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할말,잇슈(issue)다! 12 - 기후정의, 모두의 '협의' 그리고 함께 하는 '협력'을 바라며

글 입력 2021.08.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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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이상기후가 이어지면서 전 세계가 크고 작은 몸살을 앓고 있다. 당장 지난 7월만 하더라도 서유럽과 중국에서는 역사상 최악의 폭우와 홍수 피해가 발생했으며 미국 서부와 캐나다에 이어 최근에는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과 그리스, 터키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곳곳에서 살인적인 폭염과 함께 그로 인한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근 10년간 폭염 현상과 함께 밤 동안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을 유지하는 열대야 현상 빈도가 늘어난 반면 장마 기간은 오히려 줄어드는 등 이상기후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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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iddlebury)

 

 

이미 다수의 연구 보고서에서는 전 지구적 차원의 기상학적 극단 현상들이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할 경우 향후 20년 이내에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넘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이는 불과 3년 전에 제시되었던 전망치보다 무려 10년이나 앞당겨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이 더욱 악화되어 빙하 감소와 해수면 상승이 이어지는 등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인류의 생존기반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많은 언론사들과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은 ‘기후변화’(Climate Change) 대신 ‘기후위기’(Climate Crisis)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기후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려는 노력들을 이어가고 있으며 세계기상기구(WMO)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에서는 “코로나 백신은 있지만 기후위기에는 백신도 없다.”라는 메시지에 입을 모으며 즉각적이고 강도 높은 정책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후변화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수많은 문제들을 ‘정의론적’ 차원에서 바로잡고자 하는 ‘기후정의’(Climate Justice)의 논의가 주목을 받고 있다.


‘기후정의’는 말 그대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후문제들이 인종, 젠더, 계급, 연령, 소득, 직업, 이동성, 사회적 고립, 거주환경 등 다양한 사회적 요소에 따라 저마다 상이하게 나타나는 즉, 모두에게 ‘동등하지도’ 그리고 ‘정당하지도’ 않은 ‘불의’(Injustice)로서 나타나는 현상을 비판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간접적으로 비롯되는 각종 불평등과 불균형을 해결하고자 하는 논리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세계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기후문제 그리고 그것이 인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있어 ‘정당성’과 ‘형평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글로벌 차원의 공공 담론이자 사회운동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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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en & Jerry's)

 

 

‘기후정의’가 처음 등장한 시점에 대한 정확한 추적은 어려우나 본격적으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제1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 당사국 총회에서 기후문제의 해결을 위해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원칙’(CBDR, 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을 새로운 국제 규범으로 채택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CBDR 원칙은 기후 문제 해결에 대한 모든 국가의 ‘공통의 노력’을 촉구하면서도 국가별로 ‘차별적’ 책임의 의무와 대응역량의 ‘차이’를 인정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정의의 성격과 의의를 내포하고 있었는데 당사국들은 이를 통해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 온실가스 배출 문제와 관련해 그 규모를 안정화시키고 추가적인 기후변화 현상의 발생을 예방하고자 했다.


그러나, 일종의 ‘선언’이자 ‘구호’에 가까웠던 리우협약은 어떠한 구속력과 강제성도 보여주지 못한 채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어진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 당사국 총회에서는 개발도상국을 제외한 선진국을 대상으로 온실가스 감축의 의무와 함께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술적, 경제적 지원의 의무를 부과하는 ‘교토의정서’가 채택되기도 하였으나 이 역시도 주요 온실가스 배출 국가들 중 몇몇 국가들이 자국의 경제적 사정을 근거 삼거나(미국) 선진국-개발도상국 분류 기준의 형평성을 문제 삼으며(일본, 캐나다, 러시아) 불참한 데 이어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 국가로 성장한 중국과 인도 역시 감축 의무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실효성의 차원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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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OP PARIS)

 

 

이처럼, 더욱 강력한 CBDR 원칙 아래 마련한 교토의정서마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자 국제사회는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 예방을 인류 보편적 의무로서 강조함과 동시에 모든 국가가 자국의 상황을 반영할 수 있게끔 새로운 기후변화 대응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제17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을 기점으로 2020년 이후 모든 당사국이 참여하는 새로운 체제의 토대가 갖춰지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에서 국가별로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시기 대비 2도 이내로 억제하고자 하는 방안을 ‘자체적으로’ 계획하고 ‘자율적으로’ 시행할 것을 강조하는 일명 ‘파리협정’이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기후정의’의 가장 큰 핵심은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책임과 피해의 ‘불일치’를 바로잡는 ‘정의’(모두의 참여를 그러나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를 실현하는 것 그리고 이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에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미세먼지 문제와 같이 사회적 요소들과의 긴밀하고도 복잡한 관계를 갖는 현상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는 만큼 기후정의에 대한 사회적 요청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일례로, 기후변화의 대표적인 현상인 폭염이나 한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냉난방 장치의 사용이 요구되는데 취약계층의 경우 애당초 불안정한 에너지 수급 상태에 놓여있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 사용 비용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대체에너지 기술 수준 역시 현저히 낮은 까닭에 이들은 기후위기라는 위험에 더욱 오래, 더욱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으며 그 취약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환경의 위험과 피해 그리고 혜택에 대한 평등을 주장하며 이를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책임과 피해 구제에 있어 공정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환경정보 활용 및 환경정책 수립 과정에 있어서도 참여권을 보장받고자 하는 ‘환경정의’(Environmental Justice)의 개념을 대신해 ‘기후정의’를 내세우는 것에 대해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과거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 흑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계급과 인종에 따라 환경적 위험에 노출될 확률 혹은 노출 정도가 불평등하게 나타난다는 것에 대한 저항 운동으로 시작한 환경정의는 오랜 시간 환경과 관련된 수많은 논의의 마중물이 되어왔으며 아직 학문적, 이론적으로 정립되지 못한 기후정의의 논의를 정교화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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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BC)

 

 

하지만, 기후정의 논의는 궁극적 목표인 ‘정의’(Justice)를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 있어 종래의 환경정의 논의와 다소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 특정 지역사회 혹은 국가 즉, 개별 국가 내 환경문제에 주목해 환경적 위험과 피해, 혜택의 공평한 '분배'를 주장하는 것이 환경정의였다면 기후정의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이상기후 현상이나 재난 등 국제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기후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그에 대한 참여와 책임의 의무를 ‘분담’하고자 한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협의 그리고 협력의 장(場)을 구축함으로써 기후변화 완화(조절) 및 적응 정책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데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기후정의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후정의는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일까? 기후정의에 대한 논의는 어느 수준까지 이뤄져 왔는가? 분명한 것은 기후정의의 논의가 인류 문명을 위협하고 있는 기후위기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복잡 다양한 위험들을 ‘정치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으며 오늘날 주요 국가들이 앞다투어 주창하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들의 중요한 기반이 되어왔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재난취약성’이나 ‘인권’과 같은 윤리학적 개념은 물론, ‘반자본주의’나 ‘탈성장’과 같은 정치철학적 개념까지 기후정의의 쟁점으로 편입됨에 따라 앞으로의 기후정의 논의가 보여줄 ‘혁신성’에 대한 기대 역시 커져가고 있다.

 

문제는 기후정의의 실현을 위해 제시된 방법들 대부분이 기후정의 논의에 대한 ‘종합적’ 고려 없이 특정 방식에만 의존해 ‘일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현행 기후변화 적응대책 중 하나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지구공학 기술을 비롯한 과학기술적 차원의 해결책의 경우 자체적으로 연구 개발 및 결과의 ‘불확실성’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용화 과정에서도 상업적, 군사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어 여러 윤리적 쟁점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기후정의 실현 과정에 수반되는 정치적 합의와 경제적 비용 책정 및 부담, 사회적 집행 등의 단계적 절차들을 모두 아우르지 못한다는 점에서 많은 몰매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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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mpakter)

 

 

그와 함께, 방법들 대다수가 개인이나 기업, 지역사회, 국가와 같이 정의 실현의 주체(혹은 주체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참여자)의 ‘자발성’ 그리고 ‘자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까닭에 기후정의에 대한 책임의 이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기업 이미지 혹은 수익을 위해 친환경성을 악용하고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그린워싱’(Green Washing, 상품이나 용역의 환경적 속성이나 효능에 관한 표시⋅광고가 허위 또는 과장되어, 친환경 이미지만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행위)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는 오늘날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ESG(기업이나 비즈니스에 대한 투자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환경, 사회, 기업 지배구조의 3가지 요소) 전략이 갖는 진정성의 의미를 퇴색시킬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차원에서 기후정의의 ‘실질적’ 실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기후정의 실현을 뒷받침하는 특히, 기후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온실가스의 감축과 관련된 각종 법제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05년 당시 「에너지이용 합리화법」 아래 실시한 산업별 에너지 사용량 및 온실가스 배출량 조사를 시작으로 2011년에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새롭게 제정, 온실가스 배출량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업체 및 사업장을 관리하는 목표관리제를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온실가스 종합정보관리체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번 정부에 들어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이른바 ‘한국판 그린 뉴딜’ 정책이 주요 국책으로 채택됨에 따라 ‘녹색전환’, ‘순환경제’와 같이 이전보다 기후변화 대응책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및 관련 시행령을 비롯한 관련 법안들도 하나둘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가 발표한 환경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배출량 증가율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며 관련 산업 생태계 기반마저 매우 취약해 대체에너지 기술과 온실가스 감축 관련 기술 개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온실가스 감축의 구체적 목표치와 목표 설정 기준, 그리고 그에 대한 근거 등의 규정들이 지난 2009년에 제시되었던 ‘녹색성장국가전략’ 아래 로드맵의 형태로 마련되어있는 까닭에 국가 차원의 법적 강제력을 행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재 추진되고 있는 기후정의 대응책의 ‘정당성’과 ‘적절성’을 판단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출처 : 유튜브채널 대한민국 정부)

  

 

이는 결국 진정한 기후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오늘날 더욱 가속화되고 더욱 광역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기후위기가 곧 우리 모두의 책임에서 시작해 책임으로 끝나는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나아가, 그 과정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고 ‘성장 지향적’인 과거의 낡고 상한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회구조적 요소와도 상관없는 그런 전인류적 차원의 ‘협의’ 그리고 ‘협력’을 통해 인류와 생태계를 긴밀하고 굳건하게 연결 짓는 데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대 이후 특유의 ‘압축된’ 형태의 산업화가 이뤄지며 타 국가에 비해 기후문제를 비롯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부족했던 만큼 보다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차원의 노력이 요구된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분석에 임하는 것은 물론, 사후대처뿐만 아니라 사전예방과 피해구제까지 적절하고 또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자체적인 기후관리 대응시스템을 갖춰야만 할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도쿄올림픽 역도 남자 105kg에 출전한 한 선수가 순위권 밖의 성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춤을 추면서 많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데이비드 카토 아 타우(David Katoatau)라는 이름의 이 선수는 남태평양상에 위치한 인구 10만 명 정도의 작은 나라 키리바시(Kiribati) 출신으로 알려졌는데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고국의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가 보여준 행동과 모습들이야말로 심각한 기후위기에 직면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저 있는 그대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아주 작고 소소하더라도 관심을 갖는 것. 그리고 그 관심을 함께 나누고 키워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래서 결국은 우리 스스로 희망이 되고 삶을 더욱 살기 좋게 만드는 것. 기후정의는 그렇게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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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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