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트인문학

글 입력 2021.09.2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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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의 신분으로 유럽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유럽행 비행기에 올라탄 나는 앞으로 펼쳐질 교환학생으로의 삶을 기대하였다. 당시 나를 기대하게 만든 여러 요소들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유럽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굉장한 떨림이 있었던 것 같다. 유럽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경험하게 될까, 깊은 설렘에 잠들 수 없었다.

 

유럽에서 보고 싶은 많은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 제일은 르네 마그리트였다. 마그리트,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 나는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벨기에를 방문했다. 오로지 그를 만나기 위해서. 마그리트가 그려낸 환상적인 세계 속에서 나는 황홀경에 빠졌었다. 현실로 돌아오기 싫어 몇 번을 발걸음을 돌렸는지 모른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르네 마그리트라는 사람이 전부였다. 그가 미술사의 흐름 속 어디에 위치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초현실주의'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마그리트 이전에도, 현대미술이 가지는 바이브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들을 관람해오고 있었다. 이론은 전무한 채로 그저 좋아서, 좋아서 작품들을 찾곤 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던데, 그래서인지 수많은 작품들을 감상하면서도 그들을 굉장히 표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좋은데 답답한 기분. 그 미묘한 답답함이 나는 너무 불편했다.

 

*

 

결론부터 말하려 한다. 책 <아트인문학>은 이런 나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긁어준 책이었다. 마치 단단한 나무로 만든 효자손처럼, 책은 현대미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새로운 미술 사조가 태동한 시기부터, 그것이 전개된 일련의 과정을 정렬하여 보여주었다. 이론이 이렇게나 재미있는 것이었다니! 역시, 새로운 배움은 늘 짜릿한 것 같다.

 

세잔이 불러일으킨 현대미술의 태동, 그 시작에는 마티스와 피카소가 있었다. 고전미술에서 강조하던 원근법을 무시한 회화에는 색과 형태만이 남아있었다. 색에 주력한 야수주의와 형태에 주력한 입체주의, 마티스와 피카소는 각각을 대표하는 작가들이었다. 시기로 따지면 야수주의가 좀 더 앞서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고전적인 예술의 정의, 작품이란 이래야 한다는 아름다움의 정의를 뒤집어놓았다.

 

오랜 시간 예술을 지탱하던 정의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지금껏 다루지 않았던 영역을 그려내고자 하는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에 더불어 사진의 등장과 미술 시장의 변화는 그들이 더욱 공격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는데 영향을 미쳤다. 재현은 더 이상 시각 예술의 특이점이 될 수 없었다. 미술품은 하나의 투자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나아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새로운 대상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추상'이라는 단어가 탄생하였다.

 

추상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여주느냐'가 아닌, '무엇을 느끼게 하는 냐'이다. 추상주의의 계보를 잇는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추구하며 작품을 해체하였다.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이를 보여준 대표적인 화가이다. 자연의 그 어느 것도 화폭에 담는 순간, 그것은 복제물에 불과하다는 말과 함께 가장 순수한 결정체를 화폭에 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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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미르 말레비치, <절대주의 구성: 흰색 위의 흰색>, 1918, 뉴욕 현대미술관

 

 

말레비치는 흰색 캔버스 위에 흰색 사각형을 그림으로써, 자신이 추구하는 '절대주의'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미술이 나아갈 방향은 없을 것이라는 고민에 빠졌을 정도로, 그는 이 작품의 완결성을 굳게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이 작품이, 자연의 그 어떤 것과도 연관되지 않는가? 나는 감히 위 그림을 마주하고 무언가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는 토론에 참여할 관람객들을 상상할 수 있다. 인간의 무의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우리는 또다시 답이 없는 문제에서도 나름의 답을 찾고자 머리를 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추상 이후에 초현실주의가 등장한 것은 아니었을까? 구상에서 벗어나려 한들, 결국 작가 역시 한 명의 사람이기에 자신의 머릿속에 담긴 구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구상으로의 회기라고도 볼 수 있으나, 그 속의 세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데페이즈망', 각각은 특이할 것이 없는 일상의 사물이지만 함께 놓으면 너무나 생경하고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관계. 초현실주의는 이 같은 사물의 배치를 통해 비현실적인 세계를 구축하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가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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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시리즈 중

 

 

그림을 보면, 하늘은 밝은데 그 아래는 어둡다. 가로등 불빛이 없다면, 거리 윗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장면이다. 하늘의 태양빛이 거리를 환하게 비춰주지 않는가? 오직 하늘만이 밝을 수는 없다. 비합리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작품 즉, 초현실주의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왜 초현실주의를 좋아하는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 보면 현실적이지 않은 것을 보면서 묘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가 나의 포인트인 것 같다. 물론 책을 통해 알게 된 초현실주의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재기 발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들이 현실이 아닌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도출한 아이디어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저 흥미로우니까!

 

책 <아트인문학>은 현대미술의 전개 과정을 굉장히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으니, 현대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이론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공책처럼 헤비하지는 않지만, 학습이 수반되는 책은 학습 의지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확실한 것은 이러한 전제조건을 충족한다면, 분명 배움이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바로 그 살아있는 증거이니! :)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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