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요리, 자신을 돌보는 일의 시작 [음식]

글 입력 2021.09.2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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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 요리를 시작하다


 

작년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를 ‘시작’했다고 말하니 꽤 거창해 보이지만, 라면이나 달걀프라이 정도를 제외한 요리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주방이 없는 타지의 기숙사에서 대학 4년을 보내고, 자취 경험이 따로 없던 나는 집에 오면 엄마가 해주는 밥만 맛있게 먹었지, 따로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던 생활이었다.


작년 4월, 처음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서 집안 살림을 전적으로 내가 맡게 되었다. 집이라 부르긴 어려운 방이었지만, 청소와 빨래, 그리고 요리까지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청소와 빨래는 그래도 이전에 종종 해 와서 익숙했지만, 요리는 처음이었다.

 

기숙사 생활 동안 사 먹는 음식에 질렸던 나는 직접 해 먹는 음식에 대한 의욕은 있었지만, 방법도 경험도 모르고 없었던 나는 간단한 요리부터 시도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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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든 요리, 감자조림 -

 

 

나는 내가 하는 요리가 맛이 ‘없을’ 줄 알았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어렸을 때 본 만화처럼 요리를 태워 연기가 피어나고, 형용할 수 없는 맛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만든 첫 요리 ‘감자조림’은 맛이 제법이었다. 인덕션에서는 감자가 늦게 익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적당히 달달하고 짭조롬한, 맛있는 (그리고 살짝 설익은) 감자조림이었다.

 

 

 

‘내 이름’표 요리가 생기다


 

감자조림에 이어 몇 간단 요리를 성공시킨 나는 이전보다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식료품 물가를 알게 되고, 어떤 가게의 어떤 상품이 더 싼지도, 그리고 계절 채소를 요리하는 재미도 알게 되었다. 휴대폰 메모에는 어느새 내가 성공시킨 요리 레시피들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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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해 먹는 생토마토로 만든 에그인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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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스까지 만든 돼지 목살 스테이크 -

 

 

한 끼를 떼우는 것이 아닌, 간단한 요리라도 맛있고 건강하게 요리해보려 노력했다.

 

물론 매 끼니마다 정성을 다 한 식사를 한 건 아니었지만, 식사의 밸런스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생토마토 에그인헬, 목살 스테이크, 무수분 토마토 카레, 깐풍 두부 덮밥…. 요리할 수 있는 메뉴도 점점 늘었다.


처음에는 레시피의 정량대로만 요리했지만, 요리 환경이나 기구,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맛에 따라 차이를 두며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주변인들로부터 간을 잘 맞춘다는 극찬(!)을 받으며 ‘간지은’이라는 별명도 얻었다.(하하)

 

 


요리, 자신을 돌보는 일의 시작


 

취업 준비생의 신분으로 첫 자취를 시작했던 나는, 당시 많이 지쳐있었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계속되는 고루한 취업 준비로, 끝없는 내일이 두려웠다.

 

불안정함과 고루함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반복되는 힘든 일상이 싫었고, 그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녹록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고, 아무래도 힘겨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시작한 요리는 일상 속의 새로움이 되었다. 준비와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 노력을 들여 적절한 결과를 만든다는 것은 새로움을 넘어 크고 작은 힘이 되기도 했다. 요리에 조금씩 재미를 붙이면서, 주로 해 먹는 요리들도 생겼다. 집에 온 친구들에게도 요리를 해주며, 요리의 또 다른 즐거움도 힘껏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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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은 아쉬웠던 닭갈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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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이 좋아했던 마라샹궈 -

 

 

요리를 거듭하고, 운동을 조금씩 시작하며 이 일상의 행위가 내 자신을 돌보는 일의 시작임을 알았다.

 

건강하고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다. 섭취는 곧 힘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혼자 해 먹는 건강한 요리에 대해 고민하고, 운동으로 조금씩 체력을 기르며, 나는 일상을 버티는 힘을 길렀다.


그렇게 요리를 시도하고, 단계를 거치고, 맛있고 건강한 결과물을 내는 것은 착실히 내게 쌓여 힘이 되고 있었다. 고루하고 불안한 생활 안에서 꾸준한 요리, 운동, 그리고 다른 할 일을 지속하며 그 일상을 거듭하는 것이 결국에는 그 생활을 벗어나는 길이었고, 나는 시험과 면접 절차를 통과할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요리를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야만 한다. 요리는 결국 나를 돌보는 일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나의 건강한 반복이 나의 일상을 만든다는 것을 잘 안다. 이 배움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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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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