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빌리 아일리시 - 이 2001년생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도서]

글 입력 2021.09.2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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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아일리시의 ‘you should see me in a crown’을 처음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시끄러운 거리에서 누군가의 카카오톡 프로필 뮤직을 보고 재생을 눌렀다. 처음에는 음악이 재생된 게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을 정도로 속삭이는 듯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그러다 터져 나오는 충격적인 후렴구에 황급히 음악을 멈추고, ‘이 친구는 도대체 무슨 음악을 듣는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며 이어폰을 빼 버렸더랬다. 나중에 궁금해서 찾아본 뮤직비디오는 더 도발적이었다. (거미 공포증이 있다면 보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한 힙스터 친구의 독특한 취향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던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은 중독성 있는 멜로디의 ‘bad guy’를 기점으로 한국의 거리에도 많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you should see me in a crown’은 얼마 전 아이유가 나왔던 카카오웹툰의 광고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는 미국에서는 일찌감치 인정받은 신예였고, 빌보드와 그래미를 휩쓰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2001년생 아티스트였다. 그렇게 그의 앨범 전곡을 듣게 되었고, 나는 아트인사이트에 [이런 글]을 쓸 정도로 팬이 되었다.

 


거대한 괴물의 그림자가 등장하는 무대 연출

 

 

빌리 아일리시의 노래는 처음 듣는 순간에는 불편함을 유발한다. 우리가 흔히 듣는 팝 음악의 주제, 멜로디, 창법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울과 자기혐오, 침대 밑의 괴물, 심지어는 살인까지, 피하고픈 주제를 그와 대비되는, 천사처럼 속삭이는 목소리로 노래하니 혼란이 가중된다. 뮤직비디오 역시 빌리가 단색의 배경 앞에서 오묘한 표정으로 카메라 너머 관객을 쳐다보다 점프 스케어에 가까운 반전을 선사하는 등 여러모로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이 2001년생 아티스트는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이런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만들게 되었는지,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전 세계의 청소년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거듭나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막 떠오르는 스타이자 스마트폰 시대, Z세대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가십이나 논란이 아닌 그의 삶을 조명한 진지한 글을 찾기 어려웠다. 또 번역되지 않은 인터뷰까지 하나하나 찾아보자니 너무 번거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가 직접 한 말들과 예술적 행보로 이루어진 책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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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아일리시 (I’m the Bad Guy)>는 소녀 빌리 아일리시와 아티스트 빌리 아일리시의 성장기를 보여주는 책이다. 가수로 데뷔하고 월드 스타로 성장하기까지 음악적 행보와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음악과 사람들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 에이드리언 베슬리는 BBC에서 10년간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현재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방탄소년단 EXO, 블랙핑크 등 K-Pop 아티스트에 관한 책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Ocean Eyes, 아티스트의 탄생


 

빌리 아일리시는 부모님의 교육관에 따라 LA 하이랜드에서 오빠 피니어스 오코넬과 함께 홈스쿨링을 하며 자랐다. 15살에 고등학교 과정 이수를 인정받았을 만큼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고, 홈스쿨링 커뮤니티를 통해 다양한 예술을 접하기도 했다. 빌리의 어머니로부터 작곡 수업을 들은 11살 때 이미 세련된 곡을 작곡해내 놀라움을 자아냈다고 한다.

 

빌리는 배우인 부모님을 따라 연기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는 했지만, 연기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대신 탭댄스에 빠진 후 무용수로서의 삶을 꿈꾸게 되었다. 그러나 음악이 가득한 집안에서 살아가며 음악과 연결된 끈은 여전히 잃지 않았다. 오빠가 작곡한 곡에 자신의 목소리를 얹거나 직접 작곡한 곡을 노래하기도 했다.

 

2015년, 빌리는 춤 선생님의 권유로 방구석에서 오빠와 함께 작업했던 노래를 본명인 ‘빌리 아일리시 파이럿 베어드 오코넬’을 줄인 ‘빌리 아일리시’라는 이름으로 사운드클라우드(음악 공유 플랫폼)에 올렸다. 그 노래는 며칠 만에 수천 회 재생되고, 다운로드되면서 무용수를 꿈꾸고 있던 빌리의 미래를 완전히 바꿨다.

 

마침 골반 부상으로 잠시 춤추기를 멈추었던 빌리는 당시 밴드 ‘슬라이틀리즈’로 활동하고 있던 오빠 피니어스 오코넬의 도움으로 LA 밴드 신의 매니저 루캐신과 만났다. 이후 2016년 1월에는 플래툰, 8월에는 다크룸, 11월에는 인터스코프 레코드와 계약하며 전문적으로 음반을 제작하고 작은 무대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때 빌리는 13살, 14살에 불과했다.

 

 


 

 

이후로는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 전역을 시작으로 전세계의 공연장을 누비고, 호텔에서 호텔로 이동하며 챙겨온 장비로 곡을 쓰는 날들이 이어졌다. 책을 읽으며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빌리 아일리시의 ‘레전드’ 라이브 영상 콘텐츠 추천이었다.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은 많이 들어봤지만 뮤직비디오가 아닌 라이브나 커버 영상 콘텐츠를 많이 보지는 않았는데, 라이브 영상이야말로 그의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매력과 10대 특유의 에너지를 보여준다고 느꼈다. 위는 Saturday Night Live에서 선보인 ‘Bad Guy’ 무대인데, 도저히 라이브라고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지니 꼭 봤으면 한다.

 

 

 

한 명의 천재로 가능하지는 않았다


 

‘인더스트리 플랜트’는 ‘순수하게 재능 하나만으로 성공을 거둔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은 배후에 음반사나 기획사가 있는(p.54)’ 아티스트를 지칭하는 말이다. 인터넷 플랫폼은 겉으로는 모든 창작자에게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과거보다도 더 거대한 자본의 논리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서 사실상 재능만으로 명성을 얻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빌리가 재미 삼아 플랫폼에 올린 음악이 인기를 얻어 오로지 재능만으로 평가받아 데뷔하게 된 운 좋은 천재라 생각할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빌리가 어린 나이에 탄탄한 팬층을 확보한 것에는 독보적인 목소리와 음악성이 핵심적이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그가 명성을 얻고, 큰 무대에 서고,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데는 철저한 프로듀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빌리 아일리시와 계약한 음반사, 기획사는 대중적인 트랙을 찍어내기보다 매니악하지만 빌리의 색을 보여줄 수 있는 싱글을 차례로 선보이기로 했다. 빌리를 세상의 취향에 맞추는 대신 세상이 빌리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도록 한 셈이다. 흔히 팝스타가 일단 ‘쉬운 음악’으로 성공을 거둔 후 자신의 색을 담은 음악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것과는 정반대다. 이렇게 고유한 스타일에 확신을 하고 지속해서 대중에게 어필한 결과 빌리 아일리시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춘 아티스트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빌리는 2019년 출시한 정규 1집으로 그래미 어워즈에서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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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Billboard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는 오빠 피니어스 오코넬을 빼놓을 수 없다. 빌리의 데뷔곡 ‘Ocean Eyes’를 비롯해 빌리의 많은 음악을 프로듀싱한 피니어스는 2019 그래미 어워즈에서 동생 빌리와 함께 5관왕이 되기도 했다. 그는 독자적인 팬층을 확보한 가수이면서도 카밀라 카베요, 셀레나 고메즈 등 다른 뮤지션들의 프로듀서로 깜짝 변신하며 점차 영역을 넓혀가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버라이어티 어워즈에서 ‘빌리의 오빠 이상이 됐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평생 빌리의 오빠이고 싶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을 만큼 빌리와 피니어스가 영영 떨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

 

 

 

From E-girl to Icon



 

 

내가 셀 수 없이 많은 유튜브 콘텐츠 중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는 빌리 아일리시의 ‘베니티 페어’ 인터뷰 시리즈다. 막 명성을 얻기 시작했던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10월 18일, 같은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는 인터뷰로, 10대 뮤지션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인기를 누리게 되면서 어떤 변화를 겪는지 알 수 있는 인상적인 콘텐츠다. 매년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은 점점 많아져 장을 보러 마트에 가지도 못하며, 그가 착용하는 액세서리는 더 화려해지고 고가의 제품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성공한 스타가 으레 그랬듯 빌리에게도 성공이 독이 되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작년 인터뷰를 봤다. 더군다나 빌리의 음악은 우울한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나는 그의 음악으로 치유를 받고 있었지만 정작 아티스트는 위태로운 처지에 있는 것은 아닐지 마음이 쓰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음악 덕분에 그는 전 세계 팬들의 지지와 위로를 받고 있다. 또 이제는 상처받은 청소년이 도움을 요청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책을 덮으며 아쉬웠던 점은 책이 코로나 19로 투어가 취소된 2020년 초까지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2020년, 2021년 완전히 달라진 빌리의 음악과 메시지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다. 빌리는 2020년에 예정되어 있던 월드투어로 수많은 팬을 만나는 대신 가족과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아껴주는 가까운 이들과 그들의 사랑을 기반으로 빌리는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희망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또 유명세에 뒤따르는 말에 정면으로 맞서는 작업물을 내놓기도 했다. 자신의 몸에 관한 무례한 말(Body shame)을 쏟아내던 언론과 악성 댓글 작성자들을 향해 “I don’t think I caught your name(그래서 너 이름이 뭐더라?)”이라고 쿨하게 한 마디 던지는 ‘Therefore I am’은 통쾌하다 못해 짜릿한 ‘사이다’를 선사한다. 같은 주제를 조금 더 무겁게 다루는 ‘Not My Responsibility’는 쇼트 필름으로 제작되어 종합 예술가로서 빌리 아일리시가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 보여주었다.


이 책의 영문 부제인 ‘From E-girl to Icon’에 나오는 두 단어 ‘E-girl(틱톡에서 볼 법한, 2010년대 후반 등장한 인터넷 하위문화를 향유하는 청소년)’, ‘Icon’은 그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지는 반짝스타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대중의 시선을 날카롭게 포착하면서 성장해나가는 최근 행보를 보면, 감히 빌리 아일리시의 한계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책을 통해 접한 빌리의 삶과 그의 주변에 있는 귀인들이 무엇보다도 그를 잘 지지하는 기반이 되리라 생각한다. 올해 10월 18일도 이어질 그의 '베니티 페어' 인터뷰를 기다리는 팬에게, 혹은 막 빌리 아일리시를 알아가기 시작한 리스너가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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