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에게는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여행이 있다. ② [여행]

잠에서 깨어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듯한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글 입력 2021.09.1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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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늦게까지 침대에서 꾸물대다가 부산의 향토 음식이라는 밀면을 먹으러 갔다. 밀면은 부산의 또 다른 인기 음식, 돼지국밥에 필적할 만큼이나 부산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꼽힌다고 한다. 직접 부산에 가보니 지천으로 깔린 음식점이 돼지국밥집이요, 그 다음이 밀면집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면 처돌이'라고 불리는 나는 밀면 먹을 생각에 들떴다. 가게 상호는 '광안 밀면'. 광안리 근처에 있었는데, 그야말로 근방 지리를 직관적으로 담아낸 이름이 아닌가. 광안 밀면은 다른 밀면집들과 달리 면의 색이 더 진했다. 벽에 걸린 밀면 설명문을 읽어보니 생 쑥이 들어가서 그렇다고 한다. 쑥의 맛과 향을 그대로 담아냈다고 해서 맛이 더욱 기대됐다.

 

드디어 밀면이 나왔다. 살얼음이 동동 떠 있는 밀면을 보니 입에 군침이 돌았다. 고명으로 올라간 오이와 무생채, 양념장을 살살 풀어냈다.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서 입에 넣는 순간, 매콤달콤한 맛이 나를 감쌌다. 육수와 양념장의 새콤한 조합이 입맛을 돋웠다. 그리고 차가운 육수 덕분에 밀면의 쫄깃쫄깃한 식감을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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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면을 광안리 근처에서 먹은 이유는, 광안리 바닷가를 보기 위함이었다. 푸른 바다가 멀리멀리 펼쳐졌다. 문득 고개를 쑥 내밀고 까치발로 바닷가 저 멀리 계속 내다보면 몽골인만큼이나 시력이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지만 말이다.

 

해운대와 두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하나는 대교가 보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로나 영향도 있지만 그래도 해운대에는 모래사장에서 선탠을 하거나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광안리는 해운대만큼 사람 수가 적었다. 여행객들이 우리처럼 해운대로 몰려갔나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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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에 갔다. 세계 최대 백화점이라고 들어서 얼마나 클까 궁금했다. 말 그대로였다. 으리으리했다. 신촌에 있는 현대백화점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에 비하면 아기의 발톱 때 수준이었다.

 

무계획으로 도착한 백화점에서 우리가 할 것은 딱히 없었다. 백화점 내 식당을 갈 것도 아니었고, 쇼핑을 할 것도 아니었다.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은 바로 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심심풀이 땅콩이었다. 저때 개봉한 영화가 많지 않아서 '콰이어트 플레이스 2'를 봤다. 감상평은, 음, 뭐, 아찔하고 스릴 넘쳤다.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영화를 부산 여행까지 와서 보다니 뭔가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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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으로 스시를 흡입하러 갔다. 원래 해산물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성인이 되고 어느샌가 스시가 없어서 못 먹는 사람으로 변했다. 이 음식점은 숙소 근처에 있고 평이 괜찮아서 선택했다. 서울에도 널린 게 스시집인데, 영화에 연달아 흔한 것을 부산에서 경험하니 계속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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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마지막 일정으로 칵테일바에 갔다. 붉은색 조명이 우리를 감쌌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멋들어진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심장을 뒤흔드는 힙한 팝송이 재생되었다. 조명과 분위기와 노래에 취해 사진을 마구 찍었다. 사실 처음에 사진에 붉은 조명이 정육점처럼 나오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하지만 붉은색과 자주색 그 경계에 있는 오묘한 색이 예뻤다.

 

여행에 술이 빠질 수는 없지. 나는 알쓰('알코올 쓰레기'의 줄임말.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이기에 술을 늘 자제해서 마셨다. 하지만 부산에 놀러 온 기분을 내기 위해 그날만은 술을 되는 데까지 진탕 마셔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도수 강한 술을 마실 자신이 없어서 도수가 약한 술부터 도전했다.

 

사실 여행 다녀온 지 오래되어 마신 술이 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이리쉬 카밤(Irish Carbomb)'만은 기억난다. 아이리쉬카밤은 아일랜드 흑맥주로 만든 아일랜드 폭탄주이다. 카밤(Carbomb)은 교통사고를 의미하는데, 아일랜드에서 유난히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 붙여졌다고 한다. 이 폭탄주를 마시고 음주운전을 많이 해서 이름에 카밤이 붙었나 보다.

 

아이리쉬 카밤의 재료는 아일랜드 위스키, 기네스 흑맥주, 베일리스 밀크라고 한다. 흑맥주 특유의 씁쓸한 맛에 베일리스 밀크의 달콤함이 더해져 달콤쌉쌀한 맛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위스키도 들어가서 그런지 약간 혀가 아릿한 맛도 있었다. 베일리스 밀크가 초등학생 때 과학실에서 맡았던 알코올 냄새만 날 수도 있는 아이리쉬 카밤의 중심을 딱 잡아주는 듯했다. 다시 찾아 마셔보고 싶다.


*


이로써 2박 3일간의 부산 여행이 끝났다. 두 달 정도가 흐른 지금,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됐던 일상에서 벗어났던 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나? 싶다가도, 내가 진정 여행을 갔다 온 게 맞는지 꿈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사진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는 걸 보면, 부산에 여행 갔다 온 게 맞긴 하다. 다만 성인이 되고 친구들과 처음 가는 여행이라 나에게 의미가 커서 그런 것 같다. 지금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갑자기 이 말을 하니, '꽃보다 남자'에서 '지후' 선배의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이 말대로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도시 말고 다음 여행은 풀과 나무를 만끽할 수 있는 시골로 가고 싶다. 푸른색을 보면서 눈 건강도 챙기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부산 여행에서는 바다를 눈에 담아왔으니 말이다. 다음 여행을 어디로 갈까.

 

 

- 2박 3일간의 부산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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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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