시 아이와 같아서 어느 순간 갑자기 스며들어 한 사람의 마음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꽃은 애절한 사랑을 의미하는 동시에 돈 호세가 감옥에서도 쉽게 놓지 못했던 것처럼 자기 파멸적 집착을 의미하기도 한다. 꽃들 위에서 춤추는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비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사랑의 의미를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이처럼 카르멘은 간소화되었지만 각 인물에 대한 적절한 조명을 통해 관객들의 몰입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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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뉴미디어 시대의 오페라


 

둘째, 이 작품은 아주 짧고 빠르게 각 장면을 전환한 작품이다. 현대사회에 들어서까지 꾸준히 연주되고 재현되는 오페라는 분명 위대하다. 하지만 더 짧고 직관적인 현대사회에서 `오페라 매니아`를 형성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현대사회의 문화 수용자들은 썸네일부터 전체 내용을 요약한 것을 선호한다. 그런 점에서 각 장면에 대한 통제가 가능한 새로운 영상 문화가 문학처럼 일직선 적으로 제시된 이전의 영상 문화를 대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전까지 향유되었던 문화에도 유효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전 문화가 어떻게 창작되고 수용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그냥 현상일 뿐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에 집착하다 보면 점점 전체주의에 입각한 정책 지지자와 너무 많은 공통점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문화가 새로운 시대를 맞아 변화하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다.


기존 오페라가 일직선으로 전개된다면, 이번 작품은 유튜브의 재생 바에 플레이 시간이 쪼개진 것처럼 두 주제를 빠르게 오간다. 이에 따라 이번 프로그램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오페라 프로그램`이라고 분석한다. 기존의 오페라를 좀 더 적은 비용에서 더 많은 문화애호인들을 이끌만한 잠재력이 있다는 점에서 환영받을만하다.


사실 어설프게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면, 죽도 밥도 안되는 애매한 작품이 되었을 테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한 시간 반 남짓의 시간 동안 두 주제를 오가면서도 집중력이 흩어지지는 않는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카르멘의 내용이 직관적이고, 각 아리아가 충분히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일 것이다. 카르멘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전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아리아를 배치하였다. 물론 다양한 맥락을 삭제했기 때문에, 이전에 작품을 감상하지 못했다면 다소 혼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카르멘이나 샹송 자체의 매력도 전체 프로그램의 혼란을 줄이고 관객들을 집중력을 붙들어 매는 데 유효한 영향을 미쳤다. 중간중간 보컬리스트와 아코디어니스트의 뛰어난 실력으로 끼어든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는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분명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샹송 드 오페라`가 다른 샹송 소개 프로그램보다 더 효율적으로 대중들에게 샹송을 알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은 작품 중간중간에 끼어둠으로써 가사를 이해할 수 있는 서사의 도움을 받는다. 최소한 나라는 관객은 몇 번이고 그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는가.

 

 

 

4. 나가며


 

이러한 오페라의 시도는 효과적이었고, 또 환영할만하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어색한 조합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샹송의 보컬리스트는 처음 등장하면서 `해설가` 역할을 맡았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사실 카르멘 작품 자체와 샹송이 잘 조화된 것은 아니다. 두 작품은 `사랑`, 구체적으로는 `사랑의 열광과 자기 파괴성`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였지만 각 작품이 아주 효과적으로 어우러진 것은 아니다.


일반 대중이 기대하는 `해설가` 역할을 막상 보컬리스트가 수행한 것도 아니었다. 구구절절 큐레이션을 끼워 넣는다면 그 자체에서 잃는 것도 많았겠지만, 아마 초기에 의도한 `두 작품 조화` 역할은 어느 정도 충족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는 나 역시도 보컬리스트에게 구구절절한 설명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그녀가 중간중간 한 두 마디를 얹으며 비슷한 느낌의 샹송을 부르는 것이 이번 기획의 최선 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조화는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사실 몰입을 해칠만한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는 아주 환영할만한 것이다. 최근 다양한 극장에서 고전을 새롭게 표현하는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 이번 작품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노력하여 다양한 방식의 오페라를 만날 미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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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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