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대미술 지도 펼쳐보기 : 아트인문학

김태진, 『아트인문학』, 카시오페아, 2021
글 입력 2021.09.1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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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에서 나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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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의 『아트인문학』은 말 그대로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인문학은 인간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학문인데, 이 책은 예술과 예술가를 인문학적인 차원에서 바라본다. 또 중의적으로, 문학 속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다. 책에는 문학적인 표현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책 속 예술가가 된 것처럼, 대사를 서술하고 현장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등. 예술가의 사유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저자는 ‘생성점’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현대미술이 성장하도록 물꼬를 트여준 흐름을 콕 짚는다. 현대미술의 상승 그래프 곡선에는 핵심이 되는 생성점들이 있었고, 이 점들의 사이를 잇는 경로를 “경로선”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책은 프롤로그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간결하면서도 중요한 안내를 하고 있다.


또 “여러 홈이 파인 대지의 비유”를 들어, 평면적이던 생성점을 3차원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이 비유는 많이 지나간 길에 홈이 깊이 파이듯이,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경로의 결과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홈이 깊을수록 안정적인데, 저자는 이를 ‘SKY 캐슬’이나 ‘노량진 컵밥’을 예시로 들면서 홈의 깊이와 안정성의 관계를 말한다. 고도의 경제성장은 양극화를 불러왔고, 이는 불안감을 조성하며 더 끝없는 홈을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홈 안에 깊이 있으면 바깥을 전혀 볼 수 없듯이, 개개인의 다양한 가능성은 배제된다.


그러나 홈에서 나와 자신만의 길을 걸었던 예술가들이 있다. 그러한 동기가 ‘틀 밖에서 생각하는 힘’이고, 이러한 힘을 가진 예술가들을 읽게 되면, 우리 역시 조금 더 나다워질 수 있을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으며, 1부에서는 홈에서 빠져나온 순간을, 2부에서는 세상에 펼쳐진 미술들을 다룬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에서는 중요한 생성점이 된 5명의 예술가를 소개한다. 장마다 포인트가 있어서 현대 예술의 큰 흐름을 읽기에 방향을 잡기 쉽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점과 점 사이를 매우 유연하게 엮는다. 화가들이 예전 시간에 정지되어 있지 않고, 당시의 공기와 인물의 행동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마티스부터 아브라모비치까지, 예술가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을 아울러 술술 읽다 보면, 예술가의 의도와 작품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중 1장의 줄거리만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공간의 붕괴 : 마티스의 야수주의부터 폴록의 액션페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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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모자를 쓴 여인>, 1905,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 샌 프란시스코 미술관

 

 

1장에서는 그림 속 공간이 붕괴를 이끈 예술가들을 다룬다. 그 시초는 세잔과 반 고흐, 시냐크의 영향을 받은 마티스이다. 마티스의 그림은 이전에 접한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망가진 그림 같으면서도 조화가 느껴졌다. <모자 쓴 여인> 작품 속 여인의 모자는 입체감이 느껴지지 않고, 강한 테두리로 원근감을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느낌의 작품은 사실 색감의 세심한 조화가 없으면 강렬해지기 어렵다.


그늘진 왼쪽 얼굴은 어두운 청색 계열을 사용했고 반사광에는 붉은 색채를 넣었다. 그리고 이를 분리하고자 배경에 다시 청록색을 써 안정감을 주었다. 그늘진 목 부분에도 어두운 적색 계열을 사용했고, 목 부분 뒤의 배경을 적색과 보색인 청색을 써서 인물과 공간을 분리한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리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색 조합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당시 마티스는 거북한 색채 표현으로 인해 많은 욕을 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마티스의 이름이 널리 알리게 된 계기이자 회화의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이때 미술계에서 주요 중심에 있었던 거트루드 스타인은 마티스를 눈여겨보게 되고, 마티스는 성공 가도에 오른다. 그런데 야수주의의 시대도 저물면서 입체주의가 각광을 받는다. 바로 피카소 때문이다. 피카소는 마티스의 <삶의 기쁨>을 보고 충격을 받아,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자 다짐한다. 곧 거트루드의 관심은 열심히 작품 세계를 구축하던 피카소를 향해 이동하고, 마티스를 떠나게 된다. 이러한 두 사조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당시의 라이벌 구도였던 마티스, 피카소, 브라크, 이 세 사람의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비하인드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입체주의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속되지 않았다. 현대미술로 가는 데 더 방향키를 잡은 것은 로베르 들로네의 오르피즘이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들로네는 “색채들만으로도 회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p. 60)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의 <동시창문>, 그리고 <동시대비 : 해와 달>을 보면 추상이라는 장르의 문을 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미끄럼틀처럼 형태가 없는 예술로 나아가는 데 불을 지핀다.


러시아의 카자미르 말레비치가 ‘절대주의’를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작품 <절대주의 구성 : 흰색 위의 흰색>은 회화에 남아있던 형상 마저 없어졌다. 이러한 추상의 붐 이후에 미국에서는 잭슨 폴록에 의해 색다른 장르가 펼쳐진다. 바로 액션페인팅이다. 저자는 추상은 구상의 극복을 전제로 했지만, 폴록은 아예 시작부터 구상을 의식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르다(p.84)고 서술한다. 폴록의 작품은 행위와 과정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1장에서는 5개의 생성점을 짚으며 현대미술의 흐름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책을 덮으며, 현대미술은 파괴의 연속이었지만, 이는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한 파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다이아몬드를 위해 광산을 캐고 돌을 부수는 것처럼 말이다. 값진 보석을 얻기 위해서는 생각을 부수고 앞에 있는 패러다임을 파괴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현대로 올수록 난해해지던 예술가들의 행위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통찰,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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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통찰과 사유를 기반으로 한다. 작품의 물질성을 뛰어넘어 중심이 되는 개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더 많은 사유를 확장 시켰다. 아래 저자의 말처럼 예술을 예술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예술의 영혼, 개념이다.


“예술에 몸과 영혼이 있다면 개념미술은 이 중에서 영혼을 붙들고 하는 작업이다.”(p.361)


그런데 이러한 예술적 사고는 사실 삶에도 필요하다. 일단 ‘나’를 중심에 놓고 상황을 보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러한 선택을 해야 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말이다. 많은 이들이 가는 길로 가는 길로 가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중심만 잘 잡고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예술작품의 개념처럼 자신의 삶에 중심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통찰하고 끊임없이 탐구했던 예술가들처럼 홈에서 나와 나아가게 해 줄 것이다. 서양 현대미술의 흐름을 명확하고 유하게도 설명하면서, 예술적 사고를 꿈꾸게 하는 김태진의 『아트인문학』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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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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