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을 나타내는 바니타스 정물화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9.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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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사자성어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겪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 큰 고통을 뜻한다. 이처럼 사람에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노화와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이러한 이야기를 꺼린다. 죽음은 처음에 다가올 때는 누구에게나 두렵고, 충격적이며, 거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닥쳐온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여러 이미지를 통해 이러한 죽음의 메시지를 표현하곤 했다.

 

가장 먼저 예술 분야에 죽음의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중세시대였다. 특히 14세기에서 15세기 중반, 흑사병, 대기근과 같은 재난과 재앙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경험은 사람들이 죽음에 관한 인식을 바꾸는 큰 계기가 되었다.

 

페스트로도 불리는 이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1/3가량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러한 무서운 죽음을 경험한 유럽인들로 말미암아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바니타스라는 것이 등장한다. 바니타스란 정물화의 한 장르로,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해골, 곧 시듦을 상징하는 꽃, 꺼져야만 하는 숙명을 나타내는 촛불 등을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바니타스 정물화는 관객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이는 곧 16세기 중엽 즈음 독자적인 분야로 발전하여, 17세기 초중반에는 매우 자주 그려지는 인기 장르가 되었다.

 

 

 

죽음을 나타내는 소재들


 

[크기변환]필립 드 상페뉴 바니타스 17세기.jpg

 

 

바니타스 정물화를 논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소재는 해골이다. 해골은 그 자체로 죽은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며,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를 전달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들어버릴 듯한 죽음이나 덧없음을 나타내는 바니타스의 소재는 해골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촛불이나 꽃 같은 것은, 지금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끌어당기지만 결국에는 꺼지고 시들 운명을 가지고 있다. 관객은 이를 바라볼 때 처음에는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되지만 결국 필연적으로 그것의 소멸을 생각하게 된다.

 

또, 모래시계, 거품이나 비눗방울, 싱싱한 과일과 생선 등도 이러한 메시지를 담아 쓰이던 것이다. 이것들 역시 지금은 보기에 즐겁고 아름답지만, 결국에는 끝이 다하고 사라지고 부패할 것들이다.


나아가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죽음과 소멸을 상징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외로 고가의 사치품들과 화려한 부와 권력의 대상물들 역시 등장한다. 이는 세속적인 쾌락, 명예, 권력 등을 강렬하게 나타내는데, 이런 강렬한 이미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이것들이 죽음과 함께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임을 암시한다.

 

 

[크기변환]데이비드 베일리 자화상 1651.jpg

 

 

여기 데이비드 베일리라는 작가의 자화상이 있다. 여태까지 언급한 바니타스 대상물들의 총체처럼 보이는 그의 책상에는 각종 물건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쓰러진 술잔, 금화, 진주 목걸이, 고급 샴페인, 그리고 분홍색으로 아름답게 피어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시들시들해 보이는 꽃들. 이것은 그가 현생에서 누리는 사치와 권력을 증명하는 물건들이지만, 결국 옆에 놓인 해골과 같이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들이기도 하다.

 

베일리는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확고하게 전하기 위해 작품에 아예 직설적인 장치를 설정해 놓았다. 그의 작품 오른쪽 아래 책에 끼워진 종이를 보면, 바니타스 바니타툼 옴니아 바니타스(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것은 “헛되도다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는 뜻으로서, 그가 이 작품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가 명실상부하게 드러난 것이다.

 

나아가 이 작품에서는 물건들이 어지럽게 배치되어 있고, 어떤 물건들은 뒤로 넘어가 있고 뒤섞여있다. 이러한 배치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살아가는 동안 쌓아온 속세의 업적이 결국에는 아무 것도 아니며, 죽음을 통해 뒤집혀 버린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이 역시 죽음의 덧없음과 허망함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현대의 바니타스


 

여태까지 언급한 이런 작품들은 아주 오랜 과거에만 있었을 듯하지만, 놀랍게도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담배를 사면 보이는 질병에 대한 경고문이나, 건강에 대해 경고를 던지는 캠페인 포스터 역시 넓게 보았을 때 이러한 바니타스와 유사한 효과를 유발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하지만 이렇게 죽음에 관한 경고를 받을 때, 우리는 겸허해진다. 또, 우리의 시선은 좀 더 광활한 곳을 바라보게 된다. 속세의 세계에서 빛나는 금품이나 각종 맛있고 아름다운 것들, 부귀영화와 쾌락들은 사실 한순간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위해 집착한다. 하지만 그것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느끼면 순간순간을 소중히 보내는 겸허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러니 어쩌면 진정한 행복이 시작되는 순간은 이런 사실을 깨닫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조소연 Nametag.jpg

 

 

[조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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