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품을 보기 전에 예술가를 들여다 볼 것 – 예술가의 일 [도서]

<예술가의 일>
글 입력 2021.09.2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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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일이란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더 나아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술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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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사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주로 예술 작품을 이해하려만 했지, 정작 예술가의 인생을 깊게 알려고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고로 나에게 <예술가의 일>은 예술, 더 나아가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책이었다.

 

<예술가의 일>은 ‘한 예술가의 세계는 어떻게 탄생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당대에 저평가된 예술가들은 이제 예술 장르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어 예술사에 이름을 새겼고, 그들의 삶은 전설이 되었다. 이 책의 장점은 각각의 예술가의 인생을 길지 않은 분량으로 쉽게 읽을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의 역할은 예술가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사회와 문화, 역사와 정치를 통해 시대를 풍미했던 한 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단편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당시에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러한 작품을 창조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곱지 않은 세상의 편견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밀고 나간 예술가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해 보게 된다.

 

예술작품을 조명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나간 예술가의 일, 인생을 한 번쯤 들춰보길 바란다. 다음은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예술가의 세계이다.

 

 

 

사막에서 다시 태어난 화가, 조지아 오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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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ia O’Keeffe Museum

  

 

광활하고 광막한 사막과 사랑에 빠진 예술가가 있다. 사막 한가운데 살며 그림을 그린 그는 사막의 경이로움과 황량함을 모두 껴안았다. 미국 미술의 거인, 조지아 오키프이다.

 

그녀의 삶은 사막과 매우 닮아있었다. 어느 순간 불타올랐다가 한순간 잠잠해지는 사막처럼. 남편의 배신과 작품을 향한 세상의 시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세간의 오해, 편견, 낙인, 무시에도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오키프의 태도는 인상적이다.

 

당시 확대한 꽃을 그리는 예술가로 유명했던 오키프는 뉴멕시코 산타페에 완전히 정착하면서 두 번째 삶을 살아간다. 흙으로 지은 집에서 절제된 삶을 살면서도 예술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는 사막과 황무지의 신비가 깃든 그림을 남겼다. ‘추상환상주의’로 불리는 이 작품들은 자연의 운율이 넘실거리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누군가의 연인이 아닌, 성별을 따르지 않는, 오로지 조지아 오키프만의 작품은 우리 곁에 있다.

 

 

광활한 풍경 속에서 명상하듯 살았던 오키프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사막에 나뒹구는 동물 뼈, 모래언덕, 지평선, 산, 하늘, 달, 주변 모든 것은 주제로 삼았다. 사막과 황무지의 신비가 깃든 오키프의 그림은 어느 미술 사조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새로운 화풍이었다. 오키프에게 붙어있던 ‘스티글리츠의 연인’, ‘여성 화가’라는 수식어는 하나둘 증발했다. 오키프는 작품 그 자체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은둔자처럼 살았지만, 명성은 사막 지평선 저 너머로 뻗어나갔다.


<예술가의 일> 79쪽

 

 

 

20세기 예술의 수호자, 페기 구겐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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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ggy Guggenheim collection

  

 

페기 구겐하임은 현대미술의 기틀을 세운 위대한 예술 중독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보통 미술 컬렉터들과는 달리 자신이 사들인 그림을 독차지하지 않고 공유했다. 즉 페기가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 명문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것에 반해 유년이 어두웠던 페기는 아버지를 잃은 후 명문가 여자의 삶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서점 일을 하며 20세기 유럽 예술을 접하게 된 것이 그의 인생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페기는 미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예술적 안목을 키우고 마르셀 뒤샹을 조력자로 두어 화랑을 열기도 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굴곡점은 2차 세계대전이 아닐까 싶다. 당장 미국으로 탈출해야 했던 페기는 오히려 파리로 건너가 그림들을 사 모았다. 작품 보관을 위해 박물관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상황에서, 당장 떠나야만 했던 페기는 결국 이불보에 작품들을 싣고 미국으로 탈출한다.

 

여기서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뒷이야기는 따로 있다. 페기는 유럽의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예술가 망명 작전에도 참여하고 성공시켰다. 대표적인 인물은 마르크 샤갈이다. 미국에 돌아온 그녀는 유럽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그 와중에 예술가 발굴을 위한 전시를 열어 잭슨 폴록을 발견하기도 했다.

 

페기 구겐하임은 전쟁이라는 불구덩이에서 인류의 보물을 지켜내고 대중과 공유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술을 돈벌이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페기가 예술사에서 이룬 업적은 복잡한 사생활에 덮여 과소평가되고 있다. 우리에게 피카소, 몬드리안, 폴록, 뒤샹, 칸딘스키의 이름을 알려준 그녀의 업적이 과연 과소평가될 만한 것일까?


 

그의 삶을 훑는 건 20세기 미술 지형도를 그리는 일이다.

 

<예술가의 일> 200쪽

 

 

 

걷고, 걷고, 또 걷는 인간들, 알베르토 자코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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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gosian

 

 

<걸어가는 사람> 이 조각은 뼈만 남은 인간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서있기도 버거워 보이는 이 인간은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묵묵히 걷는다.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 영향을 받은 자코메티는 가까운 사람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초현실주의에 오래 안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약한 인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죽음’에 대해 심오한 감정을 가지며 환상적인 세계와 멀어졌다.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그는 앙상한 인간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리키는 사람>은 세로 길이가 1.8미터에 달하는 인간 청동상이다. 마치 나뭇가지에 살점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모양새로, 고초를 겪은 전쟁 포로처럼 삐쩍 말랐다. 금방 무너질 것 같지만 나약해 보이지 않는다. 어떠한 확신과 결의에 차 있기 때문이다.

 

자코메티는 자신의 인생을 실패작이라 생각한 것 같다. 수도 없이 작품을 부숴버리고, 성공했다고 표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불안, 고독, 소외, 외로움, 고통이 결국 인간의 본질이라 여긴다. 인간을 완벽히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의 인생이 완벽한 실패작이라고 표현하기엔 그가 남긴 작품의 가치가 너무나 높다. 그냥 그에겐 나쁜 실패와 나은 실패만 있었을 뿐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예술가의 일> 3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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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일>은 시대와 장소, 그리고 장르에 따라 예술가를 분리하지 않았다. 예술가들은 장르를 넘어 다른 세상을 꿈꾸고, 우리는 그들의 인생을 통해 치열한 예술 정신과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우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공통점이라 하면 편견을 짊어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의 순수이성을 짓밟는 행동이라 생각하지만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장르를 깨부수고, 묵묵히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고, 암울한 상황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들에 그만큼 쏟아지는 관심이 다양하고도 광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예술가들이 어떤 일을, 어떠한 마음으로 하였는지 예술가의 삶부터 먼저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의 이름은 영원하고,
작품은 여전히 강렬하며,
그들의 삶은 전설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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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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