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K-아이돌로 살아남기 [음악]

한 팀의 아이돌이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
글 입력 2021.09.0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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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 entertainment


 

현재 21세기 한국에서 가장 유망한 산업 분야는 문화 산업이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 문화 업계에서는 오늘도 영화, (웹)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되고 있으며, 이는 생산과 동시에 전 세계로 유통된다. 그리고 이 다양한 콘텐츠 중 브랜드 파워가 가장 센 것은 단연 음악, 특히 '아이돌'이 이끄는 'K-pop'이다.

 

그러나 폭발적인 인기와 관심을 얻은 산업이 으레 그렇듯, 한국의 아이돌 업계도 레드오션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지상파 음악방송에는 매주 수십 팀의 신예 아이돌들이 반짝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방송조차 타지 못하는 신인 그룹들도 부지기수다. 이렇듯 주목을 받지 못한 무명 아이돌들은 끝내 해체로 내몰린다.

 

그렇다면 어떤 아이돌들이 이런 열악한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것일까?

 

 

 

순수한 사랑?



아이돌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돌 산업의 주 고객층인 '팬'의 심리에 대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유명 작사가 김이나는 웹예능 '고막메이트' 1화에서 팬심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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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tube 방언니 - 방송국에 사는 언니들

 

 

다양한 모습을 한 사랑 중에,

팬심이 가장 판타지 같은 순수한 사랑 같아.

 

 

'팬'이라는 개념은 사실 음악 뿐 아니라 모든 장르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장르마다 다른 정의를 가질 수 있지만, 아이돌의 일반적인 팬도 위 정의에 해당한다. 여기서 일반적인 팬이라는 것은 해당 아티스트의 노래를 가끔 찾아 듣거나 소식이 들리면 궁금해하는 '긍정적 지지자' 정도의 의미다.

 

하지만 일반적인 팬을 넘어 아이돌 '팬덤'의 문화로 들어간다면? 나는 김이나의 정의에 더는 동의할 수 없다. '팬덤(팬클럽)'으로 활동해본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팬클럽의 단계로 넘어간 팬들은 내 일상과 아티스트의 일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한 가수에게 팬클럽이 보내주는 사랑이 양적인 측면에서 보면 분명 판타지스러운 사랑인 것은 맞다. 하지만 순수하다기보다는 상당히 기이한 사랑이다. 팬덤에게 아티스트란 평범한 인간 개체가 아니다. 자신보다 아티스트가 나이가 훨씬 많다고 해도, 그들에게 아티스트란 언제까지나 '내 새끼'이자 '애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터 같은 아이돌 생태계에서 '내 새끼'가 제일 잘나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액수에 개의치 않고 돈을 쓴다. 그냥 팬이 대중 속 곳곳에 존재하는 숨은 지지자와 같은 존재라면, 팬덤은 기획사 및 아티스트에게 직접적으로 '돈이 되는' 존재다.

 

 

 

돈이 되는 존재,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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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온차트 공식 사이트(차트 제공 업체)


 

가령 앨범이 발매되면, 팬덤은 앨범 공동구매를 진행한다. 그냥 팬이라면 앨범을 개인 소장용으로만 구매할 것이므로 1개로 족하다. 그러나 팬덤은 본인의 현생(실제 생활)에서 돈을 끌어와 똑같은 앨범을 2장, 3장, 심하면 몇십 장씩 산다. 그래야 내 새끼가 각종 차트에서 순위권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공식 팬클럽 자체도 '돈'이다. 음악 방송 1위 수상 소감을 보고 있으면 레베럽, 무무 등 아티스트들이 본인의 팬들을 고유한 애칭으로 부르며 감사 인사를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고유한 애칭 역시 상품의 일종이다. '아이돌이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바로 그 팬덤'에 소속되어 있음을 확인받고자 하는 팬이라면 통상 2~3만원 가량의 가격인 '공식 팬클럽 타이틀'을 사야 한다.

 

그리고 아티스트 개인의 입장에서, 협찬 뺨치는 '서포트'팬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금하여 벌이는 활동도 무시할 수 없다. 인지도가 꽤 있는 아이돌 멤버의 경우 트위터, 디시인사이드, 웨이보와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에 팬들이 모여서 아티스트의 이름을 단 갤러리 및 사이트를 만들어 매년 아티스트의 생일이 되면 수천만 원에 달하는 명품 아이템 및 전자 기기로 구성된 생일 선물을 보내고, 아티스트가 라디오나 영화 촬영 등 개별 활동을 시작하면 떡이나 커피차 등의 이벤트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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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이돌 업계에는 홈마, 곧 '홈페이지 마스터'라는 신기한 존재가 있다. 이들이 어떤 존재냐 하면,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의 모든 활동을 따라 다니면서 그들의 사진 또는 영상을 찍은 뒤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람들이다. 얼핏 들으면 마치 사생팬같이 들릴 것인데, 보통의 홈마들은 사생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그들은 사비를 털어 전문 사진 장비를 갖추고 우수한 보정 실력까지 겸비한, '멤버 전용 사진사'에 가깝다.

 

홈마들은 아이돌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특정 멤버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활동하기에 공식 콘텐츠보다도 퀄리티가 좋을 때가 있고, 실제로 홈마의 직캠 때문에 팬덤에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홈마를 통해 팬덤에 새로 유입된 이들이 다시 아티스트를 위해 '돈'을 쓴다는 것이다. 아이돌 업계에서는 이들이 주요한 재생산 기제라고 볼 수 있다.

 

 

 

'여성 팬'을 공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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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K-아이돌 팬덤 문화에 대하여 아주 간단히 고찰해보았다. 우리는 위 고찰을 통하여 아이돌 팬덤이 본인의 현생을 포기할 정도로 아이돌에게 큰 애정을 제공하고 있으며, 애정과 더불어 무지막지한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한 아이돌이 이들의 이목을 사로잡아 '돈을 벌기 위한' 조건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정답은 명료하다. 아이돌은 여성들이 원하는 '사랑'의 형태를 잘 읽어내고 그것을 제공해야 한다.

 

팬덤 문화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육아와 유사한 여성향 문화다. 다시 말해 아이돌 업계에서는 아이돌을 '키우는' 데에 누구보다 진심인 여성팬들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외는 있겠으나 남성 팬들은 아티스트를 '내 새끼' 또는 '애들'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드물다. 이것을 증명하듯 연예계에서는 여성 아이돌보다 남성 아이돌의 수명이 길며, 롱런하는 극소수 걸그룹을 살펴보면 여성 코어 팬덤을 확보한 그룹인 경우가 절대 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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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성들이 원하는 '사랑'의 형태란 무엇이란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육아와 달리 팬덤의 헌신에는 대상에 대한 '연애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팬픽 또는 빙의글가상 연애 시뮬레이션처럼 읽는 이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진행되는 팬픽션의 존재를, 그리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열애설이 퍼진 이후 화력을 잃게 된 수많은 팬덤들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지점은 팬들이 이러한 본인들의 욕구를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티스트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본인의 '자식'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팬들은 필사적으로 아이돌을 향한 자신의 욕구Libido를 현실과 분리시킨다. 그리고 현실과 분리된 이들의 억압된 욕구는 아이돌에 관련된, 비현실적인 무언가에 '몰입'하고픈 욕구로 변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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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팬덤이 아이돌에게 기대하는 사랑의 형태가 바로 이 '몰입'이다. 팬들은 '몰입'이라는 새로운 욕구에 따라 그룹 내 멤버들의 관계성에 몰입해 무대 아래 브이로그를 찾아보거나 가상의 세계관에 기댄 팬픽을 찾고, 뮤직비디오가 담고 있는 오묘한 상징 또는 세계관에 몰입해 뮤비 해석을 찾게 된다. 다시 말해, 팬들의 몰입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섬세한' 콘텐츠를 '풍부하게' 제공해주는 아이돌만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아이돌은 대외적으로 구축한 자신 개인의 이미지 혹은 타 멤버와의 관계성에 대한 팬들의 몰입을 깨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하며, 그러한 노력들을 기획사가 콘텐츠 속에 제대로 담아 팬들에게 공급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뮤직비디오의 소품들이나 설정들, 앨범아트와 수록곡의 가사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소한 것에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아서 그것의 의미를 찾는 행위에 팬들이 더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아이돌이 팬덤에게 '몰입'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여 탄탄한 팬층을 확보한다면 연예인이 나이가 들더라도, 살이 찌거나 외모가 다소 변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팬덤이 유지가 된다. 충성도가 높아진 여성 팬덤은 아이돌 A보다는 인간 A 그 자체에 몰입하게 되어 "A라면 무엇이든지 다 괜찮을 것 같아", "A 하고 싶은 거 다 해" 상태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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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K-아이돌 문화를 약 10년간 지켜보면서 필자가 해왔던 생각들이다. K-아이돌 문화는 조금은 기이하고 조금은 과몰입 같은 문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는 동안 '아이돌'이라는 문화만큼은 우리 사회에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의 아이돌 산업에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무언가 강력한 힘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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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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