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매일 가는 미술관 - 벌거벗은 미술관 [도서]

글 입력 2021.09.0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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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갈 때면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복잡한 그림을 볼 때면 작품에 집중하기보다 그 밑에 달린 설명을 읽기 급급하다. 제목이나 설명으로 겨우 그림에 담긴 내용을 상상하고 이해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고개를 끄덕인다.

 

마음에 드는 작품 제목을 받아 적으면서도, 과연 이 작품이 내가 마음에 드는 것이 맞는지, 그저 작품 설명이나 제목에 끌려 그림을 보고 있지 않은 건 아닌지 고민한다. 시간이 빌 때마다 미술 관련 책을 읽거나,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찾아가면서도 내게 미술은 여전히 어렵다.

 

홀로 무식한 사람 같은 내가 부끄러울 무렵, 나는 <벌거벗은 미술관>에 찾아갔다.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사를 풀어내는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 안내자 양정무가 미술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고정관념을 환기하며 미술 작품을 통한 사유와 감성의 확대를 모색한 책 『벌거벗은 미술관』이 출간되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미술의 장구한 역사를 인류 문명사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미술사학자이자 '인문학의 꽃'으로 불리는 미술사를 대중화하는 데 노력해온 양정무가 오랫동안 미술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고민해오던 문제들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집요하면서도 자상하게 풀어낸다.”

 

 

 

미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착각이나 허상이다


 

최근 절대적인 미(美)의 기준이 없다거나 개성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 있다. 예컨대 흰 피부나 짙은 쌍꺼풀, 뚜렷한 이목구비를 떠올리기 쉽다.

 

<벌거벗은 미술관>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의 관념을 부순다. 그리스의 미술이 오랫동안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 것을 꼬집는다. 여전한 백인우월주의 아래의 백인종 우수성에 대한 근거로 알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은, 사실 고대 그리스 조각을 복제한 로마 석고상이 그리스의 작품으로 오해받아 순백의 대리석이 ‘미’의 기준이 된 것이다. 또한 그리스 조각 역시 아름다움 이전에 군국주의적이고 남성중심문화에서 탄생했음을 밝힌다.

 

<벌거벗은 미술관>에서 벗어던진 미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던 ‘미’가 착각 또는 허상이 되며 독자가 떠올리는 미의 기준이 다시 흔들린다. 관념이 흔들리면서 우리는 다시 ‘고전’의 의미를 묻는다. 고전 미술 작품으로 쌓아온 우리의 미감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각자의 눈으로 작품을 보고 있었는가?

 

저자는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미술 작품 아래에는 어두운 이면이 있으며, 미의 기준이 어떻게 쌓였는지 다시 더듬어가며 독자들이 그 이면에서 벗어나 미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을 다시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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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팬데믹


 

현재 코로나 19로 예술계에 타격은 엄청나다. 공연예술계는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좌석의 절반을 비워두어야 하며 미술관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예약해야만 관람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전시회 역시 점점 줄어들면서 코로나 19에 현대 미술을 어떻게 변할까.

 

인류는 팬데믹의 공포에서도 계속해서 예술을 창조했으며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현재도 새로운 가능성을, 또는 대재앙의 두려움이 함께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벌거벗은 미술관>에서는 코로나 19로 인한 미술과 과거 전염병이 크게 돌던 시대의 미술을 E.H.카의 명언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로 다룬다. 저자는 모든 역사가 현대사가 될 수 있으며, 현재 상황을 흑사병으로 고통받았던 중세 유럽 시대의 작품으로 대신 바라본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인류는 감염병의 대위기 속에서도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왔고, 이 과정에서 미술의 역할이나 의미도 재조정되었습니다. 감염병의 공포와 싸우면서 미술의 시대적 소명도 바뀌었던 겁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도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미술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일으키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트로치 제대화」는 중세 초기 화풍으로 돌아가 마치 양식적 후퇴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며 혹사병으로 인해 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미술이 경직되었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벌거벗은 미술관>에서는 이를 양식적 후퇴가 아닌, 전염병으로 많은 화가가 사망하면서 미술 작품 수요가 급증하였기 때문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즉, 급증한 수요를 채우기 위해 적절한 가격에 빨리 완성하려면 좌우대칭의 엄격한 구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전염병으로 인한 위기를 겪을 때면 작품 속 후원자의 모습이 노골적으로 그려지는 등 전염병에서 구원받으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한다. 심지어 뭉크는 여러 질병을 앓으면서 「스페인독감 투병 중의 자화상」, 「스페인독감 직후의 자화상」 등의 작품을 그려내며 전염병 속에서도 미술을 슬픔을 치유하는 도구로 사용했다고 한다.

 

 

“미술을 통해 본 인간은 어떤 모습이냐고 제게 묻는다면 ‘인간은 늘 방황하지만, 그것에 도전해서 변화를 일으키는 자’라고 답할 것입니다. 미술의 역사는 바로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미술의 역사를 명작들로 이어진 위대한 역사라고 알고 있지만, 조금만 냉철하게 살펴보면 미술의 역사는 도리어 실패와 미완성으로 이루어진 고뇌와 좌절의 역사입니다.”

 

 

<벌거벗은 미술관>에서 우리는 다시 미술을 살펴보았다. 읽으면서는 벌거벗은 게 미술관인지 아니면 나인지 고민하다가도 오히려 그 고민에서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예술은 사고의 지연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미술관에서 일어나는 나만의 사고의 지연 과정을 부끄러워하기보다, 그 속에서 방황하면서도 다시 변화하려 애쓰기를 바라며 나는 벌거벗은 미술관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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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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