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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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넌 글재주가 있다.
언젠가 준비되면 가족 이야기를 하게 될 거야.
그러면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게 될 거야.”
노인이 된 노먼이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바야흐로 1993년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몬태나 주로 돌아가서 노먼 가족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노먼의 유년기를 연기하는 조셉 고든 레빗의 앳된 모습과, 노먼의 동생인 폴로 등장하는 브래드 피트의 젊은 시절을 엿보는 재미도 무척이나 쏠쏠하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아버지인 맥클레인 목사의 방식에는 자신만의 균형이 있다. 아들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대신 홈스쿨링을 통해 삶의 방식을 익히게 한다. 폴과 노먼은 오후부터 저녁 내내 뛰어놀며 자연의 섭리를 배운다.
같은 부모, 같은 교육 방식 아래 자라지만, 맥클레인 형제는 처음부터 기질이 달랐다. 순종적이고 조용한 노먼과 달리 폴은 저항적이고 자유로운 면모를 보인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노먼은 폴은 뭔가 달랐다고 말한다. 노먼이 자신의 강함을 알고 피 터지게 싸웠다면, 폴은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강인함이 표출되었다고.
모험심이 너무나도 강하게 표출되는 나머지, 그는 사건 사고에도 빠지지 않는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모두 무리라고 말리지만, 폴은 나무배를 타고 폭포를 내려가보자고 제안한다. 결국 폴의 제안에 이끌리면서도, 노먼은 폴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 형제의 다름을 지켜보면서, 나는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하고도 서글픈 감정을 느꼈다. 결국 그 다름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서 인생의 큰 행로까지 흘러갈 것 같은 예감을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플라잉 낚시’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서로 다른 형제를 하나로 강하게 연결해주는 것이 바로 낚시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낚시를 배우고, 빅블랙풋 강가에서 함께 낚시를 한다. 시간이 흘러, 어른으로 성장한 형제는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더욱 달라지게 된다.
노먼이 몬태나를 떠나서 6년 동안 대학을 다닐 동안, 폴은 고향에서 대학을 다녔다. 졸업 후 노먼은 교육자를 꿈꾸게 되고, 폴은 신문사 기자로 취직한다. 멀어진 만큼 서로 건드릴 수 없는 영역도 많아지지만, 한 가지 원칙은 지켜 나간다. 여전히 함께 낚시를 하는 것.
그러나, 낚시라는 분야 안에서도 둘은 서서히 달라진다. 노먼을 훌륭한 낚시꾼이라고 칭한다면, 폴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넘어서서,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 나가는 낚시꾼이다.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노먼은 “내가 떠나있는 동안, 동생은 예술가가 되었다고.” 회상한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그 순간 나는 명백히 깨달았다. 완벽함을 목격했다.
모든 법칙에서 벗어난 예술 작품 같았다.”
노먼의 회상만큼이나 처음에는 강가에서, 나중에는 얕은 물에서,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물살에 흠뻑 젖고 기꺼이 휩쓸리면서까지 낚시를 하는 폴의 모습은 가히 명장면이라 칭할 만하다.
하지만 인생은 예술 작품이 아니고, 예술 작품처럼 영원히 지속될 수도 없다. 노먼과 부모님은, 도박에 빠지고 빛이 쌓여가는 폴을 이해할 수 없다. 오랜만에 함께한 가족 식사에서 도박장에 가기 위해 먼저 자리를 뜨는 동생이 미웠을 것이다. 싸움을 일으키고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던 폴을 데려오면서, 동생의 위태로운 모습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의 노먼의 마음을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결국 폴은 노름장에서 싸움에 휘말렸다가, 총 개머리판에 맞아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그의 시신은 뒷골목에 버려졌고 오른손의 뼈가 완전히 부러져 있었다.
임종 전, 자신의 마지막 설교에서 맥클레인 목사가 말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서로의 다름을 알고, 그래서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계속해서 서로를 완전히 사랑했다는 점이다. 나는 서로를 보는 그들의 눈빛에서 사랑을 읽었다. 서로에게 깃들어 있는 애틋하고 애정 어린 시선들이 내게까지 닿았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이 또 많이 흘러서, 사랑했지만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남은 노먼은 그들을 추억하고 애도하며 여전히 낚시를 한다.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나는 오롯이 흘러가는 노먼의 시간을 지켜보았다. 노먼의 시간처럼, 우리의 순간들 또한 지나갔고, 지나가고 있고, 또한 지나갈 것이다. 잔잔히 흘러간 순간들은 멈추지 않고 유유히 흘러, 결국은 하나의 큰 강물로 융합될 것이다. 막을 수도 없고, 거스를 수도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인생 또한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그 순간을 기다리려 한다.
그때가 되면 노먼처럼,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겠지.
[이나경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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